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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ug 12. 2021

힘내(Way To Go)...

나도 그리고...

공부를 할 때면 나는 참 외로웠다. 가장 외로운 것은 그 외로움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나의 부모님도 내가 어떤 좋은 결과를 성취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친지들 또한 특히 친가의 친지들은 특별히 아프지도 않던 아버지의 도 넘은 피해 건강 망상증의 원인을 다 내 탓으로 돌렸다.


웃기는 이야기지만, 부계 쪽 친지들 중에는 아버지의 형제들 중에는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대학 근처에 가본 사람도 없었다. 모두 다 4수 이상을 했지만 실패했었고,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뒤로 또 공무원이다 뭐다 준비한다고 몇 년씩을 보내다가 전부 실패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다가 고모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에 준하는 가게 지킴이를 하다가 결혼을 한 사람이 나의 막내 작은 아버지다. 그 운명(??)적인 만남과 결혼을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성과라고 말하는 그를 볼 때면 오히려 내 입에서 비웃음이 흘러나왔지만, 이 나라의 전통과 관례를 무시할 수 없는 법. 나는 오히려 그에게 때때로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어느 해, 어머니가 큰 마음을 먹고 아버지의 생일상을 차렸을 때, 막내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를 데리고 근처 목욕탕을 찾았다. 그리고 중간중간 내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들을 가슴 깊이 꽂아 넣었다.

단 한 번도 대학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듣는 그 말들은 마치 내가 세상에서 최고의 불효자처럼 들렸다.


"너, 네 아버지가 왜 그렇게 아픈 줄 알아?? 네가 공부를 못해서야. 네가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저렇게 아프지 않을 거라고!!"


웃기지도 않았다. 내가 지켜봐 왔던 그(아버지)의 인생, 적어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인생 내내 아프지 않았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내가 공부를 잘했을 때도 아팠고, 내가 최고의 수재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아팠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나는 이 세상에 내 아버지를 아파서 죽이게 하려고 태어난 저주받은 아이였다.




내가 그리 성적이 좋지 않았을 때도, 서울권의 대학은 갈 수 있었다. 지방대학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그들에 비하면 나는 그들과 비교되는 것 자체가 가슴이 아프고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서 수없이 들어야 했다. 


그랬던 내가,

다시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비웃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혀를 끌끌끌 차면서 내가 공부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자식이 생겼고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것을 보며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자식들이 그 바람에 따라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줄 알면서도, 그 속풀이를 내게 보내고는 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들의 속풀이와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를 나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옹호해 준 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할 때도, 그들의 놀림감이었다.


가족과 친지가 그러할진대, 친구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고교 동창생 혹은 친구들에게도 나는 참 많이도 한 없이 철없는 놈으로 비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한 참이나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우연히 만난 모교 전교 꼴찌에게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렸냐??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라며 비웃음이 담긴 비난의 소리를 들었다.


나는 왜, 나보다 못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지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 감정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가장 내 편이 되어줘야 할 사람들이 가장 나를 비난하는 그 시절의 외로움은 수없이 깊은 한(恨)의 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우물은 다시 메워지지 않았다.




내가 외로울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노래를 들으며, 흘러가는 감정대로 나를 맡기는 것이었다. 내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와서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고,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노래들을 들으며 혼자 격하게 울면서 더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감정들을 애써 가라앉혔던 적도 수없이 많았다. 


음악이나 그림 혹은 문학 등의 예술이 훌륭한 이유는 사람의 감정을 치유하고, 다독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안 뒤였다. 그렇게 나는 누군가가 내게 한 번쯤 해줬으면 바라는 위로를 나 스스로 하면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때때로 울기를 반복하면서 세상에 달라진 내 모습을 보여줄 그때만을 기다렸다.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찾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버린 것을...
... 중략...
일등 아닌 보통들에겐 박수조차 남의 일인걸, 단 한 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걸..."

