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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an 31. 2021

사기꾼에게 5만 원을 더 송금했다.

사람이 싫지만, 사람이 좋다...

누군가에 흔히 "감긴다"고도 쓰이는 "사기"를 당하는 것이 그리 잦은 일도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아예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나같이 중고 장터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자랑도 아니지만, 나는 현재까지 사진을 찍으면서 새 카메라를 구입해 본 적이 없다. 나의 카메라는 모두 다 중고 나라에서 구입한 녀석들이었고, 인기가 시들해지거나 혹은 구형이 되어서 제품의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녀석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녀석들을 중고로 구입해서 사진을 찍으러 다녔다. 물론, 나의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다는 분(??)들께 꽤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카메라가 그들의 신분을 드러내고, 과시할 수 있는 어떤 신분증 같은 것이었겠지만, 나는 그 신분증을 가질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그들의 눈에는 오래된, 그리고 기능이 한참이나 떨어지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내가 자신들보다 타인에게 좋은 말을 듣는 것을 싫어할 만도 했다. 하지만, 언제 인가도 말했지만 우리 가정의 정서상, 수백만 원짜리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은 말할 수도 없는 그리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나의 비자금 내에서 구입할 수 있는 카메라는 딱 중고나라에서 판매되는 몇 년이 지난 녀석들이 전부였다.




위에서부터 읽어보신 분들은 이제 짐작을 하시겠지만, 그렇다... 나는 두 번째 중고나라 사기를 당했다.

첫 번째는 재 작년이었던가?? 역시 카메라로 사기를 맞았다. 내게는 꽤 큰돈이었던 "50만 원"을 조금 넘는 돈이었다. 알고 보니 그 사기꾼은 작정을 했던 것 같다. 나 말고도 피해자가 8명이 넘게 있었다. 그래 봐야 총금액이 500만 원 남짓이었다. 작정을 하고 사기를 친 것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이었다.(물론, 내게 50만 원이라는 금액은 엄청났지만, 자신의 인생을 고려한다면 50만 원이란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 않을까...)

몇 건의 고발이 되어있었지만, 어차피 그 사기꾼을 잡는다고 해도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확률도 얼마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던 대로 '액땜한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넘어갔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이니까.


나 같은 멍청이들이 잘 걸려드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중고차 사기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걸려드는 이유는 좋은 차를 저렴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잠시 "혹~!!" 하는 기대 심리 때문이다. '아닐 수도 있다!!'라는 강한 부정의 기운이 들어도, 말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람의 심리이다. 그것은 적게 투자하고 더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가장 최고의 "선"이라는 자본주의의 미덕에 빠져있는 사람의 본능 그 자체 때문이다.




기말 시험이 다가온 11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종일 책상에 앉아서 기말고사를 준비하던 나는, 습관처럼 잠시 중고나라에 접속을 했다. 그것은 마치 참새가 방앗간을 들르듯 혹은 여느 역전앞에는 비둘기가 늘 서식을 하듯, '무엇이라도 있으려나.' 하는 기대심리와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한 나만의 자위 방법이었다.


그러던 중...'어!! 이럴 수가 있나??'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알고 있던, 그리고 구하기 어려운 조금은 레어 한 그래서 갖고 싶던 카메라가 목록에 버젓이 올라와있었다. 습관적으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중고나라에 자리한 "더 치트"와 "경찰청 사기"목록 조회를 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비교적 깨끗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서 그가 얼마 정도 중고거래를 했는지 그 목록을 과거에서부터 조회했다. 나이도 지긋이 있어 보이는 비교적 믿을만한 판매자로 보였다.


