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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y 02. 2021

얼굴을 수리했습니다.

또 하나의 내 얼굴이라는데...

광고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 가령 배우나 혹은 운동선수들을 광고의 중심에 넣고, 그들의 영향력을 배경 삼아 판매력을 증가시킨다. 내가 현재 타고 있는 승용차는 5G 그랜져, 5세대 그랜져라는 의미로 "그랜져 HG"로 판매되었다. 그리고 벌써 출고가 된 지 7년이 되었고 이제 주행거리도 12만 Km를 넘어서서 13만 Km를 향해가고 있다.


5G 그랜져가 출시될 때, 한 참 영화배우 "이성민"과 "조진웅"이 중심에 있었나 보다.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을 담은 광고의 자료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한 때, 이 광고를 보며 "고작 그렌져 따위로 인생의 성공을 논하냐."는 조롱 가득한 놀림도 많았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을 볼 때, 이제는 한 참이나 대중화가 되어버린 "그랜져"라는 승용차는 "성공" 혹은 "부"를 논하기에는 이미 거리가 먼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광고는 광고로 받아들일 때, 혹은 사진은 사진 그 자체로 수긍을 할 때, 글을 종이에 적혀있는 그대로를 빨아들일 때, 가장 최고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국, "그랜져"가 "성공"이나 "부"를 대표할 수 있는 자동차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전에, 광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리고 표현하는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애써 광고를 만든 사람들의 노고도 한껏 치하해주는 것이리라.




그렇다, 나는 현재 "5G 그랜져"를 타고 있다. 한 때는 수입차도 조금 타보았고, 대한민국의 좋다고 하는 자동차는 거의 다 소유도 해보고 경험도 해봤다. 그러면서 나는 늘 '내가 조금 더 "성공"을 하면, 훨씬 더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그것을 배경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을 텐데...'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었다. 꼭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던 것이 내 주변 사람들, 남자라면 대부분의 이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고, 다만 그것을 직접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이 부족했을 뿐이니까.


그런 것들, 어떤 상황에 대한 기대나 희망은 사람을 더 한계 상황까지 몰아붙일 수 있는 놀라운 능력도 부여하고는 했다. 그런 기대와 희망이 있었을 때, 내가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인 것도 분명하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몇 년 안에 계획했던 모든 것을 계단을 밟듯 착착 이뤄나갈 수 있으리라는 나에 대한 믿음으로 매일을 충만하게 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모든 것이 다 내가 마치 실로 짜 놓은 듯한 얽기섥기 꼬아놓은 계획대로 되어가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운 적은 늘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더 나를 병들게 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고는 했다. 간단하게 이에 대한 결론부터 언급하자면 나는 스스로 세워둔 계획을 지키지 못했고, 그 얽기섥기 꼬여진 계획의 틈 사이로 원하고 바라던 것들이 하나하나 빠져나가는 것을 두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오롯이 내 잘못으로 치부하고 어두운 방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버렸다.




짙고 순도가 높은 커피 위에 부풀게 올려진 달콤해 보이는 휘핑크림을 걷어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커피의 진정한 맛은 쓰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고 그 휘핑크림을 원래 그대로의 커피와 섞이지 않도록 아주 고스란히 위에서부터 덜어내는 것에 집중을 한 뒤에도 그것은 조금씩 남아서 순수한 커피 위에 섞여 들어가 쓰디쓴 맛의 인생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훼손시켰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그것이 말 그대로 휘핑크림처럼 달콤한 거품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판단 기준을 스스로 정립할 때까지도 또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휘핑크림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경계했다. 그리고 진한 커피 같이 자신의 향을 간직한 채로, 살아온 분들의 시간과 섞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노력이 내게 크나큰 변화를 가져다주지는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뒤로 따로 나만의 자동차를 사거나 자동차에 대한 욕심을 크게 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그대로 집안의 형편에 맞게 내가 때에 맞게 편하게 탈 수 있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녔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현재 운전하고 다니는 차가 바로 "그렌져 HG"가 되었다.




사실, 동생의 차였던 그랜져를 내가 타게 된 계기는 동생이 사고를 당하면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 동생의 병원비가 매 주를 기준으로 몇 백 만원씩 계속 청구되고, 그에 따른 부대비용이 수도 없이 들어가면서 집에 있던 차들도 한 대, 한 대 처리를 하고, 남은 차가 그랜져였다. 내가 선택을 했다기보다 녀석이 나를 선택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녀석과 인연을 맺었다.


차를 바꾸고 싶을 때면, 간단한 방법이 있었다. 차를 험하게 타면서 차의 겉모습이 파손된 것을 보여주는 방법이 그 하나요. 계속해서 자동차의 성능이 안 좋다고 입의 침이 마르게 떠들면서 주변 사람들을 쇠놰시키는 방법이 또 하나이다. 그리고 마침내 새 차를 가지고 오면 그때부터는 "차는 곧 나의 얼굴이지!!"라며 세차를 하고 광택을 내며 아끼기 시작한다. 영하의 날씨에도 광을 내겠다며 세차를 하고 유리코팅제를 뿌리며 관리를 하던 나의 모습을 보던 지인들은 고개를 저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1~2년간 나의 얼굴은 여기저기 많이 망가져있었다. 얼굴의 정면은 말할 것도 없고, 옆에도 혹은 뒤에서 고난의 상처가 곳곳에 남아서 보기가 흉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면서도 쉬이 녀석의 얼굴을 외모를 치료해 줄 수 없었던 것은, 급격하게 기울어진 가계에 보탬을 주고자 내가 갖고 있는 비상금까지, 심지어는 요즘 유행하는 "영끌"까지 해서 어머니에게 드렸기 때문이었다.(아버지는 경제력 관념이나 걱정이 없어서 당신의 퇴직 후 나오는 연금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에)


