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블럼은 상징이다. 상징을 바꾸는 것은 매우 계산된 행동이다.
엠블럼은 팀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선수들이 구단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골을 넣거나 특별한 상황에서 엠블럼 키스를 하고, 팬들이 이에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엠블럼은 국가별로 편차가 크다. 잉글랜드와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화려한 편이고, 독일은 매우 단순하다. 도형과 알파벳 그리고 숫자로 이뤄진 엠블럼이 많다. 국가대표팀 엠블럼은 클럽보다 조금 더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엠블럼으로 한 국가나 팀 성격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엠블럼을 보고 읽어낼 수 있는 일도 많다. 엠블럼은 팀을 이해하는 문인 셈이다.
그런데 이번 ‘2020-21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른 팀 중 두 팀은 엠블럼을 최근 10년 사이에 바꿨다. 그 주인공은 맨체스터시티와 파리생제르맹이다. 공교롭게도 두 팀은 4강에서 맞대결을 벌였고 맨시티가 파리생제르맹을 꺾고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 올랐다.
오늘 새벽(5월 30일), 아쉽게 준우승에 그친 맨시티 이야기를 먼저해보자. 맨시티는 역사가 매우 길다. 1880년에 창단했고, 현 구단명으로 바뀐 게 1894년이다. 1894년을 기점으로 해도 지금까지 127년이나 팀을 계속 운영했다. 올 시즌까지 잉글랜드 1부 리그에서 우승 7차례 차지했고, FA컵도 6차례나 들어 올렸다.
그런데 맨시티는 지난 2015년 12월에 새로운 엠블럼을 발표했다. 1997년부터 쓰던 엠블럼, 독수리가 주인공처럼 보이는 엠블럼을 현 엠블럼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새로 바꾼 엠블럼에는 독수리 대신 범선이 들어갔고, 모양도 방패형에서 원형으로 바꾸었다.
모두 알듯이 맨시티는 2008년 UAE 자본인 시티풋볼그룹이 인수했다. 그럼 UAE 자본이 팀을 사들인 뒤 상징인 엠블럼까지 바꿨다는 이야기다. 팬들 반응은 어땠을까?
예상외로 좋았다. 시티풋볼그룹은 과거에 사용하던 엠블럼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맨체스터 운하와 그 위를 달리는 범선은 맨체스터 상징이다. 맨유도 1878년 뉴턴히스로 창단했을 때는 엠블럼에 범선 아닌 기차가 있었다. 1902년에 맨유로 개명하며 범선이 들어간 엠블럼을 썼다.
리버풀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도 여기 있다. 사실 리버풀은 항구도시로 번성했고 맨유와 공생했다. 그런데 1893년에 맨체스터 운하가 생긴 뒤로는 영광을 맨체스터에 내줬다. 두 도시가 사이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맨시티는 자신들이 이제 맨체스터에서 가장 강한 팀이며 맨시티가 더 이상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시끄러운 이웃’이 아닌 ‘맨체스터의 적자’라고 앰블럼을 통해 선언한 것이다. 맨시티는 엠블럼을 교체한 뒤 기존 엠블럼을 문신으로 새긴 이들에게 무료로 엠블럼을 지워주는 시술을 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사실 맨시티가 1997년 엠블럼을 바꿨을 때는 맨유를 엄청나게 의식했을 것이다. 맨시티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부에 있었다. 이후로도 1,2부를 오가다가 2002년부터 제 궤도에 올랐다. 맨유는 당시 알렉스 퍼거슨이 팀을 이끌었고 잉글랜드 최강팀이었다. 1999년에는 트레블을 차지하기도 했다.
파리생제르맹도 큰 틀에서는 맨시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카타르투자청이 2011년에 팀을 인수했고, 2013년에 엠블럼을 바꿨다. 두 부분을 바꿨다. 상단에 있는 팀 명(PARIS SAINT-GERMAIN)을 파리만 빼고 아래쪽으로 옮겼다. 그리고 창단 년도인 1970이 있던 자리에 생제르맹(SAINT-GERMAIN)을 작게 넣었다. 에펠탑 밑에 있던 요람(루이 14세 탄생지 상징)도 없앴다.
현재 엠블럼을 보면 QIA 의도를 읽을 수 있다. QIA가 명문이 아닌 PSG를 인수한 이유는 분명하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도시를 거의 독점한 PSG를 사들였고, 생제르맹이라는 정체성보다 파리가 부각되길 바랐다. 파리라는 상징성을 모두 차지하길 바랐다. ‘오일 머니’가 뭔가 멋진 일을 할 수 있다고 선전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축구는 그저 공놀이가 아니다. 부러울 게 없는 세계 부호들이 비용을 쓰면서 명문 구단을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상징성이다. 돈은 얼마나 써도 좋으니 자신이 주목을 받고 가치 있는 일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뜻이다. 맨시티를 인수한 시티풋볼그룹과 PSG를 사들인 QIA도 엠블럼을 통해 그런 평가를 얻으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