나는 그에게 연락을 취했다. 나는 문자를 보냈는데, 그에게서는 카톡으로 답이 왔다. 약간, 꺼름찍했지만, 구태여 일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사진을 곧 사진을 보내왔다. 너무도 자세하고 꼼꼼한 사진에, 그리고 카톡의 프로필에 아이들 둘을 데리고 노는 사진을 올려놓은 그 다정한 아빠의 모습에 의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가격을 바로 은행을 통해 송금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녀석을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배송을 하기로 한 판매자가 자신이 있는 곳이 산골이어서 우체국이 아닌 일반 택배로 배송을 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나는 우체국 택배를 선호하지만 구태여 트집을 잡기 싫어서, 그러라고 했다. 그다음 날, '너무 바빠서 배송을 못 보냈다, 하지만 지금 꼭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 내일은 꼭 보내겠다.'라는 말에 나는 또 그러라고 했다.


물론, 의심은 쌓이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 자신이 택배를 보낼 시간이 없어서 물건을 친한 동생에게 배송을 하라고 부탁을 했다면서 연락이 왔다. 심지어는 "KGB"택배이니 조회를 해보시라는 당당한 말에, "사장님, 택배 송장 번호를 알려주셔야죠!!"

라고 말을 하니, '동생에게 물어보고 바로 연락을 드리겠다.'라고 하더니, 그 뒤로 묵묵부답...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나를 아주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니, 그때부터 내 입에서는 방언이 튀어나왔다.


"야... 이 XXXXX아, 내가 X 만만해 보이냐!!,  XX 동생 핸드폰 번호 대라!!"부터 시작을 해서 걸쭉하게 시작된 나의 욕질에 그다음 날, 판매자는 동생이 잠적을 했다는 대답을 내게 전해왔다.

다시, "XX, 동생 핸드폰 대라, 어디 사냐?? 분당 살면 내가 지금 그곳으로 갈 테니, 동생 나오라고 해라!!"라는

식의 말을 하자, 갑자기 그의 태도가 돌변하며 "죄송하다, 돈으로 갚겠다."라며 말이 달라졌다.

나는 무엇보다 그냥 사기를 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동생을 끌어들이고 일을 복잡하게 만든 것이 너무 싫어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고, 직접 당사자를 만나서 내가 해결을 짓겠다는 "욱!!" 하는 성격이 올라왔다.


하지만, 판매자는 "제가 죽일 놈입니다. 며칠까지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꼭 환불을 해드리겠습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렇게까지 말을 하는데,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제게도 그 돈은 작지 않은 돈이니까, 그 날까지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말로, 나는 그에게 시간을 줬다.




그리고 나는 죽을 것 같은, 기말고사 기간을 보내고, 그가 약속을 했던 날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역시 처음에는 받지 않았다. 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간단하게 톡을 보냈다.


"아저씨, 그냥 동생 연락처랑 주소 보내면 간단해집니다."


그러자, 곧 답이 왔다.


동생은 선불폰을 쓰고 있었고, 그래서 이제 연락이 안 되고, 그는 서울에 있는 자신의 집에 왔는데(그는 한동안 공사 현장에서 있었다고 한다.), 집에서 아내와 싸우다가 칼을 무심결에 꺼내어 아내의 앞에 던졌고, 그 길로 아내가 신고를 해서, 접근금지명령을 받아서 현재 지하철 역 있다는 말이었다.


그 날은 무던히도 추웠던 12월이었다. 꽃샘추위도 춥지만, 이제 막 1월이 되기 전 새 밑 추위도 얼마나 춤다고 하던가... 나는 지하철 역에서 떨고 있을 그가 상상이 됐다.


"아저씨, 내가 우습게 보여서 그러신 거예요??"

"아닙니다. 돈이 없어서 갖고 있던 카메라라도 팔아서 용돈이라도 마련해보려고 했던 거예요, 저는 지금 빚이 많아서 그 누구에게도 돈을 빌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사채업자들에게도 매일 연락이 오고, 실은 핸드폰도 끊겨서 제가 톡으로 처음에 연락을 드린 것이었습니다." 라며 시작된 그의 말은 구구절절 그의 인생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내가 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참 인간적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여기서 딱하다는 것은 불쌍을 넘어선, 한 인간에 대한 처절한 연민의 감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물론, 나도 그가 절대 내 돈을 갚을 일은 없다는 것을 아주 이성적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아저씨, 통장번호 주세요, 얼어 뒈지시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뒈지시지 않고 제 돈도 갚으실 테고..."라며 말을 하는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모텔을 가든, 여관을 가든, 아니면 여인숙을 가든 '얼어 뒈지시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며 돈 5만 원을 더 송금했다. 그에게서 돈을 받을 것은 포기한 인간에 대한 연민인 것인지 아니면 그때까지 성적이 나오지 않은 "조류질병학" 성적에 대한 말 그대로의 액땜을 바라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에게 돈을 더 송금했다.


