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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un 20. 2021

고마워요, 브레이브 걸스

진정한 음악의 힘이란...

"롤리 롤리 롤린~~!! 롤리 롤리 롤린~~!!!!"


한 과목의 이론 시험과 한 과목의 실습 시험이 끝난 금요일 오후, 귀가하는 도중...

자동차의 시동을 걸자마자 블루투스로 연결된 차의 스피커를 통해 "롤린"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과목 모두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은 이미 내 가습 속에 가득했다. 이럴 때면 나의 한계와 마주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 않다. 한 낮이지만, 어둡고 무거운 정적이 가득 차 있었던 차 안에, 음악이 퍼지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조금 전까지와는 다르게, 나는 갑자기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느꼈다. 이제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후회를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무거운 공기마저 조금씩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내친김에 나는 평소에는 잘 열지 않는 선루프를 다 개방했다. 그리고 노래의 음량을 높였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 흔한, 그리고 수없이 유행하는 최근의 가요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 나를 흥분시켰다.




나는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교과목에 속한 음악은 더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피아노를 조금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도 죽을 맛이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굳이 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 더 깊은 반발심을 가져왔다. 그런 것이 뭐가 필요한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음악이라는 과목이 더 싫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가, 한 참 변성기가 왔던 시절, 음악 시험 시간 가창 시험을 보던 중이었다. 변성기로 인해서 완전히 가라앉은 내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어색했다. 그렇지만 시험은 시험이기에, 그 어색하고 부끄러운 감정들을 숨기고 첫 발성을 위해 입을 움직이는 순간, 여자 음악 선생님이 "풋"하고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같은 반의 다른 아이들도 큰 소리로 크게 웃기 시작했다. 나는 얼굴이 벌게진 채로 그 자리에 서서 한 동안 멋쩍은 듯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음악"이라는 과목은 나와는 거리가 먼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고교시절에는 "음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흔히, 말하는 "밴드부"라는, 조금은 불량한 아이들의 집합소와 같은(물론, 그들이 다 불량한 것은 아니다. 진심 음대에 가고 싶은 아이들도 그곳에는 많았으니까.) 그곳을 바라보며 혀만 끌끌 찼을 뿐, 음악 성적은 언제나 최하위였다.




그래도 굳이 꼽으라면, 가요는 즐겨 들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노래도 좀 있고. 하지만, 내가 가요를 좋아한다고 하면, 또 "풉"하고 웃는 이들이 내 주위에 있었다. 한국사람이 한국어로 된 "가요"를 좋아하면 그것이 그토록 없어 보이는 것인지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떤 이들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오랜 팝 그룹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음악"은 이런 것이지.'라며 말했다. 또 다른 이들은 눈을 감고 "클래식"을 들으며, '이 곳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있어, "음악"이라는 것은 이런 것을 일컫는 것이야."라고는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우리나라 말로 된 가요 안에는 우리의 감정이 녹아있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런 감정들은 한국말로 표현되어 있기에 너무나도 저렴하고 가볍게 다가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것이 전자이든지, 아니면 후자이든지 간에 나는 그들의 의견에 전혀 동감할 수 없었다. 나는 "감동"을 받기 위해서라거나, 어떤 것을 진정으로 느끼기 위해서라면, 첫 번째로 "소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그들의 말은 괴변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카메라와 오디오를 자신의 자녀들보다 더 자랑스럽게 말하는 분이었기에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오디오는 물론 훌륭했다. 천만 원을 훨씬 넘는다는 그의 오디오를 보면서, 나는 왜 오디오가 천만 원이 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오디오 가격으로는 부족하다 못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리고 곳곳에 있는 음반 중에 하나를 가져와 턴테이블에 올리고 음악을 재생시켰다.


스피커를 통해서 헨델인지, 바흐인지, 아니면 모차르트인지, 그것도 아니면 베토벤이거나... 아니, 이 중에 없는 음악가들의 음악일 수도 있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내게는 피아노와 여러 가지 악기들을 분명 눈을 감고 미친 척하며 연주하고 있을 연주자들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을 뿐이나, 옆에 있는 그는 눈을 감고 마치 황홀하다는 듯한 표현을 하고 있었다. '음, 이럴 때는 이런 표정을 지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따라 할 때쯤, 그는 입을 떼었다. 


"나는 이런 음악 속에 있는 인간의 감정들, 세상의 이치들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찍는 사진이나 글들도 의미 없다고 생각하네."


그것은 분명 나를 향한 말이었다. 나의 사진과 글을 향한 말이었다. 문득,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나도 그에게 말을 했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하늘을 찌를듯한 오만과 그의 무식함에 대해서 한 마디를 해야만 속이 풀어질 것 같았다.


