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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블루 Mar 01. 2020

아랍은 유럽의 미래였다

데이비드 리버링 루이스의 <신의 용광로>를 읽고

책 제목이 거창하다. 두께도 두껍다. 빈수레는 아니다. 몇 달 동안 끼고 낑낑거리고 볼만하다. 소화하기 쉬운 책들만 집어 삼킨듯해서 든 건 아니다. 아라비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걸쳐 있는 이슬람 국가를 여행하기도 했고, 십자군 전쟁 관련 책과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래서 이슬람에 대한 관심을 체계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몇 권 골랐고, 몇 권 읽었다. 끝판왕으로 가는 길에 만난 중간보스쯤 되는 녀석이다.  


부제가 ‘유럽을 만든 이슬람 문명’이다. 역사책이다. 왜 유럽도 아닌 아랍의 역사를 보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거다. 그런데 유럽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아랍역사를 알아야 한다. 유럽이라는 정체성이 굳어진 것도 아랍문명 때문이고, 현대 유럽문명의 뿌리가 된 이들도 소위 ‘아랍인’들이다.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유럽인들은 ‘롤랑의 노래’를 최고의 시로 여기고, 롤랑을 최고의 영웅으로 여긴다. 유럽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롤랑의 노래는 여러 부분에서 날조됐고, 당시 지금의 유럽은 문명이라는 단어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미개했다. 재미있는 일치이지만, 당시 클로비스의 ‘매로빙거 왕조’가 강성했던 유럽은 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전쟁이 필요했다. 경제체제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에 전쟁에 이은 약탈이 가장 강한 동력이었다.

아랍은 달랐다. 교육수준에서부터 경제체제까지 모든 부분에서 소위 유럽보다 우월했다. 피정복자에 대한 대우와 통치수준까지 남달랐다. 압바스 왕조에 밀려 지금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로 들어간 우마이야 왕조는 최고의 문명을 이뤘다. ‘알안달루스’의 수도였던 코르도바는 당시 세계 최고의 도시였다. 그리고 이 도시에는 무슬림, 기독교인, 유대인 등이 함께 조화롭게 살았다. ‘콘비벤시아(상생)’는 우마이야 왕조 아래서 어느 정도 구현됐다.


현대 스페인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1492년의 ‘레콩키스타(국토대수복)’도 결국은 우마이야 왕조의 분열과 그에 따른 권력공백 덕분에 가능했다. 영토선을 차치하더라도 이베리아반도에서 여물은 문명은 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리스 철학에 대한 중요한 주석서도 모두 지금으로치면 무슬림들이 쓴 것이다. 예가 하도 많아 다 언급하기도 어렵다. 도나텔로의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바로 뒤에 있는 아베로에스의 다른 이름은 알안달루스의 철학자 이분 루슈드(루시드)다. 유럽인들도 이를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역사에는 흐름이 있고, 과거는 현재를 반영한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읽어 볼만 한 책이다. 세계역사를 유럽사와 동일시하려는 오만한 유럽인들과 ‘바나나’들의 홍수 속에서 심지를 잡기 위해서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를 주름 잡았던 몽골 제국, 로마 제국 등도 포용적인 정책을 쓰며 떠올랐고, 배타적으로 변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강성했다가 쇠퇴하는 게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이런 흥망성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코르도바를 함락시키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대모스크 ‘라 메스키타’를 처음으로 본 유럽인 정복자들은 모스크에 새겨진 이 글귀를 봤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벌어진 일을 구현하고, 뒤에 오는 것을 밝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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