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블루 Mar 03. 2020

대한축구협회도 고려해볼만한 ‘헤딩 훈련 금지’

'헤딩 머신' 시어러는 치매를 걱정하고 있다



“나도 기억력 문제를 겪고 있다. 축구를 하면서 무릎이나 발목, 허리 부상 등으로 은퇴 후 생활에 불편을 겪을 것은 예상했지만 축구가 뇌질환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앨런 시어러, <BBC> 다큐멘터리 ‘앨런 시어러: 치매, 축구 그리고 나’에서) 


앨런 시어러는 여전히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가지고 있다. 260골을 넣었고, 그 중 헤딩으로 26골을 넣었다. 시어러가 강하게 날아오는 공을 더 강력하게 골망에 꽂아 넣는 장면을 보고 감탄한 이가 많았다. 시어러는 유소년 시절부터 헤딩을 잘하려고 하루에 헤딩 연습을 150회 이상했다고 말했다.  


시어러는 헤딩을 잘하는 선수가 됐지만, 은퇴 후에는 그런 경력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그는 2017년 당시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시어러는 다큐멘터리에서 치매에 걸릴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는 미국축구협회가 2015년 10세 이하 선수는 훈련과 경기에서 모두 헤딩을 금지하는 규정을 내놓았을 때 영국도 이런 방향성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제프 애슬 파운데이션 홈페이지 첫 화면

그와 <BBC>가 한 사람의 경험만으로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니다. 실제 헤딩으로 인해 후유증을 겪고 있는 은퇴 선수도 많다. ‘데일리 미러’는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멤버 중 3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2년 59세 나이로 치매와 퇴행성 뇌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전 웨스트브롬 공격수 제프 애슬의 유가족은 헤딩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제프 애슬 파운데이션’을 만들었고, 지속적으로 영국축구협회를 설득했다.  


1960년대 잉글랜드 축구에서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제프 허스트(78)는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 결과와 관련해 "유소년 축구선수의 헤딩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스트와 함께 1996년 월드컵에서 영국의 우승을 이끌었던 대표팀 선수 레이 윌슨, 마틴 피터스, 잭 찰턴, 노비 스타일스는 치매를 앓다 숨졌다고 한다. 그는" 선수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헤딩은 절대 연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는 뇌를 보호하는 두개골과 머리를 지지하는 목의 근육과 근력이 완전하지 않다. 목근육이 약하면 헤딩을 할 때 머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더 커질 수 있다. 목근육이 머리를 완벽하게 지지하지 못하면서 공이 머리에 제대로 맞지 않게 되고, 그러면 두개골 안에 들어 있는 쉽게 이야기해서 ‘젤리와 같은’ 뇌가 흔들리게 된다. 어릴 때는 뇌의 용적이 작기 때문에 흔들릴 공간도 더 크다고 보면 된다. 뇌가 흔들리는 것도 문제지만 뇌의 수많은 신경회로가 찢어질 수도 있다.” (정태석 스피크 재활의학과 원장) 


정 원장은 2019년 글래스고대학 윌리엄 스튜어트 박사팀이 진행한 필드스터디 (FIELD, football’s influence on lifelong health and dementia risk study)를 소개했다. 그는 “이 연구에서는 전직 프로축구선수 출신들이 평균 수명이 3.25년 길었고, 암이나 심장질환, 폐질환에 의한 사망 위험성은 더 낮게 보고된 반면, 전반적으로 퇴행성 뇌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프로축구선수 출신이 약 11%로 일반인 3%에 비해 약 3.5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설명했다.  

잉글랜드축구협회와 아일랜드축구협회 그리고 스코틀랜드축구협회는 2020년 2월 말에 유소년 헤딩에 관한 가이드라인(Heading Guidance)를 발표했다. “11세이하 선수들은 훈련 중 헤딩 연습을 금지하고, 이후부터 18세까지 연습 중 헤딩을 단계적으로 노출시켜 불필요한 헤더를 제한한다”는 게 내용이다. 세부적으로 연령에 따른 지침까지 마련했다.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위원장을 역임했던 장외룡 충칭당다이리판 감독은 이런 결정을 오래 전부터 지지해왔다. 그는  “헤딩을 금지한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다”라며 “결국 중요한 것은 자세와 감각이다. 공이 아니라 스폰지나 풍선과 같이 뇌에 충격을 주지 않는 것으로 훈련을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공이 날아오는 것에 대한 이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헤딩을 해야 하는 지만 이해하면 된다. 공으로 하는 것은 그 시기가 지난 뒤에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발 기술에 집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대한축구협회도 미국과 영국축구협회가 내린 결정과 이와 관련된 연구를 심도 있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직 다 성장하지 않은 유소년에게는 그들에 맞는 훈련법이 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건강이다. 꼭 이들이 내린 결정과 똑같은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이면서도 한국 실정에 맞는 규정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경험도 있다. 초등학교 때 테니스를 했다. 전업 선수와 학생 선수 가운데 쯤에 있었던 거 같다. 당시 안경 쓴 코치가 있었는데 “안경 쓴 사람은 더더욱 공을 조심해야 한다. 눈에 공을 맞아 크게 다치거나 실명한 사례를 봤다”라고 말했다. 어린 마음에 겁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스포츠 고글을 권장하면 될 일이었다. 단순한 결정으로도 아이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게 많다. 




매거진의 이전글 밀라노를 연고로 한 축구팀이 왜 뱀을 유니폼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