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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블루 May 09. 2021

안필드에서 테니스 친 비운의 챔피언, 프레드 페리

당당하게 프로로 전향하고 유명 브랜드까지 만든 반항아




질문으로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테니스에 관심이 있나? 관심이 없더라도 PK티셔츠는 좋아하나? 그 중에서 월계관 엠블럼으로 유명한 프레드 페리 브랜드 입어 보셨나? 


프레드 페리는 사람 이름이다. 그냥 창업주가 아니라 운동 선수다. 잉글랜드 역대 최고 테니스 선수다. 4개 테니스 오픈에서 10차례 우승,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역사상 첫 선수, 1934~1936년까지 세계랭킹 1위 무엇보다 영국의 자존심인 윔블던 우승 3회(1934, 1935, 1936)를 차지했다. 앤디 머리가 2013년에 우승하기 전까지 영국인으로 마지막 챔피언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는 반항,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테니스는 귀족 스포츠이고, 프레드 페리라는 브랜드까지 만들었는데 왜 반항과 불운의 아이콘이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이 포스터를 보면 된다. 1937년 리버풀 안필드에서 하는 경기를 알리는 포스터다. 잘 보면 위에는 리버풀 축구 클럽이 주최하는데 축구가 아니라 다른 경기를 홍보한다. 프레드 페리 이름이 보인다. 페리가 축구를 한 건 아니다. 여담이지만 리버풀 선수 중에 동명 이인이 있는데, 이 선수가 뛴 경기가 아니라 테니스 경기를 한 것이다다.  


안필드에서 테니스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바로 프레드 페리가 영국테니스협회(LTA)로부터 회원 자격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LTA에 소속된 정식 테니스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지 못해서 안필드에서 그야말로 ‘특설 코트’에서 경기를 해야 했다.  


페리가 영국테니스협회 회원 자격을 박탈 당한 이유는 프로로 전향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해도 윔블던을 포함한 4대 오픈 모두가 아마추어만 대회에 나설 수 있었다. 페리는 1934, 1935, 1936 3회 연속 윔블던을 제패한 뒤1937년 프로로 전향했다. 


당시만해도 윔블던 상금이 정말 보잘 것 없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윔블던 우승 상금은 쇼핑 바우처 25파운드(약 3만 8500원)와 모조 트로피 뿐이었다. 현재는 235만 파운드(약 35억 7천만 원)에 은 도금한 트로피를 준다…


영국은 귀족스러운 아마추어리즘을 숭상했기에 페리가 프로로 전향하는 것을 극렬 반대했다. 페리는 안그래도 노동 계급(워킹 클래스)였고 경기도 우아함보다는 강렬했기에 상류층에게는 눈총을 받았다. 


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는데 축구계에도 이런 용어가 있다. 예전에 잉글랜드 축구계에는 스카치프로페서(혹은 스코티시 프로페셔널)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들이 축구를 잘한다, 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돈 받고 뛰는 스코틀랜드 사람(주로 공장 근로자)라는 뜻일 수도 있다. 아마추어는 돈을 받지 않으니 말이다. 


페리가 프로로 전향하자 영국테니스협회는 “다시는 협회 스웨터를 입지 못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페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스웨터 소매를 잘라 영국테니스협회에 선물로 보내며 작별을 고했다. 결국 영국테니스협회는 윔블던 우승자인 올 잉글랜드 클럽 명예 회원 자격도 부여하지 않았다. 

영국테니스협회는 이후로 페리가 협회 주최 경기는 물론이고 소속 경기장에서 뛰는 것도 금지했다. 그래서 페리는 프로 전향한 해인 1937년에 안필드에서 당시 프로테니스챔피언 엘스워스 바인과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페리는 같은 해에 찰리 채플린과 함께 복식조를 이뤄서 비버리힐스에서 프로-셀러브리티 복식 경기를 하기도 했다. 


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프레드 페리라는 브랜드로 큰 성공을 거뒀다. 주로 미국에 살면서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테니스 코트를 운영했고, 할리우드 여배우들과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유명인의 삶을 살았다. 

영국테니스협회는 1968년에야 윔블던을 프로에게도 개방(오픈의 시대)했다. 그런데 프레드 페리 이후에도 2013년 앤디 머리가 우승할 때까지 영국 사람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영국테니스협회는 1984년에야 윔블던 경기장 앞에 페리 동상을 세웠다. 페리는 1983년 심장마비를 겪었으나 자신의 동상은 봤다. 그는 1995년에 눈을 감았다. 


프레드 페리는 축구계 인연이 더 있다. 그는 선수시절 아스널에서 훈련을 받았다. 아마추어로서 말이다. 그리고 1970년대 영국 최대 문제였던 스킨헤드 훌리건들이 프레드 페리 PK 폴로셔츠를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을 가리켜 Freds라고 부르기도 했다. 


덧) 테니스 선수 이름을 딴 브랜드가 많다. 프랑스 오픈 우승자이자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던 르네 라코스테(트)가 만든 브랜드가 라코스테다! 그리고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에서 나오는 운동화 스탠 스미스도 미국 테니스 선수 이름을 땄다!  


#용어 설명

스카치 프로페서(스코티시 프로페셔널) - 1880년대 후반 잉글랜드 축구는 프로화 됐고, 스코틀랜드는 프로화가 되지 않은 시점에 스코틀랜드 출신 선수들이 대거 잉글랜드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들 실력이 뛰어나서 프로페셔널, 이후에는 프로페서로 불렸다.  


오픈의 시대(Open era) – 현재 테니스 4대 오픈으로 불리는(윔블던, 프랑스, 호주, US)는 원래 아마추어 선수만 출전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도 출전할 수 있게 문을 오픈(open) 대회는 1968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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