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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블루 Mar 17. 2020

프랑스,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오헬리엉이 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읽고


책을 한꺼번에 몇 권씩 읽는 편이다. 한 권만 파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 관심이 얇고 넓은 편이라 독서도 그렇게 한다. 이런 습관이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최근 이민선 선배 출판사에서 낸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를 다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 앞뒤로 잡았던 한스 로슬링이 쓴 <팩트풀니스>가 울림을 더 크게 만들었다. <팩트풀니스>는 표지에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라는 문구를 뽑았다. 이 중에서 앞부분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이 주는 주된 감상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프랑스어 실력은 묻지 마시라...)했고 프랑스 문화도 좋아하는 편이다. 프랑스에 10차례 정도 다녀왔고 프랑스 프로축구리그인 리그앙 취재도 몇 차례 했다. 나름 프랑스에서 가본 곳도 많고 여러가지 교통 수단도 이용해봤다. 첫 책이나 다름 없는 <축구는 사람을 공부하게 만든다>에 프랑스 파리와 모나코 공국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스스로도 프랑스를 ‘조금 안다’라고 생각하고, 주위에서도 나를 대체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다. 

 

에펠탑 쪽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황금 지붕은 앵발리드

자랑하려고 어줍잖은 프랑스와의 연결고리를 나열한 게 아니다. 오헬리엉이 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프랑스를 오해하고 있었으며, 그런 바탕에서 얻은 지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는 걸 알게 됐다. 오헬리엉은 ‘지극히 사적인’이라는 표현을 달며 자신이 경험한 프랑스라는 것을 전제했지만 그런 개인적인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내 인식과는 다른 게 너무 많았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도 존재하지 않는 ‘류블루의 프랑스’를 상정해뒀고, 그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것이다.  


가장 뼈아팠던 것은 내가 프랑스를 상대적으로 이상적으로 봤다는 사실이다. 확고한 문화를 가진 복지가 잘 된 나라라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생각한 프랑스는 한 1970년대 정도에나 존재했을 법했다고 할까. 오헬리엉이 프랑스 문화가 미국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 게 흥미로웠다. 마치 내 세대 한국인들이 미국과 일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영향 끝에는 미국 드라마를 많이 본 세대(특히 하위층)들이 아이 이름을 영어식으로 짓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 온 프랑스 출신 운동선수 중 많은 이가 이름이 케빈이었다는 걸 기억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오헬리엉이 들려준 프랑스 내부 이야기가 한국과 닮은 것도 흥미롭다. 정치에 관한 관심은 높지만 투표율은 높지 않고, 대기업들이 국가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고용인이나 나라보다는 외국인 투자자에 더 관대 하며, 상대적으로 평등한 복지의 나라로 알려졌으나 이제는 계층 사다리가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 다른 유럽 나라들에 비해 집에서 독립하는 시기가 늦다는 이야기도 재미 있었다. 저자가 오헬리엉 이름과 제목을 가렸다면 ‘이게 한국 이야기인가?’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여럿 있었다. 그만큼 내가 프랑스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마르세유

프랑스 식문화 이야기는 재미있다.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지만 그다지 까다롭지 않고, 와인도 그렇게 까탈스럽게 고르지 않는다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 뒤에 언급한 소소한 여행 이야기도 좋았다. 일 때문에 릴을 몇 차례 갔지만 정말 볼 게 없는 도시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쓴 책을 보니 다음에는 그래도 더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졌다. 대학교 1학년 때 프랑스어 교재에서 봤던 카르카손도 다음엔 꼭 가봐야겠다. 


여행은 환상을 지우고 무지를 채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 시점에 어디론가 떠날 수는 없지만 책으로 여행을 대신한다. 이민선 선배가 알베르토와 낸 <이탈리아의 사생활>에 이어 지극히 사적인 프랑스>로 환상을 없애고 무지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모르거나 편견이 있는 게 크게 부끄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그게 무지나 편견인걸 느끼고도 뒤돌아서서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진짜 창피한 일이다. 영화 <조조 래빗>에서 히틀러를 아이돌로 삼고 있었지만 현실을 본 뒤 마음 속에 있는 히틀러를 결국 창문 밖으로 쳐낸 어린 조조처럼 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사과는 좀 해야할 거 같다. 프랑스, 오해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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