-윤상, SES  달리기
바람은 자유로운데 모르겠어 다들 어디론지
하지만 힘을 내 이만큼 왔잖아
이것쯤은 정말 별거 아냐 세상을 뒤집자 ha!

-소녀시대 힘내!!!!


그렇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찾었지만, 아직도 멀게만 보이는 끝만을 향해서 뛰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완벽하진 않지만  "끝"은 있었다. 조금은 모자란 듯 그리고 아쉬운 듯했던 "끝"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욕심을 냈다. 내 가족들이 내게 원하는 더 큰 "결말"과 "끝"을 위해서 한 걸음씩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달리기를 환주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시 뛸 생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망가져버렸다. 평생 달리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나를 지켜보며 그토록 원망하고 미워하던 그가 바라는 더 큰 결과를 알았지만, 이제는 더 큰 무엇을 바라는 그(아버지)의 무언의 압박에도 나는 더 이상 달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들었던 "끝"과 타협하기로 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공무원 시험을 대비하여 강의하는 한 선생님의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의 말들이 가슴에 차분이 얹혀왔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얼마나 위로를 받을까,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나도 그 동영상에 댓글을 달았다. 외로워도 그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심지어는 청할 곳조차도 없었던 내 모습이 오버랩이 되서였다. 수험생의 외로움은 그만큼 힘든 것이라는 것을 넘치게 알기에 누군가의 달리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나의 댓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었다. 또 많은 수험생들이 내 댓글에 댓글을 올려주기도 했다. 솔직히 너무 감사했다. 나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를 바랐는데, 오히려 내가 더 격려를 얻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게 자신들의 아픔을 써놓은 댓글도 많았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내 의견을 묻는 댓글도 있었다.

그런 수험생들에게는 내 이메일 주소를 통해 몇 번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서 

나와 하는 대화들이, 그들에게 어떤 "정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 몇 초라도 아팠던 그들의 가슴에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랐을 뿐이었다.




수험생활은 노래 가사와는 다르게 끝이 없게 느껴진다. 특히나 해가 갈수록, 수험생활이 길어질수록 그들에게 쌓이는 고통과 무게는 무거워지고, 외로움은 더 깊어진다. 수험생들은 때때로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 하나만을 진실로 느끼기를 바란다.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그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어려움들, 그리고 자신을 믿고 쳐다보는 부모님과 가족들의 눈들을 그들은 한결같이 고마워하면서도 때로는 아픔으로 겪는다.


단 몇 점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다음 시험에는 더 잘 볼 것이라는 그 어떤 보장도 없이 그들은 또다시 그 길에 뛰어든다. 오직, 다음 시험에는 이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 하나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삶의 버팀목이다. 하지만,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조차도 등을 돌리는 순간을 맞을 때가 있다. 그 순간, 그들이 느끼는 외로움과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내 경험을 통해서 나는 안다.(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편은 없었지만.) 


나는 그 외로움을 얼마 되지 않는 크기의 내 방 안에서 20년도 넘게 쓴 책상 앞에 엎드려 울면서 버텼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는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다. 더군다나 작가들처럼 훌륭한 글을 쓸 자신은 더 없다. 그럼에도 내가 짤막한 글이라도 적기 시작했던 이유는 지쳐가는 사람들이 부디 그들이 잡고 있는 "줄"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몇 년이란 시간 동안, 짧은 글들을 써왔다. 그리고 그렇게 봐주지도 않는 글을 쓰면서도 나는 계속 어떤 것을 희망하고 바랐었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에 가장 가까운 의미를 찾았다. 나처럼 외로웠던 사람들, 누군가 아픔을 함께 나누지 않을 때, 그들의 아픔을 듣고 그 아픔의 무게를 나눠줄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만나게 되었다.


지금도 오직 하나만 바라고 자신만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는 분들에게 진심을 담아 전한다.

"힘내!!... 언젠가는 당신이 원하는 끝에서 웃을 수 있기를..."



2021-08-12



수없이 애태우며 기도하며 매일을 살아가는 수험생 여러분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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