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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y 22. 2021

너는 운전만 해

나는 좋은 차를 볼게

며칠 전, 무려 2~3년 동안이나 연락이 없었던 소중한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가 연락을 하지 않은 채로 몇 해가 지났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나름 바쁘게 살았다. 지인은 지인 나름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쳤고. 나는 나대로 학교에서 살아남고자 그리고 아픈 동생을 보살피고자 늘 숨을 턱까지 참으며 살았다. 아니, 우리는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지인과 나는 20년이 넘는 지기여서, 서로에게 거의 비밀은 없다. 그러나 서로가 가슴 아파할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는 것이 불문률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의 아픈 곳을 잘 알고, 그 것을 함께 아파하며, 또 어떤 부분에서는 아픈 곳이 겹치는 공통 분모도 갖고 있는 사이이기에.




지인은 내게 전화해서 갑자기 "윤아, 형이 차를 바꿔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물었다. 이 대답을 듣고서 한 3초간 가만히 생각을 했다. 지인께서 아직 그럴 나이는 멀었는데, 왜 저런 질문을 하시는지에 대한 생각이 하나였고, 저렇게 질문을 했을 때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잘못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드렸다.


"아, 그러니까요...음, 형이 마음에 드시는 차종이 있으시면, 그 차가 어느 회사차인지 아시잖아요. 그러면 그 회사의 전시장에 가서 마음에 드는 영업사원과 인사를 하고, 일시불로 할 것인지, 할부로 할 것인지 결정을 하시고 차를 사시면 되지 않을까요?? 국산이나 수입이나 다 방법은 동일합니다."라고 말을 했다.


상대쪽에서도 또 한 3초간 말이 없었다. 아마 어이가 없으셔서 중치가 막히셨던 것 같다.


잠시 후...


"형이 너도 알다시피, 지금 차를 15년 넘게 타고 다녔잖아. 근데 이제 경유차량 조기 폐차에 해당도 되고, 차가 많이 부식되어서 위험하거든. 그래서 차를 바꾸려고 하는데, 네가 타는 "그렌져 HG" 어떠냐??"




우선, 형이 벌써15년 동안 같은 차를 탔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그 15년 동안, 착하디 착한 형을 이용해서 사기를 친 사기꾼놈들이 몇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때마다 다시 일어서서 또 어느 정도의 부를 쌓아하고 있는 형의 의지에 놀랐고, 그리고 형보다 가진 것도 하나 없는 사람들도 허세로 수입차를 사는 것에 비해, 국산 신차도 아니고 또 몇 년이나 지난 중고차를 알아보고 있는 형의 검소함에 놀랐다.


"사실, 나도 수입차까지 알아봤는데, 아직 내 주제에 그 것은 아닌가 싶더라고. 물론, 주변 사람들은 이제 어느 정도 돈있으니까 즐기면서 살라고 하는데, 나는 내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거든. 너도 알다시피 형이 일이 워낙 복잡해서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도 생각 못하고 살았으니까, 주변 사람들은 내가 조금 더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옷 입고 사는 것 보고 싶은가봐.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냐??"


'이 사람이 또 내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구나.'...그래도 우리 열심히 살았는데...


"처음에는 그냥 국산차 새차를 사려고 알아봤는데, 조금씩 하나하나 하다보니 수입차까지 가더라, 근데 그 때 정신이 번쩍 드는거야, 아직 이럴 때가 아닌데 내가 실수하고 있는거라는 생각이. 그래서 네가 잘 타고 다니고 있길래, 너처럼 차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타고 다닐 정도면 나는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아서 물어보는겨."




나의 지인은 그동안 다시 사기 당했던 돈을 메우고, 일구느라 정신이 없었나보다. 무엇 하나를 말해줘도 그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를 못한다. 일간 "그래??그래??"라는 말과 "응~~그렇구나."로 대답을 한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타인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대화하는 내내 서로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더 이상 좋은 차도, 좋은 옷을 마다해도 충분하다는 만족의 웃음이었다.


결국, 형은 충분하디 충분한 "여유 자금"을 다시 세이브하는 것으로 하고 "중고 그렌져 HG"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난 뒤, 다시 조금 더 성공하면 그 때 한 번 생각해보겠다는 말로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한 때 가진 돈이 없어서, 그리고 늘 죽도록 노력하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해서 뭇 사람들에게 늘 주눅들어 살았다. "돈"이라는 것이, 그리고 "직업"이라는 것이,사람의 "위치"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울리는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며 살았다. 나는 아직도 그렇다고 하지만, 형은 어느 정도의 자산도 있는데, 굳이 중고승용차를 사는 것을 보며, 형에게도 그 시절이 얼마나 뼈저리게 아팠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내가 느끼고 있고...




남자들에게 차는 어느 정도 이상의 가치를 갖고 있다. 밖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집이나(가보지 않는 이상), 현금 자산(통장을 실제로 까보지 않는 한)등, 모든 것보다 쉽게 드러나고 보여지기에 그 것을 기준으로 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한 때, 나도 그랬고, 지금도 사실 다 버리지 못했다.)


남자들이 그런 성향을 갖게 되는 것에는 원래 남자의 특성도 한몫을 하겠지만, 또 그런 것을 보고 "혹"하는 여성들도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만남의 자리에서도 "차가 뭐에요??"라고 대놓고 묻는 여자들도 수없이 많았고, 혹은 "오빠는 운전해, 나는 오빠차보다 좋은 차가 몇대나 있나 볼게."라고 말하던 여자도 있었다. 그들의 뇌 속에 어떤 생각이 자리잡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남자의 능력은 "차"일 것이 분명하겠지만.


이제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그냥 보통 사람이 타는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래서 나를 보며 사치스럽다며 하던 사람조차 수입차를 몰고 다닌다. 어떤 여자들은 멋진차가 지나가면 탄성을 내며 부러워한다.

여자들이 차를 잘 모른다는 생각은 시대에서 조금 뒤떨어진 사고 방식이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적을지언정, 아무 것도 모르는 일자무식은 아니다. 심지어는 자동차만 봐서는 모르고, 집까지 가봐야 안다고 할 정도의 눈치 빠른 사람들도 이제는 수없이 많다.


7년을 탄 내 차를 보면서 문득 내 차가 한 없이 예뻐졌다. 얼마 전부터 거친 길을 갈 때면, 덜그럭 거리는 소리도 많이 나고, 실내 이 곳, 저 곳에서 찌그덕거리는 소리도 많아서, 조금씩 정도 떨어진 상태였는데.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들도 나와 같은 차를 탄다고 하니, 솔직히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마치 새 차를 처음 받았을 때처럼 설레였다.




어느 걸그룹의 "운전만 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내게도 "운전만 해"라고 말하던 친구도 있었다. 그 정도로 밖에 상대방을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던 일이 끔찍히도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물론, 내게도 다시 "욕심"이라는 것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그 욕심의 뒤에서 또 "사치"를 부리고 싶은 호기도 생길 것이고. 그래, 그렇지만 아직은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더 노력해야 할 때는 더 노력해야 하고, 더 모아야 할 때는 모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어떤 것도 이루지 못한 채 시작선 앞에 있으니까 만족하는 법도 더 배워야 할 것이고.


이제는 "운전만 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없어서 참 다행이다. 물론, 있다고 해도 그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 감사함을 조금 잊은 채 살아가던 오늘, 내게 다시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나의 소중한 사람이 다음 차로는 꼭 안전 "운전만 하기를."



2020-05-22


커버이미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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