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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ug 30. 2021

밤만쥬의 달콤함으로 진심이 전해졌기를.

나는 따스한 사람일까...

학창 시절, 나는 싹수가 없다거나 혹은 차갑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편하기도 했다. 나이가 몇 살씩 차이가 나는 선배들과 다투기도 하고, 거의 주먹다짐까지 간 것도 여러 번, 나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이 시원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내가 살아가는 시간의 대부분 속에서 오직 내게 날아오는 것이라고는 꾸중과 비방, 험담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사람들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고, 또 그리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때때로 사람들과 꼭 어울려야 할 때는 거짓 웃음으로 일관하거나, 마지못해 대답을 하는 식으로 살아 넘겼다. 내게 무엇인가 해를 끼치거나 끼칠 것 같은 사람들은 일기장이나 다이어리에 적어놓고 "반드시", 훗날 되갚아 주겠다고 결심을 하고는 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반드시 갚아주겠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은 세월에 융해되어 사라져 버린 것들도 있었고, 내 아픔을 스스로 감내하면서 갇혀서 나오지 못하도록 딱딱하고 아주 두꺼운 틀 안에 애써 짚어 넣어 그대로 퇴화되도록 만든 것도 있었다.




반려견 유키가 내 곁으로 왔다. 유키는 내게 많은 것을 전해주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과 그 사랑을 표현하는 법까지. 유키는 내 곁으로 온 뒤, 그 진심의 크기와 무게가 조금도 변치 않았다. 유키가 아직 한 참 유년일 무렵, 나는 극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에 빠져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녀석의 존재 때문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외출하는 것을 좋아하는 강아지 친구들의 특성을 배려해서, 늘 일정 시간은 녀석을 차에 태우고 이곳, 저곳을 다녔다.


유키는 나에게는 사랑을 잘 표현하였지만, 반려견들 사이에서는 그 사회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까지 나를 닮은 것인지, 나는 녀석이 오히려 더 이뻤다. 하지만, 유키와 만나는 반려견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것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을 위해서 간식을 가방에 챙겨서 다녔다. 그 결과 나의 등가방에는 유키를 위한 생수(한 참 놀고 지쳤을 때)와 친구들을 위한 간식으로 때로는 한 껏 두툼하기도 했다.


그것이 습관화가 되어 나는 어디에 가든지 간식을 조금씩 갖고 다니게 되었다. 어느 때는 성분이 좋은 사료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마침내는 고양이용 사료라든가 간식까지 챙겨 다니게 되었다. 한 번은, 고양이에게 간식을 준다고 멱살을 잡힌 적도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을 두려워하거나 겁을 낼 나도 아니니, 오히려 내가 더 큰소리를 치고 아이들이 다 먹고 사라질 때까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지켜준 기억도 있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통해서 다시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나누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새벽 3시 16분, 문득 눈이 떨어졌다. 눈이 떨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 것은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 잠시 눈을 뜨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전날 밤 먹은 약의 부작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다. 발코니를 열고 잠이 들면 새벽이면 머리부터 서늘한 바람을 느끼는 요즘이라

침대 위에서 꾸역꾸역 일어나서 차비를 했다. 그리고 새벽 4시가 조금 되기 전,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국도에 차를 올렸다.


어딘가를 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안개가 끼는 날, 그 특유의 느낌이랄까. 무엇인가 뿌옇고 흐리고 그래서 방향감각마저 상실하는 느낌. 그 고유한 느낌이 나는 좋다. 이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조금 멀리까지 내달릴까 하다가, 예전에 대전역의 앞에 새벽에만 자리 잡는 새벽 시장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대로 대전역까지 내리 달렸다.


창문도 열고, 선루프도 열었다.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 왠지 매캐한 가을의 향기가 안개에 가득 물든 것 같아서 음악도 주로 발라드로만 선곡을 해가며 들었다. 아직 깨어나지 않은 도시는 내가 사는 교외만큼 적막했고, 나는 그 적막이 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새벽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새벽 첫 차를 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라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잘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나는 새벽에 집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서 간 곳이라고는 학교가 전부였다. 열차를 이용할 것도 아니면서, 새벽 5시 50분 서울 방향으로 떠나는 KTX 열차의 출발을 기다리다가 열차가 멀어져 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마치, 내가 그 열차에 탑승한 것 마냥, 왠지 월요일 첫날, 나도 출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한 껏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나는 이곳에 남아서 다시 혼자 다음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다시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길 것인가에 대해서 약 2초 정도의 고민 후, 대전역을 빠져나와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하기로 했다.


