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파란책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블루 Apr 07. 2020

'극적인 세상'에서 현실 세계 가는 법

<팩트풀니스>를 읽고(1)


인생 주된 심상이 부끄러움이다. 얼마 전 ‘히든조축’에서 ‘가짜뉴스(한 축구계 관계자가 빨래방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하고 있었다)’를 말한 것을 알게 돼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기사로는 잘 따지는 편이지만 누군가 ‘너(희)는 왜 못해!’라고 말하면 대부분 ‘죄송합니다’라고 시작한다. 새로 준비하는 인생에서는 좀 더 당당해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단, 태도는 당당해지더라도 세상을 다루는 방식은 좀 더 겸손해야 할 것 같다.  


2017년 2월 세상을 떠난 스웨덴 출신 의사 한스 로슬링과 그 아들 부부가 쓴 <팩트풀니스>를 읽으면 매번 부끄러웠다. 그는 절대 꾸짖지 않았으나 그가 보여준 사례와 데이터를 보면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 기자로서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느끼게 된다. 세상을 이해할 수 없고, 그나마 세상을 잘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그에 관한 글을 쓰고 이야기해왔기 때문이다. ‘데이터’ 없이 ‘팩트’가 부족한 채로 살고 일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한국판 표지를 펼치면 도표가 나온다. 세로축은 평균 수명이고 가로축은 평균 소득이다. 각 축은 4단계로 돼 있다.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평균 수명과 평균 소득이 가장 높은 4*4 단계에 있다. ‘한국이 이만큼 잘산다!’고 자랑스러워 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판 잘못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정치인들이 내뱉는 자극적이다 못해 괴변에 가까운 말에도 우리가 흔들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스 로스링은 극적인 세계관을 버리고 데이터(그것도 계속 업데이트 되는)를 기반으로 한 사실충실성으로 세상을 보자고 말한다. 사람들은 항상 세상이 나빠지고 있으며(사실은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다), 세상은 너무 공포스럽고(끔찍한 테러보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모든 나쁜 일에는 악당이나 단 하나의 원인이 있어서(사실은 희생양을 찾을 뿐이지만), 지금이 당장 이 일을 해결해야 한다(다급하면 실수를 할 확률이 높지만)고 생각한다.  


스포츠계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위에 언급된 ‘실수’를 도대체 얼마나 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매일 기사 쓰던 삶에서 조금 떨어져보니 내 미숙함이 더 잘 보인다. 과거 잘 쓴 기사를 꼽기는 어렵지 않지만, 조급한 마음으로 부족한 데이터를 가지고 극적인 기사를 썼고, 지금도 가끔씩 그런 생각에 휩싸인다. 특히 비난하는 기사를 쓸 때는 조심한다면서도 시스템이나 원인보다는 손쉽게 희생양을 찾았던 게 아닌가라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극적이지 않으면 읽히지 않아!


기사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일정부분 사실이기도 하다. 사회적인 캠페인도 목적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충격적인 문구나 사진을 내세운다. 하지만, 한스 로슬링은 이런 방법으로는 주위를 환기시킬 수는 있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개선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 말에 동의한다. 계속된 자극은 수용자를 무감하게 만들거나 짜증나게 만들 가능성이 더 크다. 느리고 완만하더라도 변화와 개선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캠페인은 구호와 함께 개선 현황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자극적인 기사만 팔리는 이 때에 매일 기사를 써서 팔지 않는다고 훈장질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이곳에 서 있는지’에 관해 함께 생각해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함께 극적인 충동을 내려 놓고 사실충실성에 입각해서 살며 일한다면 우울함이나 무력감을 더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한스 로슬링이 책 마지막에 남긴 말로 마지막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느리지만 더 사실충실성이 있는 삶을 살며 글을 쓰겠다는 다짐과 함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다는 것이다. 대단히 부정적이고 사람을 겁주는 극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보면 스트레스와 절망감이 적다.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생각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러분이 잘 지낸다면, 저도 잘 지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