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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ul 24. 2021

어른이 되어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소나타는 우리 집의 두 번째 승용차였다. 그리고 사실 상, 우리 가족의 명실상부한 첫차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 우리 집은 소나타를 구매했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가 현재의 나이와 어슷비슷하거나 조금 젊었을 때일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의 소나타는 진정한 패밀리 세단이었다. 아직은 "마이카"라 불리는 단어가 낯선 그 당시에, 웬만한 승용차들은 다 "패밀리 세단"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운전을 하고 가족 모두가 그 차에 타고 다니는, 가족에 하나의 자동차가 있는 의미)


우리 집은 외삼촌이 물려주셨던 "프레스토"라는 작은 소형 자동차가 첫차였다. 그러던 와중, 아버지가 사고를 내는 바람에 "프레스토"가 저 세상으로 떠나가고 그다음 맞이한 자동차가 소나타였다. 사실, 소나타를 입양하기 전까지도 몇 가지 선택지를 놓고 고민을 했다. 소나타는 그중 한 가지 선택지였다.


그 당시, 소나타는 1800cc와 2000cc 배기량 둘로 나뉘었고, DOHC 엔진이라고 불리는 엔진이 이제 막 개발되어 소나타에 탑재가 되어 시판되었다. 그때까지 나왔던 SOHC 엔진보다는 한 수 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된 엔진이었음에도 내 기억으로는 엔진 출력이 100마력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의 소나타는 10년을 채워주고 우리 곁에서 떠나갔다. 그 10년 동안,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그리고 재수를 하고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래도 소나타는 꽤 굳건했건만 이번에도 아버지께서 또 사고를 내셨고, 소나타는 그렇게 또 우리를 떠나갔다.(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서 차를 교체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사고가 항상 있었다.)


소나타가 떠나가기 얼마 전 부타 아버지는 그렌져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사실 상, 그렌져는 그 당시에 웬만한 공무원이 타기에는 무리가 있는 차였다. 지금이야 앞차와 접촉사고가 나고 보니 그 차도 그렌져, 나도 그렌져라는 말이 자연스럽지만, 충남대학교의 총장이 타는 관용차가 그렌져였으니, 공무원의 관용차로 볼 때, 그렌져는 1급 공문원의 관용차였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공부를 못해서 좋은 차, 그러니까 그렌져를 못 산다고 늘 내게 말을 했다. 나의 공부와 그렌져와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아버지의 그렌져 사랑은 대단해서, 소나타가 우리 곁을 떠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버지는 그렌져의 오너가 되었다.


아버지가 그렌져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내가 바뀐 것은 없었다. 나는 그냥 아버지를 비롯한 친가의 친지들에게는 공부를 안 하고 속만 썩이는 문제아였다. 다만, 아버지의 번쩍번쩍한 그렌져를 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금수저의 아들로, 부모님의 속을 그토록 썩이는 자식으로 보였을 것이다. 시간은 또 살같이 빠르게 흘렀다. 아버지는 그 사이에 다시 차를 바꾸고 또 바꿨다. 그리고 소나타는 아주 오래전 우리 집 가족들이 설레며 처음 올라타던 가족 같은 녀석이라는 기억에서조차 멀어져 버렸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이가 들고, 내가 운전하는 차를 갖게 되었지만, 소나타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 사이 소나타도 발전과 변신을 거듭했다.  EF에서 NF로 바뀌는가 싶더니, YF... 연식과 이름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생길 만큼 여러 세대를 걸쳤다. 이 모델이 눈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다른 모델이 출시되었고, 또다시 그 모델에 익숙해져서, 이제 우리나라도 차를 참 예쁘게 잘 만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다른 새 모델이 출시되었다. 결국, 얼마 전 유튜브를 보며 알게 된 것은 현재 출시되는 소나타는 "소나타 센슈어스"라는 것이었다.




오래전,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돌이켜보아도 소나타라는 이름은 아주 훌륭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소나타는 자동차에 어떤 리듬을 부여함과 동시에 부티까지 흐르는, 결코 가벼워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차에 심어놓는 것에 성공했다. 그래도 중산층의 가장이 타는 충분히 좋은 차라는 이미지를 절대 잃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왠지 소나타를 타는 3~40대의 남성을 보면 말끔해 보이면서도 듬직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수입차들의 규제가 풀리기 시작했고, 2~30대들도 첫차로 수입차를 선택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렌져는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이미지를 끝까지 갖고 있는 것에 실패했다. (물론, 현대자동차는 지금도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기를 바라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렌져 택시도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렌져도 그렇고 그런 국산차라는 이미지로 자리 잡아버렸다. 


