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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y 09. 2021

남자 이야기와 비스포크

세대가 달라진 것인가, 내가 달라진 것인가

1. 힙합 허니 패밀리 그리고 남자 이야기

이 세상 내 아버지가 살던 세상
이 세상 내 자식이 살아갈 세상
이 세상 속에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죠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며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순 없죠
이렇게 우리들은 후회하며 살아가죠 한 번쯤 우리들은 생각을 하겠죠
서로가 지금껏 걸어온 그 길을 말이죠
- 허니 패밀리, 남자 이야기


"힙합(Hiphop)"이라는 음악 장르가 대체로 그렇듯, 대부분의 힙합 음악들은 사회를 대부분 비판하는 가사 일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말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가을에 발매된 허니패밀리의 "남자 이야기"는 꽤나 따스한 가사들로 이뤄져 있다. 그리고 그 노래는 예상보다 많은 인기가 있었고,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2. 나


2021년 현재 나는 44 세 살의 중년이다. 만으로는 42살,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나는 대학생이고 앞으로 졸업까지 이 번 학기를 제외하고 세 학기가 더 남아있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학기에는 졸업 시험과 국가 고시가 남아있다. 국가고시를 통과하면 나는 정식 "수의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수의사 인턴으로 병원에서 일을 할 수가 있다. 내가 만약 나이가 훨씬 더 적었더라면 나의 모교 혹은 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혹은 박사 과정까지 도전하며 인턴과 레지던트를 거치고, 한 진료과의 치프도 해보고 싶지만, 내게는 모두 다 꿈같은 이야기다. 나는 당장 졸업 후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반 병원에서 인턴을 해야 하고 인턴을 하며 나오는 돈으로 생활을 해야 한다.


"화려한 주연보다 빛나는 조연이 좋다."라는 나의 매거진을 처음부터 읽어보시거나, 아니면 부분 부분 보셨던 분이라도 아실 분은 아실 수 있듯이, 나는 "부모"의 사랑을 그다지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사랑" 대신 "다그침" 혹은 부모님의 욕심에 대한 "만족"을 채우지 못해서 외면받기도 하고, 무시받기도 했으며, 그로 인해 청소년 시절부터는 오랜 방황의 시간을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몇 번씩이 자살을 생각하고 시도로 옮기려고 했던 사람이다. 특히나,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아버지와의 갈등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내게 중요한 것은 "부모"라는 존재가 당신들의 "자식"을 출산했다, 혹은 세상에 빛을 보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식"들에게 무한한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도 때로는 그 어떤 이익 관계보다 더 복잡하고 불편한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타인이 나의 의견에 반박한다면 언제든 그와 토론을 할 준비도 되어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흠뻑 받지 않고 자란 나는 늘 일정 이상의 결핍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세상을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삐뚤게 보는 하나의 단초가 되었다는 것에도 부정하지 않고 싶다. 그럼에도 나는 20세기 말, 가을날 내 귀 속으로 흘러들어오던 허니 패밀리의 "남자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깊은 공감을 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받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나의 아이들에게는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이나 그 사랑을 넘어선 무엇을 남겨주고 싶다는 깊은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3. 2021년 현재 그리고 비스포크


인턴으로 시작을 하면 일정 부분의 페이를 받는다. 그리고 보통 연차를 쌓아갈수록 매년 +50~ 정도의 페이가 더해진다. 2연차가 되면 월 400만 원 정도의 페이를 받고, 그 이후에 자신의 병원을 개원하던가 아니면 더 높은 페이를 받으며 2차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는가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 약 1년 반 정도 후에는 많지는 않지만 아주 적지도 않은 월 페이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 정도 월 수입을 벌려고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예상하고 계획했던 월 페이는 훨씬 고소득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안은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는 많이 적다. 엄밀히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많이 적다"는 표현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진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타인들이 술을 마시고 노는 밤 시간에도 도서관을 지켰고, 타인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며 해외로 여행을 다닐 때, 대한민국의 지방 중소 도시 아파트 방 한 칸에서 밤 새워가며 볼펜으로 종이 위에 수없이 많은 그림과 글자를 쓰며 공부를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받게 될 페이를 생각할 때, 그리 많은 수입인가에 대한 의문은 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너무도 변해버린 세상 때문이다.


