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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ul 09. 2023

직접 해보시고 말씀하세요.

남의 일은 쉬어 보이는 법이라.

그렇다. 나는 국가고시에 실패한 패배자이다. 패배자의 멍에를 둘러쓰면 과 내에서 혹은 전국 학과 내에서 얼마나 불명예스러운 일인지 자각하게 된다. 타인들과 다 같이 똑같은 공부를 했는데 나는 왜 떨어져야 하는가.

이런 생각에서부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실수를 했는지, 끝없이 의심하고 부정한다. 그것이 탈락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다.


하지만, 누군가들은 말한다. "국가고시는 개가 봐도 붙는다는데...."

"그렇다. 난 개가 아니라서 떨어졌다."


사람들은 남의 일을 참 쉽게 말한다. 왜 그렇게 타인의 삶에 대해서 쉽게만 바라보고 이야기하는 것일까. 

난 그 원인을 본인들이 직접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 나이가 스물 하고도 한 살 때 나는 재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서 부모님 몰래 3수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 알리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나는 수학에는 영 잼병이었다. 도저히 문제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서 정석책(우리 때는 수학은 거의 정석으로 시작되어 완성되다시피 했다.)을 펼처놓고 공부하고 있노라면 타인의 눈이 어지간히 신경 쓰이고는 했다. 왜냐하면, 대학생이 정석책을 펼치고 공부한다 함은 '재수를 생각하고 있구나.'라는 추측을 쉬이 할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맞다. 나는 쉬이 생각할 수 있는 그 시대에 다시 3수를 준비했다. 그 당시의 나도 상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너무도 쉽게 세상을 보던 때였기에 나도 뜨거운 채찍질을 맛보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하는 것과 타인이 지적을 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해나가려고 노력을 하던 상황이었고, 그 상황이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매일이 눈물이었다. 

여름 방학 중 어느 날, 친구들이 모인 자리였다. 술이 다 알딸딸하게 취한 날, 친구 중 한 녀석이 나를 향해 폭언을 했다. "나는 저 새끼가 병신같이 저렇게 사는 것이 싫어. 왜 병신같이 정석 책을 껴안고 있냐. 너 병신이냐."등을 연발했다. 똑같이 맞대응으로 화를 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괴감뿐이었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난 이 나이에 대학을 다니다가 국가고시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내가 실패한 것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결국 내가 안일하게 생각을 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나서는 나 자신에게 어떤 변명도 인정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지인 한 분이 내게 국시에 대해 말씀을 하시며 넌지시 말했다. "그 시험 아무나 되는 것 아니에요?? 졸업하면 거의 다 된다고 보면 되던데, 머리가 아주 안 좋은 이상 다 합격하는 시험이잖아요."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그 질문에 대답을 하기가 난감했다. 

하지만, 그 뒤로 몰려오는 불쾌감이 상당했다. 그 첫 번째가 "머리가 안 좋은 이상"이라는 단호한 추측력이 그 하나요, "아무나"라고 부르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추측력이 또 그 하나였다."

그렇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그런 생각으로 시험을 대했다가 대차게 불합격했기 때문이다. 


공부에 대한 노력을 뭇사람들을 별 볼 일 없이 생각하기도 한다. 가장 하기 쉬운 것으로 평가한다. 그 어느 옛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의 이름처럼 제일 쉬운 것으로 평가한다. 이럴 때면 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게 쉬운 것을 나는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서 이렇게 헤매고 있는 것이다. 




2023년도 의사 국가고시에서도 울산대 의대 학생들의 25%가 불합격하는 일이 발생했다. 대한민국의 수재들 중에 수재들이 가득하다는 그곳에서도 불합격은 존재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들 중 아무도 '자신의 일 이외에 직접 노력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자신의 일에서도 노력을 하고 있을까.' 매 시간 고민하고 매시간 좌절하며 매시간을 후회하는 철저하게 외로운 삶을 살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주 극히 드문 사람들이지만, 타인이 하는 일에 대한 고충과 고민과 아픔을 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한다. 나도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실패를 맛봤었고, 아파했으며 좌절했었다. 내 앞에 맞서고 있는 어떤 대상에 대한 시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분명 또 실패를 맛볼 것이다.


타인에게 말을 쉬이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일에도 떳떳이 맞서보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하는 일에 대해서 그 가치를 섣불리 논하지 말라. 타인에 대한 가치를 멋대로 추측하지 말라.

그러면서 쉬이 당신의 가치를 누군가 알아주리라 기대하지 말라. 세상은 그리 만만한 공간이 아니다. 끊임없이 아파하고 고민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논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미지: 경향신문

Written By HARU


어떤 사람이 하는 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수없이 아파야만 했다. 그 아픔 끝에서 나는 나에대해서도 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타인의 일에, 혹은 타인의 삶에 평가하기 전까지 제발 숙고하기를 바란다. 세상에는 자신이 편안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타인과 나에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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