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걷다가 그 순간과 어울리는 향기나 음악을 떠올려본 사람이 있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걸을 때뿐만이 아니라, 운전을 하며 어디를 가다가도 문득 콧속으로 어떤 향기 혹은 음악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난 도시에 봄이 오면, 대학교 신입생들의 머리에서 풍기는 파마약이나 아니면 조금 짙은 린스 향을 떠올리고는 했다. 지금이야 이미 자신의 외모의 장단점을 잘 알고, 그래서 고교 시절이면 완벽하게 자신을 홍보할 정도로 스스로도 미용이나 성형 등에 밝지만, 내가 대학교에 처음 입학할 때만 해도, 입학식이 가까워 와서야 펌도 해보고, 조금 짧은 옷도 입어보고 했었다.
그 기억은 언제나 나를 잡아놓고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봄"이라는 단어와는 그 향기가 가장 잘 맞도록 내 기억을 맞춰 놓았다.
"음악"도 조금은 가벼운 것들이 좋았다. 꼭 국내 음악이 아니더라도, 가령 "미뉴엣"이라든가(솔직히 무슨 음악인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어도 벌써 봄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가.) 아니면, 되도록 가벼운 템포의 "뉴에이지"음악이 좋았다. (이 것은 절대적으로 나의 취향이다.)
저녁 6시가 되면, 우리는 조금 혼란스러워진다.
반면, "여름"의 향기는 조금 다르다. "봄"의 향기보다는 조금 더 진하고 매혹적이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여름이 정확한 시점에 자리를 내려앉은 것 같이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대학의 신입생들이 이제 막 갓 성인으로서 티를 잡아가는 그런 향기와는 전혀 다른 내음이다. 깊은 여름날(비록, 지금은 코로나 시대지만.) 도시를 걷다 보면, 어느새 비강 속으로 깊게 들어왔다. 지나치는 여성들의 향수 향기 혹은 샤워코롱 향기 등 도시는 봄보다 한층 더 느슨해진 기운으로 달아오른다.
음악도 정열적인 남미 음악이 어울릴 것만 같다. "뉴에이지" 등의 음악은 왠지 내게는 바지까지는 잘 입은 남자가 정장 양말에 스포츠 샌들을 신은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무엇인가 어색하다. 여름밤은 늘 조금 상기되어 있고, 한 종일 뜨겁게 태양이 달구던 지열이 점점 식으면서 올라오는 지열과 더불어, 더 덥고 끈적이면서도 자극적이다.
젊은 선남선녀들은 그 시각까지 기다려왔다. 이제 그들의 시간이 왔다. 그들은 그날의 남은 시간을 즐길 것이며, 밤이 늦어지면 또 다음 날을 기약하며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밤의 끝에 찾아오는 허무함도 여름밤, 도시의 얼굴이다.
가을은 발라드의 계절이다. 모든 것들은 천천히 소멸되어 간다. 너무 빨리 소멸되지 않도록 애써 조금이라도 더 노력하는 계절이다. 반소매에서 긴소매를 걸쳐, 옷들을 껴입고 두툼해진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른 계절에 스카프를 걸치거나 혹은 재킷을 잘 다듬어서 익는다.
조금 후각에 민감한 나 같은 사람은 어떨 때는 지나가는 사람의 옷에서 나는 나프탈렌 냄새를 맡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나의 옷도 두툼해진다. 짧은 머리가 조금씩 어색해지는 것도 같고, 우울해지는 나날이 많아진다. 그래서 음악도 사람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발라드가 대세를 이룬다. 날 두고 누구가 떠나 갖고, 나는 그 사람을 못 잊어할 것이다. 이별에 관한 온갖 스토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럴 때, 나얼이나 박효신의 노래를 차 안에서 듣다 보면 으레 눈물도 나온다. 젠장할 일이다. 세상의 이별이나 고통은 모두 다 내 차지인 것 같다.