생각보다 상처는 심각했다


녀석의 상처는 생각보다 이 곳, 저 곳 심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녀석의 다친 곳을 수리해주기로 결정을 했다.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니 수리비도 만만치 않았다. "자차"보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런저런 것을 고려해봤을 때, 더 손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래서, 다시 내 호주머니와 그리고 내 방 한구석에 잠자고 있는 돼지 저금통의 배까지 갈라서 모든 비상금을 총동원했다.


그리고 다시 내가 갖고 있던 카메라 중 한 대를 팔아서 부족한 나머지를 채워 넣기로 했다. 그리고 4월 어느 날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다. 앞 범퍼 교환, 안개등 교환, 운전석 휀더 덴트, 조수석 휀더 도색 등등... 부속품까지 다 계산하니 몇 십만 원은 우습게 날아가고 내 수중에는 영수증 하나와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래도 이제 녀석의 얼굴도 되살아났고, 내 얼굴도 깨끗해졌다고 생각하니 마치 새 차를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자동차를 벌써 15년 동안 수리를 해주시던 사장님은 내가 멘토처럼 따르는 분으로 입으로 불면 훓훓 날아가버리는 휘핑크림 같은 사람이 아니라, 늘 언제나 자신의 진정한 향을 한결 같이 가득 품고 있는 진한 커피 같은 분이시다.(언젠가 이 분에 대한 글을 쓸 일이 있겠지만) 나는 이 분의 삶에 대한 철학이 좋아서, 그리고 나에게 애정을 갖고 해 주시는 말씀들이 좋아서 늘 한결 같이 그분을 찾는다.


이번에도 나의 멘토는 내게 "예전보다는 많이 사람이 달라진 것 같네. 사람이 겉으로만 보이는 것으로 판단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 벤츠를 타도 설익은 사람이 있고, 마티즈를 타고 속 깊이 부유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만큼 세상을 보는 눈도, 생각도 풍요로워질 거야. 그런데 차도 사람과 같은 것이 있거든. 이 왕이면 되도록 자신의 몸을 돌보듯이 깨끗하게 하고 다니는 것이 그 하나야. 사람도 겉모습이 지저분하고 더러우면 가까이 가기 싫잖아. 비싼 옷을 입었는가, 안 입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단정하고 깨끗하게 자기의 주변을 정리하며 사는가가 중요한 것 아니겠어??"




"이성민"과 "조진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현대자동차" 광고팀의 마케팅 전략은 이런 것이었을까?? 굳이, 더 훌륭한 차와 멋진 집들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자신이 살아온 것을 빛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그렇다면 나는 어디쯤 와있는 것일까. 나는 아직도 저기 멀리 어딘가에서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애써 화려하게 보이려 치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녀석의 겉 상처를 치료해주고 나니, 이제 속앓이를 했던 것이 하나둘씩 또 느껴진다. 몸을 지탱하는 다리의 관절이 아팠는지, 하체에서 소리가 나고, 또 배앓이를 했던 것일까, 아니면 또 그 어딘가가 힘들었던 것일까.

며칠 전, 가만히 지하 주차장에서 녀석을 깨워놓고 핸들에 손을 올린 채 녀석이 치료해주기를 바라는 곳곳의 소리를 듣고 체크를 했다.


또, 그 앓이들까지 치료를 해주려면 얼마나 지나야 하고, 또 얼마의 비용이 들어야 할까. 그리고 나는 얼마나 이 친구와 함께 할까. 이제 만으로 7년 차, 중년이 된 녀석을 보니 꼭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녀석도 중년, 나도 중년. 같은 처지, 우리 비슷한 모습. '그래, 우리 조금만 더 힘 내보자. 그래서 너도 힘을 닿할 때까지, 나도 있는 힘을 다해서 서로 노력해보자. 그때도 우리 서로의 깨끗하고 상처 없는 모습에 웃을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해보자.


2021-05


커버 이미지: 현대자동차, 나무 위키


2019년 독일산 자동차로 교체하려 했던 내 작은 꿈은 휘핑크림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내게는 이제 학자금에다가 어머니께서 급하게 필요하시다고 했던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한 신용대출까지 내가 다 부담하기에는 벅찬 돈들이 등에 얹어졌다. 개원도 하기 전에 아니 졸업을 하고 인턴도 되기 전에 나는 우선 수천만 원의 빚을 떠안고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의 부모님들은 내 걱정을 별로 하지 않으신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를 보면서는 사람의 "분수"에 대해서를 느끼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한없는 사랑의 무가치성"에 대해 깨닫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나 스스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지만,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될 수도 있는 관계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내 얼굴을 수리하고 나서 나는 한결 세상이 밝아 보이는 것을 느꼈다. 얼마나 비싼 옷을 입었는지 보다 얼마나 깔끔하고 깨끗하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나의 멘토의 말은 또 정답이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란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많은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어느 CF의 한 장면처럼 내가 살아왔던 인생의 무게가 단순히 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상으로 가치 있는 시간 조각의 집합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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