이 번에는 새벽 버스를 타는 분들의 모습이 궁금해져서, 대전역 근처 주황색 건물 앞의 버스 정류장에 낯선 이들과 섞여서 버스를 기다렸다. 분명, 내가 타고 갈 버스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타고 갈 버스가 곧 올 것처럼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는 영 오지 않았다. 10분이 지났는데도, 버스는 쉬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타고 갈 버스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는 듯이 대전역 광장 주변의 문제가 된 닭둘기들이 내 앞에 먼지를 한 움큼 일으키며 날아올랐다.




나의 오지랖은 왜 이렇게까지 커져버린 것일까. 차를 주차한 곳으로 오던 중, 상자를 줍는 한 아버님과 마주쳤다. 그냥 지나쳐도 별 문제가 아닌데, 나는 왜 또 아버님에게 갑자기 말을 건네었을까.


나는 폐지를 줍는다거나 고물을 수집하시는 분들을 가여히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때로는 존경하며, 그들의 모습에서 삶의 강건함을 느낀다. 맞다. 삶의 고달픔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강한 의지가 있다. 만약, 나는 그분들처럼 그렇게 강한 의지로 삶을 이끌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볼 때면 문득문득 살아있음을 느낀다.


아마도 그런 의미였을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었을까. 나 자신도 모르게, 나는 아버님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네??"

"아버님, 식사는 하셨어요?? 너무 일찍 나오셔서 식사도 못하고 나오셨겠네요??"

"아, 전혀 못 먹었죠. 전혀..."

"많이 출출하지 않으세요??"

"출출하지만 별 수 있나요??"

"그럼 아버님 이 것 드시겠어요?? 별 것 아니지만..."


가방 속에 한 손을 깊이 넣고 이리저리 휘두르며 꺼낸 것은 "밤만쥬" 한 개와 "두유" 한 개...


"이 것을 왜 저를 주셔요??"

"저도 배고프니까요."

"??"

"아버님, 어서 드시고 오늘은 더 많이 모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보겠습니다!!!"


곧, 등을 돌리고 자리를 뜨면서 뒤를 돌아봤을 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 아버님은 내가 드린 밤만쥬 하나와 두유 하나를 드시면서 몹시 흐뭇한 표정이셨으니까.




내가 드린 만쥬의 달콤함과 두유의 고소함이 아버님께 잘 전달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나는 당신들을 절대로 무시하거나 당신들의 삶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라는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되었을까?? 아니, 전달이 되지 않아도 된다. 아버님의 미소 하나를 봤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니까.


아침의 행복함은 하루를 내내 떠다니게 만든다. 그것은 다른 존재들과 어떤 것을 나눠본 존재들만이 아는 기쁨이자 행복이다. 내가 가진 것에서 약간의 것이 떠난다고 해서 그것이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더 큰 무엇인가를 가져오고, 그것은 다시 나를 채우고 또 더 큰 에너지가 되어 퍼져나간다.


그래서, 나는 외출을 할 때면 간단하게 또 무엇인가를 채운다. 강아지들의 간식, 고양이들에게 줄 참치캔 하나 혹은 내가 간식으로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나보다 더 필요한 누군가와 함께 할 달콤한 무엇까지. 그렇게 되면 카메라 용품까지 가득 찬 가방은 볼록 튀어나와 더없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된다. 그래도 괜찮다. 나의 우스꽝스러움이 또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작은 기쁨과 행복이라면, 나의 가방이 조금 더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고 무거워져도 나는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버님, 말씀대로 오늘 많이 모으셨나요??"


2021-08-30


커버 이미지; Google


제가 직접 찍은 사진과 글로 엮어가려고 했던 "그대라서 다행입니다."는 다른 방향으로 다시 시도해보려 합니다. 어쩌면 처음 계획했던 "그대라서 다행입니다."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도 함께 할 것 같습니다. 비록, 느림보 글쟁이라서 잊힐 때쯤에야 한 번씩 올라오는 글들이지만, 귀한 시간들 내셔서 앞으로도 함께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대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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