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같은 시간을 보나요.
깊은 가을날이었다. "가을"의 앞에 "깊은"이라는 형용사가 꼭 붙어야 될 것만 같은 그런 날들 말이다.
이제 낙엽도 많이 떨어졌고, 하루하루 다르게 기온도 떨어지고, 특히 낮과 밤의 차이는 더 큰 그런 날들의 연속.
이럴 때는 어디론가 아주 잠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 긴 여행은 아니다. 오히려 긴 여행은 연속적인 이런 날들을 만끽하기에 부적합하다. 아주 짧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래서 그 시간 속에서만 잠깐 머물고 나오는, 그런 여행이어야 한다.
만약, 여행이 길어진다면 내 안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우울"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Melancholy"라는 단어로 자신을 변장한 채 사정없이 내 속을 할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딱 반나절의 여행을 하기로 했다.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라면 내가 생활하는 곳을 벗어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나와 가깝지만 자주는 찾지 못하는 곳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곳을 찾아야 한다. 그곳을 찾았으면 카메라 한 대만 어깨에 둘러메고 여행을 떠난다.
이럴 때, 구형이지만 내 곁에서 발 노릇을 해주는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좋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사람들을 보면서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렇기에는 그 "길이"가 너무 짧아서 얼른 이동을 해야 한다.
내가 찾는 여행지 중 조건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혼자" 찾아도 무방한 곳이라면 더 좋겠다. 다 좋은데, 혼자가 타인의 눈에 쉽게 띄고 타인들의 눈에 방해가 되는 그런 장소라면, 아무리 철판을 얼굴에 깔은 나라고 할지라도 조금 불편하다.
나의 도시에는 "혼자" 찾아도 이상하지 않은 몇 곳이 있다. 그중 한 곳을 "여행"의 "목적지"로 삼고 도착하니 때마침 해가 기울어간다. 이 맘 때의 공간의 냄새는 다른 계절과는 다르다. 차갑지만 알싸하지는 않은.
나에게 딱 맞는 목적지에서의 마무리는 항상 사진이다. 나와 그들이 같은 시간을 함께 영위했다는 것에 대한 기억이다. 기억은 잘 사라지지 않지만, 휘발성 강한 나의 뇌는 또 그것들을 태워버릴 수 있기에, 늘 그 기억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놓는다.
나는 그들과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나와 같은 시간을 보냈을까.
그들은 나와 같이 도피처를 찾아온 것이었을까.
이제 해는 완전히 저물어 "목적지"에서 "둥지"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된다.
다시 나는 진흙탕 같은 현실에서 뒹굴 것이다. 그리고 어느 때가 되면 또 목이 마를지도 모른다.
그러면 "목적지"를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목적지"가 똑같은 곳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곳이 되었든 간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또 생각에 빠질 것이다.
2023-06-30
Photo/Written By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