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블루 Feb 28. 2020

축구? 빠르고 힘 세지 않아도 돼

'황카카' 황진성이 증명한 차비 에르난데스의 이론

축구는 작고 빠른 영리한 선수들의 운동이다. (차비 에르난데스, 현 알사드 감독)

지난 달, 은퇴하고 유소년 지도자를 하는 황진성을 만났다. 선수 시절 신었던 축구화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다가 의문이 하나 생겼다. 황진성은 가죽으로 된 축구화를 선호했는데, 가죽 축구화는 상대적으로 무겁다. 드리블을 즐기는 황진성이 가벼운 축구화를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이 질문에 담담하게 답했다.  


“제가 스피드로 승부하는 빠른 선수는 아니여서요.” 


대답을 듣고는 너무 뻔한 걸 물었다는 후회가 들었다. 황진성은 빠르고 힘이 센 선수가 아니었다. 유려한 기술과 적절한 드리블 그리고 정교한 킥을 앞세운 선수였다. 아시아 축구계에서 가장 높고-빠르고-강한 선수를 선호하는 한국과 K리그에서 이런 선수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은 플레이메이커에 열광했던 걸까?’라는 생각도 한편으로 했다.   


K리그는 외국인 선수를 선택하는 방법도 다른 리그와는 조금 다르다. K리그 관계자들은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느리면 성공하기 어렵다. 아예 크면 모를까”라고 입을 모으곤 했다. 그래서 브라질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던 선수가 K리그에서 성공하기도 한다. 빠르거나 덩치가 컸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뛰었던 주앙 파울로가 가장 좋은 예다. 주앙 파울로는 엄청나게 빠르다. 

황진성은 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은 선수다. 이런 선수가 리그에서 338경기를 소화할 수 있었다는 건 뭔가 특별했다는 증거다. 황진성 별명이 황카카였던 이유와 맞닿아 있다. 황진성은 공을 들고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이 탁월했다. 속도를 붙여 달리며 순발력으로 수비를 제치는 게 아니라 몸 동작과 발기술로 앞으로 나아갔다.  


황진성도 자신이 기술이 좋다는 걸 내세우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황진성은 “고등학교 때는 감독 선생님이나 동료들이 ‘줄 데 없으면 진성이에게 줘’라고 말하곤 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이 인터뷰를 본 옛 동료 오범석(현 강원FC)가 SNS에 이 장면을 캡쳐 한 뒤 “누가?”라는 포스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장난은 칠 수 있어도 누구도 황진성이 기술로 리그를 주름 잡고 대표팀까지 갔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고종수나 윤정환보다 뛰어나다고는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지만, 황진성도 자신이 가진 특별함으로 일가를 이뤘다고 말할 수는 있다. 직선과 속도가 득세하던 K리그를 곡선과 리듬으로 풀어갔던 선수다.  


황진성이 남긴 기록은 간단하지 않다. 338경기(승강 플레이오프 2경기 포함)에 출전해 54골과 도움 67개를 기록했다. 그가 바라던 60골-60도움 기록은 이루지 못했으나 역대 최다도움 5위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경기당 도움이 0.2개다. 역대 최다도움 10위 안에 있는 선수 중에 황진성보다 더 경기당 도움이 높은 선수는 염기훈(1위, 0.29), 몰리나(3위, 0.33), 에닝요(5위, 0.29), 데니스(6위, 0.22)다.  

K리그 최다도움 기록


황진성이 남긴 기록 자체도 의미 있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고, 속도가 빠르지 않아도 프로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할까. 황진성은 은퇴 후에도 남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다. 직접 승합차를 운전해서 아이들을 태우러 다니며 유소년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정도 선수들에게 많이 느꼈던 야심은 보기 어렵다. 


“경쟁하는 데 지쳐서요. 당장은 프로에 못 갈 것 같아요. 애들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어요.”

작가의 이전글 타인의 꿈을 위해 산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