"분명 선생님의 말씀이 맞겠지요, 저는 이 음악가들이 작곡을 할 때, 이 음악들에 있는 음들의 조화를 위해서, 수학적으로 얼마나 조율을 많이 했을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도 아시지요?? 작곡과 음악의 바탕이 수학에서부터 시작된 것을요?? 그래서 저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자신의 오디오를 내가 가질 수 없다는 것과 내 사진의 깊이가 한없이 낮다는 것을 자신이 듣는 음악을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사진을 찍는 내내,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이상하게도 "사진"이나 "음악"은 연관되어서 따라다니는 일이 많았다. 아마도, "사진"을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 넣는다면, 같은 범주 안에 속하기에.


그들은 한결같이 가요를 멀리했다. 심지어는 천박하다고도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가요가 천박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나는, 그들에게 "예술의 발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다.

어떻게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태동되고 발달되어 왔는지, 그래서 어떻게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책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의 오디오 시스템과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내게 말했다. 많은 것들이 나와 거리가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차 안에서 즐겨 듣는 노래들은 천박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난 그 뒤로도 내가 듣는 음악의 취향을 바꾸지 않았다. 날에 따라,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음악, 노래들을 번갈아 가며, 스트리밍으로 재생해서 들었다. "오디오 시스템"의 가격과 "클래식" 등을 논하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멀리했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내 차 안은 저급한 욕망의 구렁텅이였다. 나는 천만 원이 넘는 오디오 시스템도, 제대로 된 LP판도 없었다. 그리고 여전히 바흐와 헨델을 구별하지 못했고,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왜 머리를 파마를 하고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알았다. 외려, "예술"의 발달사에 대한 책이나 "사진"에 대한 책 혹은 "예술"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고 싶을 때마다, 그에 관련된 책을 조금씩 사서 보고는 했다. 때로는 직접적인 것보다 책을 통해서 지식을 전해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금요일 오후, 밝아지는 차 안에서 나는 긍정의 기분을 느꼈다. 창문을 내렸다. 그리고 창을 통해서 팔을 내밀고 내 손가락을 통해서 뒤로 멀어져 가는 바람을 느꼈다.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살과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바람의 조화로움은 나를 감싸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내려앉아있었던 나의 기분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남은 시험이라도 후회 없이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롤린"은 2017년도에 발매된 노래였다고 하던가, 그 노래를 부른 "브레이브 걸스"는 몇 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이 뚜렷한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시간 속에서 그들은 아마도 굉장히 가슴 아픈 시간을 보냈으리라. 죽도록 노력한 사람에게는 결과가 좋지 않아도 "후회"는 없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였을까?? "브레이브 걸스"의 한 멤버의 인터뷰에서 이제 가수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했다는 인터뷰에서 홀가분함까지 느꼈던 것은. 하지만, 그들은 단단했던 것 같다. 분명, 긍정의 힘이 있었고, 그 긍정의 힘과 노력은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의 눈 밖에 있었던 그들은 뒤늦게서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고,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문득,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면 유독 내가 힘이 더 낫던 이유를 생각해봤다. 그들의 긍정적인 기운이 내게 전달되었던 것일까. 그들이 모든 가수들이 외면한다던 "위문공연"에서조차 그토록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공연을 했던 그 힘이 음악을 타고 전달된 것이 아닐까. "음악"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서 명곡이라고 남아있는 전설적인 가수들의 곡만이 최고가 아니다. 또한 "음악의 아버지" 혹은 "음악의 어머니"처럼 전 시대를 통틀어 존경을 받는 음악가들의 작품만이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원래 "예술"은 인간의 곁에서 인간의 감정을 어루만져줬던 산물이었다. 


지금 내가 "브레이브 걸스"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내고 있는 것을 보며 혹자는 분명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른다. 그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에서 인상을 쓰고 피아노를 치거나 첼로를 연주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 눈을 지그시 감고서 "음악"이란 이런 것이라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는 알고 한 가지는 모른다. 인간의 감정은 모두 다 고귀한 것만은 아니다. 그가 듣고 있는 그 음악의 바탕도 그 음악이 만들어질 때는 현재의 가요처럼 저급의 감정을 바탕으로 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뒤로 며칠 동안 힘들 때면 "브레이브 걸스"의 노래를 들으며 기말고사 기간을 보냈다. 때로는 두 시간

또는 한 시간을 자고 일어날 때에도 문득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졌다. 그리고 그 뒤로 약 닷새 간을 10시간 남짓을 자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 


마지막 시험을 보던 날, 강의실에서 제일 마지막에 나오다시피, 내 나름의 노력을 다했다. 시험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은 아마도 현실이 되겠지만, 긍정의 힘은 나 혼자 많은 시간을 버틸 수 있도록 해줬다. 마지막 시험지를 제출하고 돌아오던 날, 다시 창문을 활짝 열고 그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음악"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훌륭한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브레이브 걸스!!"


2021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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