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티터리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구독하면서 스포츠 다큐멘터리에 푹 빠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컨텐츠가 F1, 본능의 질주다.
무엇보다 이 다큐를 보면 F1이 왜 월드컵과 올림픽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스포츠의 숨은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경쟁심을 그야말로 날 것으로 보여준다. 열 받으면 팀 동료와도 충돌하는!! “이기고 싶다”라는 걸 감추지 않아서 너무 재미있다. 게다가 이걸 또 넷플릭스 놈들에게 모두 공개한다.
현재 최강자는 의심할 여지 없는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포뮬러 원 팀이다. 2014시즌부터 7년 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종합 1등)과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했고, 2021시즌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루이스 해밀턴은 얼마전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통산 100번째 폴포지션(1위로 출발할 수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역사상 최초다. 그는 이미 통산 98회 우승. 최다 기록 보유자다.
해밀턴 이름이 나오면 따라 나오는 이가 있다. 바로 마이클 슈마허다. 슈마허는 현재 불의의 사고로 치료 중인데, 아들 믹 슈마허도 하스 페라리에서 뛴다. 슈마허는 폴포지션을 68회 차지했고, 우승 91회를 기록한 20세기 최고 드라이버다. 우리 세대에서는 F1하면 슈마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슈마허를 생각하면 어떤 색깔이 떠오르나? 빨간색! 바로 페라리다. 그리고 페라리와 함께 떠오르는 메이커가 있다. 본능의 질주를 보는 내내 레이서들이 왜 저 브랜드만 입지라고 생각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바로 푸마다. 푸마는 2019년부터 F1 공식 파트너로 상품권자(머천다이징) 독점권리를 가지고 있다.
푸마는 F1에 발을 담근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3년 이탈리아 신발 장인 잔니 모스틸레가 카슈라는 회사에서 처음으로 드라이빙슈즈인 모카신을 내놓으면서 경쟁이 시작됐다. 이후에는 아디다스와 아식스 그리고 나이키가 드라이빙 슈즈로 먼저 각광 받으며 F1 무대를 주름 잡았다. 푸마는 2001년 F1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후발주자다.
푸마는 1999년부터 스피드캣이라는 신발을 내세웠는데 이게 바로 레이싱화를 일상생활에 들인 것이다. 나도 대학 때 이 신발을 신었다. 그게 레이싱화인지도 모르고. 푸마는 2001년부터 조던 그랑프리 팀(레이싱 포인트)에 레이싱슈즈를 공급하면서 F1 경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 페라리와 슈마허를 만나면서 급 성장한다.
푸마는 당시 최고 팀인 페라리와 최고 선수 슈마허와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페라리의 붉은 색은 푸마와 매우 잘 어울렸고, 경기력 향상에 관심이 많은 슈마허는 푸마와 레이싱슈즈 개발에 돌입한다. 그래서 나온 신발이 퓨처 캣이다. 퓨처 캣은 비대칭 레이싱 시스템에 하이탑 그리고 발 앞부분이 뾰족한 게 특징이다. 페달 감각을 손상시키지 않는 미드솔을 갖췄는데 슈마허는 이 제품을 사랑했다.
퓨처 캣은 슈마허가 페라리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든든한 지원자가 됐고, 푸마는 F1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게 됐다. 푸마는 2005년에 이 신발을 기초로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내놓았다. 갑피를 가죽으로 바꾸고 수많은 색상으로 한 퓨처캣 울트라 슈즈가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이후로는 드리프트 캣 울트라도 인기를 끌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슈마허라는 성이 신발 만드는 사람이라는 직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슈마허와 신발 개발은 운명이었다고 말하면 너무 비약일까?!
페라리도 푸마가 F1에서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을 줬다. 페라리는 지금까지도 F1의 아이콘이다. 최근 실력은 좋지 않아도 페라리와 함께 한다는 건 상징적인 일이다. 빨간 레이싱카가 들어오는 장면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로고에 새겨진 SF(스쿠데리아 페라리)와 말은 페라리뿐 아니라 F1을 상징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스쿠데리아는 마굿간, 혹은 경주말 훈련소를 뜻한다고 한다.
푸마는 페라리와 2004년부터 함께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특징적인 콜라보를 하기도 했다. 2009년 페라리와 협업해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수장인 엔초 페라리와 퍼스트 페라리로 불리는 아우토 아비오 코스트루치오니(AAC) 815를 기념해 165g짜리 축구화를 내놓았다. 당시 815족밖에 생산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가지고 있다. 고유 넘버도 있다.
푸마와 페라리 그리고 슈마허 성공을 이끈 숨은 주인공도 있다. 바로 만 29세에 푸마 회장이된 요헨 자이츠다. 푸마는 경영을 방만하게 하고 경쟁자들에게 밀리면서 1987년에 창업주의 아들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은행에 경영권이 넘어갈 정도로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자이츠가 회사를 맡아서 명가를 부활시켰다.
자이츠는 푸마가 폭스바겐이 아닌 프로쉐가 돼야 한다면서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았고, f1도 그런 시장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 축구대표팀과 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유명한 디나이너인 닐 바렛을 크레이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다. 이탈리아는 닐 바렛이 디자인한 유니폼을 입고 2006독일월드컵에서 우승한다!
자이츠는 페라리와 계약을 성사시키고 6년 계약을 넘어 장기계약까지 성공시킨 뒤 이렇게 말한다. “f1은 이제 열리는 새로운 영토다. 거대한 기회가 있을 것이다.” 푸마는 이후로도 성공을 거뒀고 이제 f1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브랜드가 됐다.
궁금한 분은 지난해 말에 공개된 스피드캣 프로 한정판을 보시면 될 것 같다. 페라리 소속 드라이버는 물론이고 해밀턴 신발도 있다. 해밀턴 신발은 보라색인데, 인종차별운동을 지지하고 7번째 우승(무지개 7번째 색상)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밀턴은 채식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다. 이 이야기는 게임체인저스라는 다큐에 잘 나와있다.
덧) 푸마는 자이츠가 그룹을 맡은 이후로 특별한 길을 걸었다. 그런 행보가 궁금하다면 밑에 있는 영상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필자가 포포투와 함께 만든 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