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gang)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가장 최근에 재미있게 본 갱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아이리시맨이다. 로버트 드 니로가 주인공인데, “자네가 페인트칠(살인 청부를 의미)을 한다며?”라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무간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 그리고 갱스 오브 뉴욕도 재미있게 봤다.
이 세 영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주인공이다. 아이리시맨 프랭크 시런도 디파티드의 마피아 두목 프랭크 코스텔로도 아일랜드계다. 사실 코스텔로는 실존 인물이고 이탈리아계인데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아일랜드계로 바꾼 것이다. 그만큼 아이랜드 갱은 미국 역사에 상징적인 존재다.
갱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 이민자와 그들이 만든 스포츠 구단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아일랜드 이민의 나라다. 2008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10.5%가 아일랜드계였다. NFL 레전드 톰 브래디, NBA 제이슨 키드, MLB 데릭 지터도 아일랜드계 혈통을 지니고 있다. 미국 대통령 중 22명이 아일렌드계다. 존 F.케네디와 버락 오바마와 클린턴도!
아일랜드 사람들이 고국을 떠난 아픈 역사를 조금 언급해야 한다. 1845년 시작된 감자잎 마름병으로 주식이었던 감자가 죽으면서 인구 25%인 200만명이 죽거나 이민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영국 식민 정부의 무능과 방임이 있었다. 사실 위 영화가 나오게 된 계기도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미국으로 떠난 이들이 정말 하층민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뉴욕과 보스턴에서 아일랜드 갱들이 이탈리아계 마피아보다 먼저 생겼다.
아일랜드계 후손들은 갱단만 만든 게 아니라 스포츠단도 많이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인 셀틱, 히버니안(하이버니안), 던디유나이티드는 물론이고 NBA 명문 구단인 보스턴셀틱스도 아일랜드와 관련이 크다.
현재는 글래스고레인저스(2020-21시즌에 스티븐 제라드와 무패 우승 달성)와 ‘올드 펌 더비’를 펼치는 셀틱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 세 팀의 모델은 히버니안이다. 히버니안은 이름부터 아일랜드다. 히버니아는 라틴어로 아일랜드를 가리키는 단어로, 겨울의 나라라는 뜻이다. 히버니안은 아일랜드인을 지칭한다. 로마는 자원이 빈약해보이는 아일랜드는 침략하지 않았다고 한다.
히버니안은 대기근 시대에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 자리 잡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1875년에 만든 팀이다. 엠블럼에 아일랜드 상징인 하프가 있다. 하프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인 기네스 상징이기도 하다. 기네스도 아일랜드! 히버니안이 성공하자 1887년 글래스고에서 셀틱, 1909년에 던디히버니안이 생긴다. 셀틱도 처음엔 히버니안으로 이름을 지으려 했다.
히버니안은 아일랜드와 관계가 있는데 셀틱은 무슨 뜻일까? 셀틱은 켈틱, 즉 켈트족을 뜻한다. 아일랜드는 켈트족 혈통이 가장 선명한 나라다. 조금 낯설긴 한데 우리는 이미 켈트족을 잘 안다. 얼마 전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출연한다고 발표해 더 유명해진 만화 영화 아스테릭스에 나오는 이들이 바로 켈트족이다. 골족은 켈트족 일파다.
프랑스 스타드렌도 켈트족 정체성을 지녔다. 로아존 파크는 브르타뉴어로 렌이라는 뜻이다. 웨일스도 켈트족이 많은 나라다. 스위스도 정식 국명에 켈트족 일파인 헬베티아(Confoederatio Helvetic, 헬베티아 연방)가 들어간다.
다시 셀틱으로 돌아가자. 셀틱 엠블럼에 있는 클로버도 아일랜드 상징이다.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에서 선교하면서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클로버를 예를 들었기 때문이다. 셀틱이 레인저스와 라이벌 의식이 강한 이유도 여기 있다. 아일랜드 이민자는 종교가 카톨릭이다. 스코틀랜드는 개신교인 장로교가 태어난 곳이다. 레인저스는 신교팀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은 레인저스에서 뛰었는데 카톨릭 아내와 결혼한 뒤 팀에서 차별을 겪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제 대서양으로 건너서 미국으로 가보자. 셀틱은 이야기했으니 셀틱스는 당연히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보스턴 셀틱스를 만든 브라운이 이름을 고민하다가 “도시에 아일랜드 사람들로 가득해”라며 셀틱스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엠블럼에 있는 아저씨는 클로버가 찍힌 모자와 옷을 입고 있고 초록색이다! 그리고 셀틱스와 클로버만 있는 엠블럼도 있다.
보스턴셀틱스 전에 뉴욕셀틱스와 오리지날셀틱스라는 농구팀이 먼저 있기도 했다. 당연히 이 팀도 아일랜드계 이민자와 큰 관련이 있었다. 갱스 오브 뉴욕과 디파티드가 음이라면 보스턴 셀틱스와 뉴욕 셀틱스는 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담으로 아일랜드는 앞서 언급한 영국의 식민통치와 그 안에 일어난 아일랜드 대기근으로 영국을 증오한다. 한일전을 생각해보면 된다. 아일랜드가 독립 운동을 펼칠 때는 영국 운동인 축구를 하지 말라는 지시도 있었다.
근데 아일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영국인이 한 명 있다. 보비 찰튼의 친형 잭 찰튼이다. 잭 찰튼은 아일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1990월드컵 8강, 1994월드컵 16강, 유로88 본선진출을 이뤘다. 2020년 잭 찰튼이 세상을 떠났 때, 아일랜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하기도 했다.
이 글을 읽고 재미있었다면, 초록색 옷을 입고 기네스 한 잔 마시며 아일랜드 갱 영화를 한 편 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