차라리, 말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는 항상 끝에서는 "갚겠다."는 말을 했다. 그 역시 그 말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고, 나 역시 그의 말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더 밉기도 했다.




시간이 또 흘러서 그가 꼭 갚겠다고 한 날, 그는 또 연락이 없었다. 이제는 혹시 '어디서 죽지는 않았나..'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또 의미도 없는 욕질을 두어 번 했더니, 뜬금없는 톡이 왔다.

 

"1"이 없어지지 않은 카톡... 그는 나를 일부러 선택했던 것일까??


나는 그냥 없던 일로 하고 내가 잊겠다는 말로 그와의 연락을 끊었다. 그 뒤로, 물론 그에게서는 연락이 없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보냈던 톡의 '1'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나는 현재도 잘 모르겠다. 멍청해 보이고 손쉬워 보이는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우선 얼마 안 되지만 급한 돈들을 융통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내가 갖고 있는 아주 취약한 약점 중 하나인 "동정심"으로 인해 "카메라 가격 + 모텔비"를 사기를 맞고야 말았다. 그런데, 나는 그 뒤로도 다시금 생각할 때면, 그가 아니더라도 나는 아마도 "모텔비 5만 원"을 보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 사람이 내게 사기를 쳤지만, 어찌 되었든 나와 아주 작은 인연이라는 다리를 걸친 사람으로서 그가 추워서 벌벌 떠는 목소리로 나와 통화를 하는 것을 무시하지는 못했을 테니까.





나는 사람을 싫어한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 더군다나 친지들과 친구들에게까지 상처를 많이 받았던 나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그들의 오만함과 그들이 갖고 있는 가식적인 모습들을 보며 치를 떤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풀어진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내가 갖고 있는 것도 얼마 되지 않지만 그것들을 나눠서라도 나보다 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따스해하는 것을 보면 그때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언제인가,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노숙자들을 위한 "밥차"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내 주변 사람들이 놀라더라. 나는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생각이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


동물을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은 사랑을 나눠줄 때, 자신에게 돌아올 사랑을 계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람을 이만큼 아끼고 사랑하니까, 내일 내게는 더 좋은 간식이 돌아오겠지... 따위의 얄팍한 계산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오직, 자신을 대하는 사람에 대한 순수한 감정들이 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들의 눈에는 많은 계산이 담겨 있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또 사람을 사랑한다. 나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혹은 나의 작은 이해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아주 잠깐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작지만, 많이 부족하지만 내 일부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바보"인 이유... 바로 그것이다.


2021년 1월 31일


그에게서 더 이상 연락은 없다. 그리고 나 역시 그에게서 연락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의 소식이 궁금하기는 하다. 내가 다그치듯 연락할 때보다 사정이 더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아내 되는 분과 다시 잘 지내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더없이 상처 받으며 살아갈 그의 아이들은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다.

나는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나은 것이 후회된다는 말을 했을 때, 그에게 욕을 할 뻔했다. 아무 죄가 없는 아이들에게 후회라는 단어를 씌우는 것을 보며, 사람의 이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의 아이들이 더없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심지어는 아버지 없는 아이들은 되지 않기를 바랐다. 추워 죽겠다며 벌벌 떠는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을 때, 그에게 보내 준 모텔비는 아이들에게 끝까지 아버지로 남아 달라는 나의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하지만, 그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들이라도 때로는 따스한 아버지, 최고인 아빠가 되면 좋겠다는 나의 마음에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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