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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대윤 Apr 25. 2020

스며들다.

들어가는 글

우리는 학교라는 곳에 입학을 하면서 사회화가 되고, 그 사회의 일원으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적부터 아주 뚜렷한 가치관과 목표를 갖고 있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하고 느끼면서 "자아"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고 더 나아가 대학원까지 가시는 분들을 포함하여 각 단계의 교육이 마무리될 때마다 각자의 세상을 찾아 떠나게 되죠.




이렇게 사회라는 곳을 마주하고 점점 더 성장을 하면서, 우리는 "자아실현"이라 불리는 단어도 배우고, 그것을 직접 긍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노력도 합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인생에 있어서 "성공"이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직도 뚜렷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서른도 훨씬 넘은 나이에 다시 진로를 선택해서 대학교에 다시 입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있는 현재에도,  혹은 아주 간단하게 사회 구성원들이 누군가에게 "성공한 사람"이라는 부르는 기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10대에는 방황을 했고, 20대에는 좌절을 했으며, 30대에는 죽을 만큼 아팠습니다. 방황을 하고, 좌절을 하며, 아팠던 시간들을 제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서 저는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책의 도움을 빌리고도 싶었고, 누군가와의 상담을 통해서 조언을 빌리고도 싶었지만, 그 어떤 책도 혹은 그 누구도 저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차가움으로 둘러싸인 땅거미가 서쪽하늘로 스며들었다.


30대가 넘어서야 전공을 바꾸면서까지 느지막이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를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치료를 위해 자퇴를 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나를 치료하기 위해 자퇴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성공"하기 위해서 그만두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자위를 하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왜 그래야 했을까요. 사람들에게 "나는 아직 주저앉은 것이 아니라, 더 높이 멀리 가기 위해 쉬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그 알량한 자존심, 하지만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슬픔, 다시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던 나날들.


추운 겨울 , 학교의 캠퍼스에 아무도 없는 시간 차가움으로 둘러싸인 땅거미가 서쪽하늘까지 스며드는 하늘을 보며 혼자 수없이 울먹이기도 여러 번, 저는 "성공"의 의미는 오직 한 가지뿐이라며 끊임없이 되뇌었었습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


이제 "성공"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가 그리 좁지 않다는 것을 알아갑니다.

"부자"가 되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일 수도 있고, "공무원"이 된 사람도 "성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한 집안의 "가장"이 된 사람도 "성공"한 사람이며, 작은 카페에서 자신이 좋아했던 "커피"를 만들며 웃는 사람도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갑니다. 애써, 우리는 모자란, 주변에 조금 더 나를 돋보이게 할 아주 조금의 무엇을 채우기 위해 애써 "성공"의 가치를 더 높게 잡고,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세상"은 제게 아주 작은 소리로 "삶"에 대해서, "우리"에 대해서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저는 조금씩 힘을 낼 수 있었고, 다시 웃을 수 있었으며, 다른 시선으로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제가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가는 "글"들이 제가 힘들 때 마주 했던 "책"들처럼, 혹은 그 누군가의 "조언"처럼 아무 의미도 없이, 일말의 공감도 없이 공중에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저처럼 아프고 힘들었던 그리고 이제는 "청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조차 사라져 버려서 두려움마저 더 커져버린 그럼에도 자신이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단어에, 혹은 "자아실현"이라는 말 한마디에 다가가기 위해 눈물겨운 싸움을 하고 계시는 단, 한 분에게라도 공감과 힘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 공간을 다녀가시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그리고 저와 같이 아픈 시간을 달려오셨던 분들 그리고 원하시든 원하지 않으시든 얼마 간 앞으로도 아프고 힘든 시간을 견뎌내셔야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세상"이 제게 작은 소리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


2020년 


고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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