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대윤 Mar 28. 2023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만.

죽고자 하면 죽는다.

이제 2개월이 지났다. 2개월이라는 시간은 나를 온갖 악몽에 시달리도록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더 나아가 나를 비웃는 소리가 귀에 계속 맴돌 정도로 내 정신세계를 다시 한번 뒤흔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어머 불합격이래~~"

"인간이 어쩜 그럴 수가 있지??" 등등의 환청은 내 얼굴을 비로소 노랗게 만들었고, 약 한 통을 다 먹고 이생과 인연을 끊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렇다.

나는 지나가는 개도 시험 보면 붙는다는 "국가고시 불합격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쉬운 듯하면서 어려운 시험 중 하나가 바로 이 "의사, 치과의사, 수의사, 약사" 등등의 국가고시일 것이다. 요 녀석들은 운전면허처럼 일정 점수를 넘으면 합격이 되는데, 또 반대로 과락이 존재하고 있어서 아주 사람을 못 살게 만드는 시험들이다.


가령, 350점 만점에 최저 210점을 맞으면 합격이다. 이렇게 보면 '하... 저걸 못 맞아?'라고 생각하다가 1,2,3,4 교시 과락이 하나라도 있으면 불합격이 되니까, 이 것이 또 쉽지가 않다.


나 역시 이 것을 아주 숙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어린 학우들보다 공부를 더 빨리 시작했다. 하지만, 작년에는 우리 집에 드리워진 검은 구름이 하나가 있었으니, 내 반려견 유키의 건강 악화였다.


유키는 5월 초부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5월 초부터는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요 작은 녀석이 언제든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일을 눈물에 젖어 지냈다.

그리고 녀석은 그에 마치 화답이라도 하듯이 6월부터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있기만 했다.

나는 수액도 놔주고, 일일이 밥도 먹이고 하면서 매일을 버텨나갔다. 그렇게 녀석은 생과 사를 번갈아 오갔다.




그렇게 녀석과 나, 그리고 가족들은 녀석의 모습을 지켜보기에 바빴다. 녀석은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가를 반복하는데, 의식을 찾으면 항상 나의 존재를 먼저 확인했고, 다시 떨리는 다리로 걸어서 거실에 엎드려 가족들의 동태를 힘없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렇게 내 생일을 보내고, 여름을 보내고, 추석까지 보냈다. 그때까지 난 무엇인가 많이 공부한 것 같이 느꼈는데, 아마 그렇게 느낀 것이 내 실수였나 보다. 유키는 추석 명절을 보내고도 힘은 없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그것이 감사해서 나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과 유키와 보낸 것 같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데려온 나의 첫 반려견이고 내 자식이었으며, 내 전부였으니까. 


2022년 10월 16일...

날짜도 잊어버리지 않을 가을날.

유키는 소변을 보던 중, 갑자기 옆으로 쓰러져서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는 일이 벌어졌다. 내 13년 지기, 13년 동안의 동생이자 자식 같은 존재가 내 앞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세상을 떠났다. 얼마나 울어야 될지, 감이 잡히지 않은 채 몇 주를 그렇게 앓았다.


소중한 시간이었지만, 난 어쩔 수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시험이 다가와 있었는데, 나름 자신은 있었다. 공부를 아예 안 한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했다는 가정하에 나는 꼭 합격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 날은 무엇인가가 풀리지 않기 시작했다. 아날로그시계 대신 전자시계를 갖고 갔던 나는(그토록 아날로그를 좋아한다면서 디지털을 선택한 이유는 뭐란 말인가.) 전자시계 사용 금지를 명 받았다. 교실의 맨 위에 걸려있던 시계는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인지 내가 앉은 곳에서는 잘 보이지가 않았다. 이 얼쑤 좋구나.

일이 잘 돌아간다!! 그래도 나는 시험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1교시부터 내 예상과는 다르게 꼬이기 시작했다.

'어라?? 이게 뭐지?????'

해부는 예상했던 대로 "XX"이었다, 그래서 "조직"으로 넘겼는데, 이제는 "XX"부터 자연스레 단어가 몇 개씩 더 붙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래, "생리학", "생화학"...


충분히 준비했던 부분인데, 뭔가가 안 좋다. 이 것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사이에 100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100분은 마치 10분 같았다.




2교시, 3교시, 4교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점심시간에는 도시락도 버릴 정도로 짜증이 솟아있었다. '이거 왜 이러지...'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고, 결국 위경련이 찾아오는 가뿐한 몸 상태까지 찾아오더니,  그러던 와중에 모든 시간이 다 끝났다.


내 머릿속은 완전히 황폐화되어 있었고. 이거 잘 못하면 "국가고시 불합격자"가 되는 집안 대대로의 영광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그렇게 시험이 끝나자마자부터 인식을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시험의 맛이란 것은 "기다림의 승부", "발표의 미학" 아니던가.

나는 불안한 와중에 기다렸다.


보란 듯이 이 승부를 뒤집는 "역전"을 꿈꾸며...




짐작하셨다시피,

역전은 없었다. 다시 한번, 나의 패배를 확인해 주는 일 밖에는.


발표 예정일보다 하루 일찍 연락온 소식에 나는 세상이 다 끝난 것을 느꼈다.


"아... 본과 4년을 어떻게 보냈는데...'


스터디도 없이 혼자서 보내던 나의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왠지 유키가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것 같은 환청도 들렸다.


'그래, 이제 공부하기에는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다. 그래 가자...'라는 생각만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뜻밖으로 위로를 건네주셨다. 인생 살다 살다, 어머니한테 위로를 받은 적은, 특히 성적으로 위로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눈물이 나왔다. 콧물도 나왔다. 


이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하는가만 남아있었다.




깊은 상처에 새살이 돋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아무리 빨리 그것을 잊고 다시 일을 하려 해도 쉽사리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다렸다. 나 스스로가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림의 끝에 다시 새살이 가득 차 올라오면, 다시 시작할 것을 혼자 되뇌며.


지난 시험은 내가 실패를 자초한 시험이기도 했다. "유키" 녀석이 세상을 떠나는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었고,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나는 내 "반려견" 곁을 지킬 것 같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여전하니까.


내가 실수했던 부분, 오기나 실수를 마치 타인의 탓인 양 넘기려고 했던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직도 나는 멀었다는 것을 인정한 채로, 다시 처음부터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브런치에도 글을 남기니까, 속이 시원하다.

이제는 다시 공부를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저 국가고시에서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들었던지.


이제, 타인들에게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다. 한심하기도 하고 멍청하기도 하다.

그러나, 심각할 정도로 달려왔던 내 5년(본과 4년+1년 휴학) 동안의 시간의 끝이 맑지 않아서 그 점이 가슴이 아플 뿐이다.


앞으로 시험을 앞둔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부디, 준비 잘하셔서 나 같은 실패는 하지지 마시라고, 실력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실패보다도 더 슬픈 것은 잘 준비하지 못한 어설픔에서 오는 실패이기에, 그 쓰디쓴 맛은 보지 마시라고.


이제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한다. 작년보다 4개월 앞서 시작을 한다. 

이 번 시험에서는 다시 나의 존재를 나 스스로 증명할 때이다.


2023-03-28


written by HARU

매거진의 이전글 글을 쓰는 사람과 책을 쓰는 작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