1991년 대전으로 이사를 올 당시 우리 집 아파트 가격은 현재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했다. 그것을 대출을 해서 장만하고 입주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는 동안, 대전의 아파트 가격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치솟기 시작해서, 현재는 웬만한 아파트의 가격은 7억이 넘는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훨씬 더 할 테니까, 서울을 굳이 고려하지 않겠다.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고 단념을 한 이상, 서울에 대한 미련은 크게 버렸으니까 말이다. 아파트의 가격이 7억이 넘는 현재, 병원까지 개원하려면 또 만만하지 않은 비용이 더해진다. 이제는 동물 병원의 검사 장비와 수술 장비도 그 가격을 들으면 입이 떡하니 벌어질 만큼 비싸다. 개원까지 생각하면 나는 대출을 얼마나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페이닥으로 살면 오히려 더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얼마 전, 유튜브의 광고를 보면서(나는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 눈에 띄는 광고를 봤다. 아마, 광고의 목적만으로 고려한다면 상당히 성공한 그 광고를 보면서 나는 박탈감도 느꼈다. 삼성 전자에서 론칭한 전자 제품들 중 젊은 세대를 겨냥해 출시한 제품 군들로 이뤄진 "비스포크"라는 가전기기들을 보았을 때, 문득 '저 제품들을 광고에서 나오는 것처럼 젊은 나이에 자신의 개성과 만족감만 위해서 구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것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과 그리고 그에 맞게 점점 더 고급화되고, 개성화를 갖춘 전자 제품들과 가구들을 보면서 '이제는 내 페이 정도는 돈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 세월 동안 무엇을 한 것일까.


4. 다른 길을 걷게 되는 "남자 이야기"


부모님들을 통해서, 아니면 다른 경로를 통해서 흔히 말하는 "선"이라는 자리, 결국 남녀의 "만남 주선"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귓등으로 듣는 듯 마는듯하고 만다. 그것은 이제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 만약, 내가 20대 타인들처럼 오히려 빨리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서 차곡차곡 돈을 모았다면, 현재보다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포기하고 나만의 길을 찾아 살아왔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현재 2021년의 나를 보면서, "나는 철저하게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나 스스로 인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면, "결혼"이라든가 혹은 "출산"이라는 것들에 대해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안정이 된다. 혼자 산다고 가정을 하면 인턴부터 받게 되는 페이도 적은 돈이 아니고, 그 뒤로 내가 개원했을 때, 짊어지게 될 부담감도 훨씬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한 채에 7억이 넘는 아파트에 대해서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될 것이고, 오히려 그것에 대해서 곬 머리를 앓는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서 하고, 내가 타고 싶은 차를 구입해서 타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을 능력이 충분히 될 테니까 말이다.


20세기 말, 그 가을 밤 나는 워크맨에서 흘러나오는 "남자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가 지나야 만날 수 을지 모르는 나의 아이가 대한민국에서 나의 사랑을 받으며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경쟁에 있어서 패배자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 억울할 때도 있지만, 또 나만의 행복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잘 선택하는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독신을 가정한다면 "비스포크"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비싼 제품으로도 내 집을 채울 수 있다. 7억이 넘는 대충 넓이만 고려한 아파트 룸이 여러 개인 아파트 대신 내게 딱 필요한 공간과 현실적으로도 만족스러운 독신자 아파트도 그 이하의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더불어 개원에 대한 부담도 덜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와 달리 꼭 되고 싶었던 "남자 이야기" 속 주인공은 될 수 없다. 사실 이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사람은 어떤 것을 선택하면, 그 밖의 것은 철저하게 외면해야 한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타인을 위해서 살지 않기로 결정을 했다. 그것이 오히려 행복이고 내가 지금까지 노력했던 것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종종 "비스포크" 뿐만 아니라, 내가 소유하고 싶던 고성능 자동차들도 다시 관심을 갖고 보게된다.

사랑은 꼭 사람에게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나는 최근 오히려 내가 마주하는 동물들에게서 사람에게로부터 느꼈던 감정들보다 훨씬 충만한 감정들을 느낀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한다. 그리고 나는 지나온 세월 동안 너무도 변했다. 예전 세대의 말처럼 "하나보다는 둘이 행복하고, 그 속에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재탄생된다"는 말은 이제 한참이나 구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회적 재탄생을 위해 나는 많은 투자를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이제 "남자 이야기"의 가사보다 "비스포크"의 광고와 새로 출시된 "BMW"의 "M series" 광고가 좋다. 지금으로부터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비록 혼자서 노년을 보내며 지난 삶을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잘못 채워진 단추처럼 어긋나고 보기싫으며  힘들고 외로운 지난 삶을 살았기에 더 이상 보편적인 삶과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싶어졌다.


2021년 5월 9일


커버 이미지: 벅스 뮤직


어떤 친구는 내게 어서 반쪽을 만나서 나를 닮은 자식을 낳으라고 말한다. 그에게는 벌써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 있다. 그 친구는 아들들이 커나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솔직히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그 친구의 삶이 내 삶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행복"이라는 것의 삶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고 내 어깨와 등에 많은 짐을 지고 그로 인해서 지쳐버렸다. 이제는 나 혼자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심지어 부모님과의 인연이 끊어진다고 해도, 내가 그 분들을 위해서 했던 노력들을 고려했을 때, 아쉽거나 죄송한 마음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 "압박"을 넣듯이 말한다. '내가 이렇게 했으니, 너도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라는 식의 충고이다. 그런 충고는 사실 오랜 시간 우리가 싫어했던 꼰대들의 충고와 다를 바가 없다. 이제는 어떤 사람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내 낢은 인생을 풍요롭게 그리고 내가 늘 바랐던 만큼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진정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 삶인지 매일 수도 없이 고민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내 남은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안타깝지만 20세기, 내 감성을 촉촉히 적시던 "남자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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