20대의 청년이 2억을 호가하는 포르셰나 벤츠 AMG 등의 자동차들을 운전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는 현재,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성이 그렌져를 운전하고 지나간다고 해도 그 누가 성공한 인생이라고 하지 않을 것은 자명해졌다. 그렌져가 그렇게 대중의 차로 전락해갈 때, 소나타는 이제 사회에 갓 입성한 청년들의 차로 이미지를 탈바꿈했다. 30여 년 전, 우리 가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 고민해서 어렵게 구입하던 "패밀리 세단"은 "어른이 되어가는 사회 초년생"들의 발이 되었다. 




"불혹"의 나이를 지난 현재,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 아직도 나는 학생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자식이 없기 때문인가. "어른"이라 불리는 한 사람의 인생 과정은 어느 시기부터 어느 시기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처음 주민등록증이 나오면 어른이 된다고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성년식을 보냈다고 어른이 되었다고 가정하기에도 너무 빠른 것 같다. 취직을 하고 첫 소득을 올리면 어른인 걸까.


사람들은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 혹은 아이가 있지 않아서 철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그 사람들은 결혼을 하고 부양을 해야 하는 처자식이 있어서 나보다 더 성숙하고 더 어른인 것일까. 어느 날이면, 술 먹고 처자식 부양하기 힘들다고 전화에 대고 징징거리는 그들이 나보다 더 성숙한 어른인 것일까. 


한 때는 한 참 열심히 처자식을 부양하고 사회의 건실한 일원으로 세상을 구성하던 진정한 "가장"이 고민해서 구입하던 승용차를 단지 "옛 것"의 가치를 다시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어른이 되어간다."라고 한다. 그렇다. 옛 것의 가치, 그리고 잊힌 것들의 가치, 그리고 내가 모르고 지나쳤던 작언 것들의 가치를 다시 보고, 그것의 의미를 재해석할 수 있는 시선을 갖게 된다면 진정한 어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용필의 "고추잠자리"를 "힙합"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거나, 성수동 카페거리에서 당근 마켓으로 알게 된 분으로부터 "빈티지 재킷"을 받고, 그 재킷의 가치를 다시 깨달아간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도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어른이 되면, 부모님의 잔소리, 주변의 시선에서부터 벗어나 자유로울 것만 같았다. 나 스스로 돈을 벌고, 그것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그 결과 더 이상 나를 작게 보고, 얕잡아 보는 사람들의 평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쉽지 않으며 나는 지금도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나와 싸우고, 사회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단순히 "어른"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한 단어에 담긴 의미는 너무나도 컸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에 있어서 책임도 질 수 있어야 하며, 내가 누리는 만큼 타인에게도 베풀 줄 알아야 하고, 내가 기쁜 만큼 타인의 아픔과 고통도 감안할 줄 알아야 하는 위치가 어른이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소나타는 내 기억 속, 아버지들의 차였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올려다봤을 때 끝없이 높아 보이고, 한없이 깊어 보이던 분들이었다. ""가치"라는 것을 알아간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너무나도 멋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그 표현 하나만으로도 어른이 되어가는 충분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것의 "가치"를 알아가는 것인가에 대한 것은 따로 남겨둬야 할 과제이다. 단순히 지나간 노래 한 곡을 드라이브 중에 듣는다는 것, 혹은 누군가가 소중히 다뤘던 오랜 재킷을 물려받고 그 가켓의 값어치를 다시 생각해본다는 것 정도의 이해는 곤란하다.


조금 더 어릴 적, 내가 청소년이었던 시절 나는 조금은 문제아였고, 조금은 방탕했으며, 조금은 삐딱했다. 그럴 때에도 나는 그 시절 어른들이 한없이 어려웠다. 그것은 그분들이 갖고 있는 재산 혹은 타고 있는 자동차 , 어떤 일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다. 적어도 "어른"이란 그보다는 어린 누군가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2021-07-24


커버 이미지 구글, 네이버 블로그,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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