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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ug 02. 2023

같은 사진 속 다른 의미.

나, 당신 그리고 우리

나는 사람을 찍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다. 사람을 찍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우선 어떤 대상을 찍을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러 사람을 피사체, 모델로 선택을 할 수 있다.

젊고 예쁜 아가씨에서부터 길거리를 지나는 처음 보는 분들까지, 모두가 다 당신의 피사체이다.


나는 어떤 연유에선가 여자분들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본 사진은 성을 상품화한 듯 한 사진이었을 뿐, 그 사진 안에서 나는 아무런 감흥도 받지 못했다. 그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잠깐의 주저도 없이 나는 그 부류의 사진에서 관심을 거두어버렸다.


대전광역시 동구 소제동의 대창이용원은 인물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모든 사람들의 성지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그곳의 사장님이자 이발사이신 아버님께서 인물 사진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이시고 마음에 열려있는 분이셔서 대전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인물 사진을 조금 찍어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다 거쳐가는 곳이다. 그래서 아버님은 인기 만점이시다.




얼마 전, 일요일 마침 그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서 이용원에 들렸다. 나와 같이 일요일에 모임을 한 분들도 모두 대창이용원에 들렀다. 나는 한 참 멀리서 그분들과 간격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모임 구성원들이 어떤 사진을 찍는지 잘 몰랐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버님의 사진을 찍은 것은 확실하겠지.


우리 모임이 지나가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아버님께 조용히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다.


아버님은 역시 웃으시며 맞아주셨고, 또 흔쾌히 사진 찍는 것을 허락해 주셨다.

자, 이제는 내게 달렸다.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문득, 나는 아버님께서 KBS의 다큐멘터리 3일에 나오셨던 것을 기억하여 그때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버님께서 쑥스러운 듯이 웃으신다.


지금이 바로 포인트다!



백만 불짜리 미소가 사진에 그대로 담겼다. 그냥 이것으로 나는 그날의 사진을 다 찍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내게는 또 한 분과의 인연이 맺어지게 된 것이다.



마침, 이발을 하시는 분께도 동의를 얻어 사진을 찍었다. 내가 생각하던 내 어릴 적 이발소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졌다. 내가 원했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다.




정식 사진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룰같은 것이 있다. 타인이 찍은 것들은 찍어야 의미가 없다는 그 세계만의 룰이다. 그래서 전시회 한 번을 하고 그다음 전시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괴로워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자유롭다. 책을 한 권 출간했지만(비록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책이라 하더라도) 나 스스로를 사진가라고(정식 사진가) 생각하지를 않는다. 그냥 내가 찍을 수 있는 사진은 기회가 닿으면 최선을 다해서 찍자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다른 사람이 찍었던 대상을 또 찍으면 안 된다?? 그런 규칙이 어디 있나?? 사진이 재미있지 않아도 또 어떠한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발표되지 않은 사진들을 찍어서 발표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같이 찍었더라도 나만이 찍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 순간에는 꼭 사진을 찍을 것이다.


사진은 나와 피사체인 당신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결정체이다. 그 안에는 나와 피사체 간의 믿음이 존재하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라는 단어가 생겨나는 어떤 반응의 결과물이다. 다른 사람이 찍었던 사진이면 어떤가. 나는 지금 행복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는 누군가들에게 너는 더 이상 사진가가 아니야,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도, 나와 나의 소중한 피사체들이 만들어가는 이 세상의 그림이 너무 좋다.


2023년 8월 2일


Photo/Written by HARU


이 자리를 빌려 나를 믿고 모델이 되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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