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윤 Feb 03. 2022

글을 쓰는 사람과 책을 쓰는 작가

출판에 욕심을 놓은 이유

"낀세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낀세대"는 대한민국에서 이 세대와 저 세대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그야말로 어중간한 세대를 말 그대로 표현한 단어이다. 


나는 "낀세대"이다. 지금 수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려운 수능을 치렀고, 그리고 본고사를 치르는 세대였으며, 그와 동시에 IMF를 두 눈으로 체험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나의 바로 웃세대까지만 해도 말 그대로 꿀을 빨던 세대였다. 586세대가 대한민국의 버블경제로 인해 먹고사는 문제와 떨어져 자신들의 말도 안 되는 가치로 세상을 휘젓던 시대와는 달라져서,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어디로 취업을 해야 하는지 걱정을 하게 된 세대. 바로 그 세대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암기 세대였다. "수능"이라는 이름으로 대학 입학시험이 변동되었지만, 학력고사 세대와 유사한 방식으로 우리는 교육받았다. 단어집을 외우고, 정석책을 보고 그 모든 것들이 완성되어서 성적이 잘 나오면 그 뒤에 SKY를 비롯한 서울권의 좋은 대학들은 "논술"과 "본고사"를 치렀다. 그야말로 우리 "낀세대"의 학창 시절은 육해공을 모두 잘해야만 갈 수 있는 세대였다.




논술은 늘 어려웠다. 어떤 사람은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했고, 어떤 이는 신문 사설을 많이 보고 글을 파악하고 그것에 대해서 나의 생각을 서술하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논술 모의고사를 보고 나서 채점되어 나온 나의 성적표를 보면, 엉망진창이었다. 이 것도 저 것도 아닌 논거가 바탕이다. 이곳에는 접속사를 다른 것을 써라, 마지못해 맞춤법까지... 나의 논술 시험지를 되돌려 받을 때면 처음 글을 썼던 까만 글자보다 오히려 퇴고를 받은 빨간 글자가 더 많이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재수를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나 알게 된 것은, 그 논술을 채점하는 사람 역시 일계 아르바이트 대학생일 뿐 전문가도 교수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논술과 담을 쌓았다. 그리고 쓰는 것 대신 글을 읽고 음미하고 혼자 상상하는 일에 더 시간을 투자했다. 


하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몇 번의 논술 고사를 치렀다. SKY에 지원했을 때, 그리고 그 외 다른 몇 곳의 대학에 지원했을 때, 논술고사를 봤지만 좋은 성적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때, 나는 정말 나와 인문계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10년이 넘도록 문과충이었음을 절절하게 믿었던 것과 이별하고, 자연계로 발을 돌렸다.




글을 다시 쓰게 된 것은 블로그에 혼자 끄적거리기 시작한 뒤였다. 사진과 함께 끄적거린 글들을 의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그때부터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좋은 글은 어떤 글인가, 에 대한 질문은 내게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브런치 작가라는 낯간지러운 타이틀을 얻은지도 만으로 3년 가까이 되었지만, 내가 쓴 글은 고작 90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글들 중 일부는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다지 만족스러운 글이 아니었다.


가령, 내가 정말 누군가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의도로 쓴 글들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 외로 제목이 어그로를 끄는 글들은 나름 이곳, 저곳의 메인에도 올라가는 영광(??) 아닌 영광을 누렸다. 하루에 몇 만 명의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다는 것은 등줄기가 짜릿할 정도의 쾌감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 글들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내 정확한 감정이라랄까.


꽤 많은 글들이 다음과 카카오 메인에 올랐다.




한 때는 정말 이만하면 출판을 해볼까??라는 건방진 생각이 들었을 무렵, 내가 나를 홍보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내 글들이 진정 내가 원했던 의도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브런치뿐만 아니라 내가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도 출판을 하기 시작했다. 출판의 붐이었다. 심지어는 얼마 전, 나와 동기였던 올해 국가고시를 치른 친구들도 브런치 연계인 "부끄끄"를 통해서 출판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출판에 대한 열정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의 글을 내놓고 싶지도 않아졌고, 내 글이 어디에 가서 팔린다는 보장도 확실히 없는 가정 하에 바보 같은 마음고생은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현재 글을 쓰는 사람에 불과할 뿐, 누구에게 "작가"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글을 맛깔나게 쓰는 것도 아니며, 책이 팔릴만한 그 어떤 소스도 역시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 날, 브런치에서 날아온 내 글에 대한 통계는 만족스러웠지만, 그것과 출판은 별개라는 생각을 한다. 나는 출판을 할 만큼 재정적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당장은 또 졸업과 국시를 1년 앞두고 있는 사람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 정도로 만족을 하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진정으로 출판을 하는 

"책을 쓰는 작가"가 될지도. 하지만, 매일 쏟아져 나오는 수없이 많은 책더미 위에 의미 없는 책 한 권을 더 올려놓는 것은 의미 없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에 만족을 하려고 한다.




오랜만에 글을 썼다. 그리고 글을 쓰며 내가 브런치에서 지나온 시간들도 천천히 되돌아봤다. 아직은, 아직은 미완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으로 내 마음들을 담아낸 글들이 오롯이 모일 때까지 욕심을 부리지 않으련다. 글 쓰는 것 하나에만 오롯이 전념할 수 있는 분들이 진심을 담아 써 내려간 글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너무나 쉽게 쓰인 글들은 그만큼 가볍다. 책도 가볍고 그 책을 채우고 있는 책장도 가벼우며 그 책장을 채우고 있는 글들은 더 가볍다. 이왕이면 나는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것이 시간이 지난 뒤에도

스스로 내 책을 평가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자유롭다. 책을 쓰는 작가는 그만큼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로운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펼쳐낼 수 있는 글을 쓰는 것. 그것이 바로 글을 쓰는 작가가 책을 쓰는 작가보다 훨씬 행복한 이유다.


2022-02-02



매거진의 이전글 Red Bull, 날개를 달아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