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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15. 2023

나는 자가용과 멀리 하기로 했다.

돈이 없는 자의 치사한 변명

인생이 한 번 꼬이면, 여러 가지로 뒤틀리는 묘한 재미가 있다. 그것을 나는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인지라, 매일이 폭발이고 매일이 짜증인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정 어쩔 수 없는 순간을 만나면 그때서야 못 이기는 척 변명을 한다. 오늘 쓰는 글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다. 변명하는 자의 입술은 얇고도 아름답다. 그럼 지금부터 자가용과 멀리하기로 한 이야기, 나만의 썰을 풀어보려 한다.


나의 구독자인 분들은 아시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맞다. 내 차는 대략 8년이 된 언제나 "성공"의 상징인 그렌져 HG이다. 12만 Km 때 주행 리뷰를 쓰고 오랜만에 이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맞다.  이쯤에서 예상하신 분들이 계실 것이다. 나의 그랑죠(애칭)와 이별하였거나 아니면 슬픈 뒷이야기를 풀어낼 것이라는 것을. 




안 되는 놈은 계속해서 안 되는 놈이 있다. 어떤 사람은 1번 보고도 붙는 시험에 3번을 넘게 보고도 떨어지는 나 같은 놈이 바로 그런 놈이 되시겠다. 처음에 나의 불합격 소식에 장난인 줄 알고 몇 번이나 되물어봤을 정도로 내 정신적 충격은 컸다. 얼마동안은 머리가 다 탁하고, 잇몸이 다 흔들릴 정도로 아팠다. 그래, 죽으라 하는 놈은 죽어야 되는 법이다. 이 얼마나 클리어한 세상의 이치인가. 내 나이도 들어가는데, 이쯤 돼서 죽자!!라는 생각도 치밀어 올랐다. 한 편, 아직 내 인생은 꽃피어 본 적도 없는데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슬픈 일인가라는 생각에 밤새 눈물, 꽃물 짜내며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번갈아 쏟아냈다.


'그래, 죽기 전에 내하고 싶던 일들은 해보고 죽어야지.1년 시간 금방 간다.'라는 생각에 다시금 인생 낭비 코드를 제거하고 일상을 정리했더니, 내 앞으로 떡하니 돌아온 것은 오직 "채무", "빚"밖에 없더이다.


학자금 대출에, 스마트폰 요금에, 너무 급해서 다른 분들에게 차용해서 쓴 돈에, 국가에 관련된 세금, 가령 자동차세에, 더불어 자동차 보험료까지. 돈을 계산해 보니 이 것은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이 아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내 인생이 워낙 잘 꼬인다.'로 퉁을 치고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하고 나니, 대충 남은 것을 자동차 보험이었다.




아~~!! 진짜 미치고도 환장할 정도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자동차 보험료를 못 내다니, 그래서 차를 타고 다닐 수 없다니. 그럼에도 자동차를 제일 뒤로 몰아둔 것은 자동차가 없어도 살아가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뒤로, 나는 반드시 차를 이용해서 가야 하는 곳은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얼마나 어리바리 살아왔는지 내가 사는 곳의 대중교통 버스를 탈 때는 전부 교통 카드로만 타야 한다는 사실에 기겁을 하고 놀랐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을 뻔뻔하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단 말인가.


처음 카드가 없이 타던 날, 나는 버스 운전기사님의 배려로 고개가 90도를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뻔뻔하기도 하지


그리고 교통카드에 충전을 하면서 다시금 돈 귀한 줄 알게 되었는데, 무려 거금 만원으로 충전을 하여도 왕복 세 번 정도의 요금도 채 되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니 앉아있는 위치의 높이에서 오는 시선의 차이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앞만 보고 달려올 때, 나보다 위에서 또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달렸을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꿈이 내게도 전달이 되었다. 


버스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연 이틀 버스를 타고 볼 일을 보러 다녀온 다음 날, 나는 차멀미 비슷한 증상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더불어, 매일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일을 보고 퇴근하는 사람들의 대단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의 나라면 가능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게을러졌던가.


며칠을 버스에서 거리의 승용차를 내려다보며, 내 차 또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8년 차가 넘어 이제나, 저제나, 차만 바꿀 생각을 하고 있던 나의 양심이 찔리기도 하고, 내 일상의 내 주변에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다시금 느끼게 되기도 했다.


돈 만원을 충전했음에도 왕복 3번 정도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주유비를 아무 생각 없이 썼던 것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도 되고, 조금 더 경제적인 관점이 살아나기도 했다.




현재 나의 그랑죠는 지하 주차장에서 잘(??) 잠자고 있다. 어느 정도라고 물어보신다면, 배터리가 방전돼서 웰컴라이트도 들어오지도 않고, 당연히 시동 걸리지 않으니까 전기차 같이 조용하며, 엔진 오일은 언제 갈았던가, 차계부를 봐도 잘 알 수가 없고, 앞바퀴 타이어가 닳아서 조금 있으면 철심이 튀어나와도 의심스럽지 않을 만큼의 상태로 바듯이 생명 연장 중이시다.


그랑죠에 보험료를 지불하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운행을 재개한다고 가정을 해보니, 내가 써야 할 돈이 너무 아까워서 고민 중이다. 조금 불편하기는 해도 버스를 타도 집이 종점 근처라 대부분 앉아 다닐 수 있고, 사실 요즘 자가용이 많이 늘어나서 버스 타는 사람수도 적어졌다. 한껏 몸이 불어나 뒤뚱뒤뚱 거리는 몸으로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려면, 평상시보다 균형감각과 운동감각이라도 살려야 하니 좋다. 


나는 지금 다시 한번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숨을 크게 쉬며 도움닫기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몸풀기의 준비과정이 끝나면 나는 바로 최고로 빠른 속력으로 도움닫기를 할 것이다. 그때까지만이라도 내가 갖고 있던 편안하고 나름 좋았던 것들과 멀리 떨어져 보고 싶기도 하다. 모든 것이 다 풍족하거나, 내 주변에 팔만 뻗으면 갖춰진 환경에서는 야수도 먹이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듯이.




자가용과 한 동안 멀리하기로 했다. 불편한 것은 조금 더 부지런함으로 채우고, 한 걸음 더 빨리 움직이며 살아보기로 했다. 차가 좀 없으면 어떤가. 정말 구차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 달리 불행하다고 생각되거나 불편하지 않다. 이 것이 현재의 나이고 내 생각이다.


아마도 내 그랑죠가 다시 거리에 굴러다니려면 한 동안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보다 다시는 기사님들께 90도 넘어 인사하지 않을 정도로 내 버스카드에 충전이 되기를 바란다. 궁핍한 현재의 내게는 돈 만원의 힘은 꽤 강력하고 크다.


Written by HARU


이미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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