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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Jul 22. 2023

허영심 좀 있습니다.

약간의 허세는 미래의 나를 위한 몸부림

드라마 글로리가 한 참 인기 있을 때, 내가 가장 좋아한 캐릭터는 "차주영"이었다. 그녀가 학교 폭력에 가담되어 있다던가 아니던가 하는 것을 떠나서, 그녀의 허세가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떤 이들은 허세를 부리면 마치 다 망하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그것을 보면 마치 못 볼 것을 본 양 인상을 찌푸리며 눈먼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맞다. 허세는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소한 것이 미덕인 이 나라에서 허세는 죽어도 부리면 안 될 부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찍부터 이 나라에는 허세가 존재했다. 조선시대에 쌍놈들이 공명첩이나 명망 있지만 가난한 양반집안의 족보를 사들여 양반행세를 했다. 한 땐, 집이 없는 것은 안 된다며 있는 돈 다 끌어다 써도 모자라서 은행에 빚까지 져가며 집을 샀다. 그 당시 만들어진 말이 바로 하우스푸어다.


하우스푸어는 나보다 조금 웃세대의 전유물이다. 그 당시에는 집을 사는 것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것의 일반적인 양상이었나 보다. 한 참 그 시대에 발맞춰 아파트의 브랜드화도 시작되었다. 하우스푸어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평생을 갚아야 하는 금액을 대출하기 때문에 평생을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 시대에 집을 사고도 지금도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 그 후유증이 얼마나 큰 줄 자연스레 알게 된다.


최근에는 하우스푸어 대신 카푸어를 비롯해서 SNS를 통해서 별별 푸어족들이 다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러워지는 것이 우선되는 감정이다. 내가 못 갔고 있는 자동차, 내가 치지 못하는 골프, 내 손목에는 없는 명품시계등을 보면 그곳은 딴 세상이다.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해외여행을 내 집 드나들 듯 드나들며, 찍어 나르는 사진들도, 그 모두 다 부러움 그 자체다. (부럽지 않다면 당신은 정말 성인이다.)




나는 최근 내 그렌져에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14만 km을 주행한 그렌져는 겉에서 보면 멀쩡한 편이다. 아직도 광택이 비교적 살아있는 편이고(솔직히 진주색이라 잘 모르겠다.) 그렌져 세대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는 모델이라는 명예처럼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며칠 전 오랜만에 운행을 했을 때 하부에서 올라오는 소음과 쇠가 갈리는 마찰음등 평상시에는 잘 들리지 않던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실내에는 파노라마 선루프에서 들여오는 찌그덕 거리는 소음과 안전벨트 어디선가에서 추임새를 넣는 달그락 소리까지 사람을 영 피곤하게 만들더라.


'아, 이제는 이 녀석과 이별을 해야 할 때가 되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까지 수리비가 영 모자라서 제대로 정비도 해주지 못하던 녀석인데,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녀석과의 이별을 생각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허세가 다시 발동하기 시작한 것일까.




책을 보다가 쉬는 시간이면 자동차들을 찾아보는 것을 시작했다. 이 차는 얼마이고 월 할부금이 얼마 정도 될 테고 세금은 어떻게 되며, 보험료는 또 이렇게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미리 계산을 하고 그 차에 내가 타고 있을 상상을 하면 얼굴에 화색이 돌고 살아갈 맛도 살짝 더 나는 것 같다.


"아, 살아가는 맛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잠시 잊고 있었네..."라며 씩 웃는 나를 발견한다.


벤츠, BMW, AUDI 등등 수입 브랜드들의 차를 보면서 나의 눈은 황홀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황홀함에 빠져있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오려면 때로는 너무 우울하고 슬프기도 하다. 


하지만, 돌아올 때는 냉정해야 한다. 내가 계속해서 이런 삶을 유지하는 것은 내 앞날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약간의 허영심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당장 사지 못할 것이라면 때로는 머릿속의 허영심으로 그것을 먼저 "get"하는 것이 뭐 어떤가. 나는 다시 대학에 입학 할 때도 그랬고,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노력을 했다.




그래, 허영심이 좀 있으면 어떠한가. 


'난 내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 거야.'라는 1980년대의 "자아실현론"보다 훨씬 나은 것이 바로 "허영론"이다. "나는 곧 포르셰를 탈 거야."라고 결심을 하는 것이 형이상학적으로 뭉쳐진 말도 안 되는 인생의 목표보다 확실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매일 차를 바꾸고, 해외여행을 하고, 골프를 치고, 오마카세를 먹고, 명품으로 치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는 가장 최대의 것을 목표로 삼고 한 번씩 상상으로나마 즐기면서 매일을 살자는 것이다.


지금 돈이 들 일도 없다. 그리고 파산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당신의 그런 현실적인 꿈들은 현실의 목표를 앞당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간이여 우리 조금의 허영심은 가진 사람들에게 뭇 사람들이여 우리를 비난하지 말라.

우리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살아나가야 한다. 그 시간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냥 조금의 숨통이라도 트여놓자. 그러다보면 진짜 내가 목표로 삼았던 그 곳에 시나브로 가있을지도 모른다.


난 약간의 허영심이 좋다.


이미지: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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