나프탈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지만, 나는 종종 그 냄새를 맡는다. 아니면, 오랫동안 옷 장에 정리해뒀던 옷을 꺼냈을 때의 냄새 등등, 그 냄새는 꽤 정겹기도 하다. 그 냄새와 더불어 낙엽을 태우는 냄새가 어우러질 때쯤이면, 이제 우리는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12월이 이제 코앞이다.
나는 더플코트를 좋아한다. 한 동안 유행을 하다가 어느덧 자연스레 사라져 버린 더플코트를 입으면 내가 왠지 무엇인가 옳은 일만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내 자유분방하고 지랄 같은 성격에서 벗어나 조금은 얌전해져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감색 더플코트와 머플러, 그리고 카키색 슬랙스 그리고 굵은 털실로 짠 폴라티를 입고 머플러를 아무렇게나 둘둘 두른다. 여기서 포인트는 둘둘 두른다이다. 너무나 격식을 차린 것 같으면, 영 멋이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겨울에는 되도록 안경을 벗고 렌즈를 낀다. 그렇지 않으면 실내에 들아갈 때마다 눈뜨고 실내를 헤매일 수도 있다.
12월은 딱 크리스마스의 계절이어서(물론, 최근에는 경기침체 등으로, 혹은 코로나로) 예전처럼 화려한 트리나 캐럴은 들을 수가 없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사는 작은 시골 도심에도 몇 개 안 되는 큰 교회에는 엄청난 트리가 늘 만들어졌고, 영구의 캐럴송이라느니, 아니면 온갖 사람들이 웃기는 캐럴송을 들고 나와 웃기지도 않는 캐럴송들을 불러대고는 했다. 캐럴송이 없는 크리스마스라니... 나는 현재가 그 면에서는 훨씬 좋다.
이럴 때는 그냥 1년을 가만히 정리하는 음악이 좋다. 어떤 음악인지는 나도 굳이 모르겠다. 그냥 어떤 음악을 들었는데 마음이 숙연해지고 곰곰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면, 그 음악이 아마 좋을 것이다. 나는 겨울철이 되면 "유키 구라모토"의 음악이나 예전 장화, 홍련이라는 드라마에 나왔던 OST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든고는 한다.
사실, 봄 여름 가을 겨울, 커피 향만큼 우리 가까이에 있는 존재도 없다.
겨울에 가장 좋은 향은 커피 향이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나 우리는 한 해의 끝에 이르렀다. 그 끝에서 나는 따스한 곳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커피 한 잔이라도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감사하다. 그리고 커피 향에 취해 대략 그 나절부터 발표되는 학교 성적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도시의 얼굴을 짧게 표현하고 싶었다. 그러나 도시의 얼굴은 너무나도 많고 서로 이어진 것들이 많아서, 하나도 끝낼 수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몇 개의 글로 나눠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미묘한 감정을 갖고 있는 도시들에 대핸 말을 해보려고 한다.
과연, 도시의 얼굴을 정의할 수 있을까? 아니 도시에는 과연 얼굴이 있을까??
최근 며칠 동안 마치 쌓였던 것들을 풀어내듯이 글을 써 내려갔다. 어쩌면 옹알이 불과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공감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도시는 수많은 불빛이 서로를 비추고 있다. 그리고 그 수만큼의 인생이 둥둥 떠다닌다. 수없이 많은 불빛의 수를 세면서 그 불빛 속에는 어떤 사연과 인연이 숨겨져 있는지 상상하다 보면 갑자기 가슴이 따스해진다. 도시는 가슴이 차가운 공간이지만, 왜 가슴이 따스해지는 것일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면, 죽으라고 미워했던 나의 도시도 잠시 달라 보인다.
서대전 역 뒤의 불빛들, 모든 불빛들에는 사연 하나씩은 있어 보인다.
어쨌든, 도시는 알고자 하면 알 수 없는, 그냥 지나치고자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아까운... 하지만 우리 인구의 대부분이 숨시고 있는 그런 공간, 난 오늘도 그 공간의 사이사이, 뒤를 헤매며 사람들이 듣지 못했던, 그리고 도시가 누군가에게도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들으러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2021-09-23
글/사진 고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