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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블루 Feb 24. 2020

카프리, 시가 내게로 왔다

영화 <일 포스티노>와 소설 <네루다의 우편 배달부> 그리고 카프리 

  


살다 보면 설명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공식이 지배하는 수학의 세계가 아닌, 살아 움직이는 현실 세계에서 논리라는 단어가 설 곳은 그다지 넓지 않은 것 같다. 조금 거창하게는 한 사람의 꿈이라든가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에서부터 가깝게는 어떤 영화에 이끌리는 이유까지, 인과관계를 따질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제가 2003년 어느 날 <일 포스티노>를 보고 또 좋아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제목 그대로 우편 배달부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은 칠레의 작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작품이죠. 두 작품의 차이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책은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가 배경이고 영화는 이탈리아 카프리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책의 주인공은 마리오 히메네스, 영화의 주인공은 마리오 루오뽈로라는 것만 언급하려 한다.


마리오와 칠레의 대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만남은 저와 영화의 만남처럼 우연히, 조금은 우습게 일어난다. 섬에 살면서도 어부가 되기 싫은 마리오는 아버지의 근심거리다. 이때 네루다가 카프리로 망명을 오면서 전속 우편배달부가 필요하게 되고, 마리오가 이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마리오의 관심은 네루다의 명성이 아니었다. 시인이 여자에게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에 끌렸을 뿐이다.


시작의 동기나 모습은 종종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 자체가 의미가 될 뿐이다. 두 사람의 만남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네루다가 ‘은유’로 건조한 마리오의 삶을 바꿔놓았다. 물론 마리오도 좋은 싹을 가지고 있었다. 베아트리체 루소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 “선생님 사랑에 빠졌어요. 낫고 싶지는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라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남겼으니까. 변화는 한 쪽의 힘으로만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이후 마리오는 네루다의 지도 아래 그야말로 시적인 표현을 줄줄 쏟아낸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랄 정도다. 네루다가 떠난 이후에는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언젠가 네루다가 질문한 카프리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나면서 아름다움과 시에 대해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그는 “선생님이 아름다움을 다 가지고 떠난 줄 알았지만, 아니었어요”라며 새삼 고향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일종의 개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바위에 부딪히는 작은 파도, 큰 파도, 절벽 위에 부는 바람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 파블리토(네루다의 이름을 따서 지음)의 심장소리까지. 이 장면에서 비춰지는 카프리는 마리오는 물론이고 관객까지 감동시킬 정도로 매력적이다. 넘실대며 속삭이는 바다와 바람과 유연하게 손을 잡은 절벽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음영으로 만들어버리는 햇살까지. 눈이 아닌 가슴으로 스며든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그런데 글을 쓰기 위해 카프리를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을 뒤적이면서 조금 놀랐다. 나도 네루다를 만나기 전의 마리오와 같았다고 할까. 아무것도 모르고 카프리를 찾았던 것이. 영화를 보고 마리오가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면서 터덜터덜 걷던 해변을 찾겠다는 의지를 가졌지만, 그 뿐이었다. 내 렌즈는 관광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니다. 나름 여행을 즐길 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구경꾼이 되지 말라고 한다. 아름다움은 찾는 자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의지가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시를 가르친다. 마리오는 좋은 학생이었다. 시로 베아트리체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고, 네루다에 바치는 헌시를 들고 이탈리아 사회당 집회에 나서기도 한다. 물론 마리오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시도 읽지 못하고 압사를 당하고 만다. 진압에 놀란 군중에 밟히고 말았다. 

시 한 번 제대로 읽지 못하고 죽은 마리오가 조금 불쌍해 보이고,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리오는 구경꾼에서 참여자가 됐다. 누구나 살면서 몇 번씩은 갈림길에 선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삶이 가치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리오처럼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구경꾼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파블로 네루다의 유명한 시 <시(詩)>로 끝을 맺는다. 마리오는 시가 찾아왔을 때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어렴풋이 첫 줄을 썼다’고 말해주는 걸까? 아니면 같이 첫 줄을 쓰자고 말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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