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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an 12. 2022

Red Bull, 날개를 달아줘요.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면...

당학기 성적공시 기간을 단 하루 앞둔 저녁, 마지막 성적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마지막 성적을 확인했다. 2021년 본과 3학년 마지막 과목 성적마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깊은 안도의 한 숨이 나왔다. 그 한숨이 어쩌면 현재의 내 모습을,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나는 살아남았고, 본과 4학년이 된다.




2018년 본과 1학년으로 재입학을 할 무렵, 나는 어떤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 확신이 어떤 근거라거나 바탕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었다. 늦었지만 어찌 되었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감사함이 그 뿌리의 원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9년 동생의 사고와 집안의 경제적 기울어짐은 내게 여러 가지 문제를 안겨줬다. 일련의 사건들은 숨을 내쉬고만 있어도, 내 어깨와 내 등을 짓누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였다. 


학기 초를 맞이하는 학생들은 한결같지 않을까. 모두 다 잘하고 싶고, 모두 다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한다. 어느 누구도 바듯이 한 학기를 패스하는 것에 안도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학점이면 학점, 그리고 조금 먼 미래에 있을 국시 준비까지 나는 동시에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워커홀릭"이라면 "워커홀릭"일까. 그렇게 해야만 어느 순간 오히려 지치지 않고 한 학기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다시 공부를 시작한 첫 학기에 깨달았다. 쉼 없이 나를 사정없이 몰아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이미 깨닫고 있었다.


사이버 캠퍼스는 내게 부담스러웠다. 나의 전공은 방대한 양의 텍스트를 대신하고자 때로는 교수님께서 정리해주시는 자료들이 모두 다 파일화 되어 자료실에 업로드되었다. 자료실에 업로드된 것을 다운을 받아 내 컴퓨터로 옮긴 다하여도 그것은 파일로 모니터 앞에 떠있는 영상일 뿐, 실제로 내가 강의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메모도 할 수 없다. 그냥 멍하니 교수님의 강의와 모니터 속의 자료를 맞춰가는 것만도 힘이 들었다. 끝끝내 이런 비효율적인 시간 낭비는 곧장 시험으로 이어졌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에둘러 가게 된 것, 그것은 내가 초래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나이도 많은 내가 한참이나 어린, 그러니까 조카뻘의 학생들을 쫓아가려면, 적어도 시험을 보고 살아남으려면 그들보다 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비웃만 살뿐, 그 어떤 이점도 없다. 중간고사 두어 주 전부터 나는 준비를 했다. 파일을 순서대로 모아서 정리하고 그것을 복사를 해서 제본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몇몇 제본사에서 나를 속상하게 했다. 여러 번 복사된 것만 수두룩히 나는 그것들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렇다고 결코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한 과목당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범위는 복사, 제본 가격만 해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첨부되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두 번째 사건이었다.




생각해보라. 당신의 앞에 수백 페이지의 제본된 책이 있다. 그것도 한 장당 네 컷의 피피티가 다시 각각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의 모습을. 우선, 구역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다 영어인 것도 못마땅하지만, 그런 것에 트집을 잡을 여유 따위는 없다. 그 많은 양을 다 보고 시험을 준비할 때, 가장 최선의 방법은 최대한 눈에 바르는 것, 그러니까 눈에 익도로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한 과목이 아니지 않은가. 그 두꺼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한 과목을 치르는데, 나는 지금 그럴 시간이 없다. 잠을 줄여야 한다. 가령 2주라면 2주 동안 죽지 않을 정도의 수면 시간만 확보하고 남은 시간은 눈을 뜬 채로 버텨야 한다. 다시 숨이 막혀온다. 커피로 시작을 해서 카페인을 들이붓는다. 엄지와 검지는 떨어져 나갈 듯이 아프고, 중지에는 다시 굳은살이 박혀서 얼얼하다. "지긋지긋하다고!!"를 외치며 이불을 뒤짚 어쓰고 잠을 자고 싶지만, 그것은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입에서 침이 고이지만 어쩔 수 없다. 냉장고를 열고 "날개를 달 준비"를 한다. "레드불"은 알다시피 카페인 과다 음료이다. 이 음료를 마시면 왠지 잠은 오지 않는데 그렇다고 머리가 개운한 것도 아닌, 일종의 가수면 상태로 지속되는 듯했다. 중요한 것은 "레드불" 하나만을 마시는 것은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레드불"에 이온음료 "포카리스웨트"를 일정 비율로 서로 합쳐 새로운 음료를 만들었다. 이온음료가 체내에 빨리 흡수되는 것을 고려한 예전부터 내려오던 방법이었다.


그 음료를 마시면 등줄기가 시원해진다. 아니 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잠시 뒤에는 머리가 시원해진다. 한 번에 그 음료를 다 들이키면 안 된다. 잠시 뒤에는 또다시 잠이 몰려올 것이다. 그러면 뒤에 마실 것을 남겨놔야 한다. 잠은 잊힌 듯 한 순간 다시 나를 덮칠 테니까 잠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너무 잠이 올 때면,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한다. 한 시간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두 시간을 공부하기, 다시 30분 조각 잠자기... 등등 마치 줄타기를 하듯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버텼다. 더불어, 기말고사 기간과 겹쳐진 백신 부작용은 내가 세네 배로 힘든 시험기간을 보내도록 하는 선물을 선사했다. 


하지만, 내 나름의 노력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밑도는 성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웠다. 첫 과목인 내과부터 겁이 날 정도였다. 입에서는 "하~~"라는 신음소리가 성적이 나올 때마다 흘러나왔다. 한 과목, 한 과목이 발표될 때마다 더 위축이 되어서 나중에는 평점 2.0 이하 제적이 나오지는 않을는지 두려움이 일렁였다. 


적어도 2.0은 넘어야 다음 학기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있음에 그 초조함은 더했다. 어려운 커리큘럼에도 불구하고 칼같이 제적을 던져주는 교수님들에게 혹시라도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이 오지는 않을는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입에서는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그리고 '나도 아이패드 하나 있었으면...'이라는 말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진동이 울렸다. 마지막 주까지 나를 초조하게 만들던 세 과목의 성적이 연달아 나왔다. 좋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그것을 탓할 수가 없었다. 마치,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처럼 '이번 학기도 무사히...'라는 말을 되뇌었다. 다행히 마지막 과목까지 더하면 최악의 결과는 훨씬 벗어나, 학자금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음에 안도했다.


이제 나는 본과 4학년이 된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도 동생의 사고와 집안 문제로 인해 1년을 다시 휴학했던 것을 포함해 4년 동안 본과 4학년만 바라보며 달려왔다. 이제 나는 돌아온 1,2, 3학년을 돌아보며 바듯이 숨을 놓는다. 매 순간 쉴 새 없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던 지난 4년간은 늘 좌불안석이었다.


긴 터널을 때로는 안단테로 어느 때는 프레스토로 번갈아가며 달렸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 조금씩 밝아지는 빛을 보고 있다. 진정한 Pre-vet이 되었다. 그 여정은 웃음과 눈물의 반복이었다. 하늘에 감사한다. 그리고 "레드불"에 감사한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때로는 내게 붉은 소변과 여러 가지 부작용을 함께 선사해줬지만, 내가 꼭 날아야만 할 때, 날도록 해 준 "레드불"이 있었기에, 나는 이제 4학년을 달릴 준비를 한다.


2022년 1월 12일


커버이미지 아마존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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