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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Mar 31. 2024

서천 홍원항, 사람도 노을도
아름다웠던 곳

네 번째 작은 세상

내가 사는 곳은 서해와 가깝다. 동해의 바다는 푸른 파도가 한결같이 밀어붙인다고 하면, 서해의 바다는 해 질 녘의 아름다움이 모든 것을 다 치유해 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서해에 종종 가고는 했다. 학교를 쉬고 있을 무렵에는 한 해에도 두 번, 세 번씩 가고는 했으나 시나브로 그 발길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가본 지가 몇 해가 지났지만, 내가 봤던 해넘이 중에 아름다운 해넘이로 손을 꼽을 수 있었던 기억으로 남은 곳 중 하나가 홍원항이다.


홍원항은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는 항구로 충청남도의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 조금만 더 아래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전라북도 군산에 바로 닿을 수 있다. 서천 홍원항은 항구이지만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러 모이기도 한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나 역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특히나 말했듯이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해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낚시를 하던 사람들마저 아름다운 해넘이에 빠져들고는 하니까 이곳은 낚시와 해넘이를 둘 다 즐길 수 있는 일석이조의 공간이다.




겨울과 봄의 홍원항의 느낌과 여름의 홍원항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어느 곳이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겨울과 초 봄의 홍원항의 하늘의 느낌은 시리다고 표현하면 맞을 정도로 하늘이 깨끗하다. 노을도 깨끗한 황금빛이라고나 할까. 노랗다가 곧 황금빛으로 변한 후 바로 어두워지는데 그 짧은 시간이 야속할 정도로 곱다.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붉은빛으로 하늘이 물드는 순간, 어느새 하늘은 어두워진다. 이 순간을 보기 위해서 바닷바람이 차가워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는 했다. 


때로는 조업을 나가는 배를 보며 만선을 기원하기도 하며, 그 짧은 시간을 찬 바람과 함께 만끽하고는 한다.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해를 뒷배경 삼아서 앉아있을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그들은 귀신 같이 때를 맞춰서 집에 돌아갈 시간을 알려주고는 했으니, 나는 그들의 알람을 신호삼아 차갑던 얼굴을 훔치고 주섬주섬 집에 갈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다.


겨울에서 차가운 초봄까지의 홍원항을 색으로 굳이 표현하자면 붉은빛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계절이 바뀌면 홍원항의 빛은 몰라보게 달라진다.





초여름 홍원항을 찾는다. 달라진 것은 없는 듯 하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불그스름하게 기억되었던 홍원항은 완전히 다른 빛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푸르른 빛의 홍원항은 달라진 매력을 나에게 보여준다.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분명 여유로움은 배가 된 것 같다.



여유로운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의 마음도 풀어져버린다. 한 껏 운전하고 오느라 긴장되었던 가슴도 풀어지고 그제야 갯내음도 코로 들어온다. 어찌 되었든 항구, 바다가 아니었더냐. 이제는 그 아스라한 여운에 몸을 맡겨도 될 때이다.



항구 한편의 어시장도 살펴본다.


홍원항은 생각보다 넓어서 음악을 들으면 한쪽 끝에서 반대편까지 오고 가면서 사진을 찍으면 몇 시간이 휙하니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나는 또 설레는 해넘이 시간을 맞게 된다.


고기도 낚고 시간도 낚는다.


점점 바다 한 켠으로 해가 멀어져 가면 노란빛으로 하늘이 수놓아진다.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가는 노란빛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매주 낚시를 하러 이곳에 온다는 강태공의 모습마저 예술로 다시 태어난다.


등대를 배경으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싶어 자리를 옮겼을 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핸드폰 혹은 카메라에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내 옆에서 연신 셔터를 누르시는 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와 등대와 하늘은 하나가 되어 내게 지금까지 봤던 노을과 해 질 녘의 시간과는 다른 추억을 만들어줬다. 



끝내는 해넘이라는 매일 있는 일련의 이벤트가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이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서라도 앞으로 살아야겠다.'라는 우스꽝스러운 다짐이 설 정도로 아름다운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내 주변의 사람들도 모두 같은 표정으로 같은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마음은, 그 감정은 사람에게는 다 비슷한 것이겠지.



이벤트는 끝났지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긴 여운 때문이다. 이미 해는 다 져서 주변이 깜깜한데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서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여운이란 그런 것이다. 어떻게 해도 쉽게 가시지 않는 것. 겨울에도 나는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차가운 얼굴을 매만지며 서있었거늘, 이렇게 여름이 시작되는 날에도 그 긴 여운에 다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것을.


내가 겪은 시간을 그 공간을 세상을 사람들에게 말로 전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그래서 사진을 함께 한다. 사진을 함께 해도 그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어느 추운 겨울날 얼굴을 매만지며 지는 해를 바라보던 느낌도, 초 여름의 어느 날 푸르던 하늘이 변하던 그 신비한 모습도 다 전달하기란 어렵다.


다만 한 가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힘들었을 적, 세상에서 위로를 받던 그 시간들을 내 글을 함께 읽는 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이다. 안 그래도 세상을 살아가기 바쁜 분들이 때로는 이렇게 사진으로나마 위로받으실 수 있기를 바란다.


2024년 3월 31일


글,사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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