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가르쳐준 고요의 온도’
며칠 내내 비가 오더니
수면이 불어나
산책길을 모두 삼켜버렸다
늘 걷기 좋아하던 곳이라
마음의 안식처를 잃은 듯
괜스레 심통이 났다
언제 수면이 가라앉을까
그곳을 기다리며 하루, 이틀
포기할까 싶은 즈음
아무 생각 없이 들른 어느 오후
고요히 내려앉은 수면이
바람에 찰랑찰랑 흔들렸다
생각해 보니
한 번도 조용히 앉아
그 물결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고요히 눈을 감고
바람결에 섞인 물 내음을 맡아본 적 없었다
그저 넘치는 생각을
걷고 또 걸으며 흘려보낼 생각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풍경들
햇볕 아래 뽀얗게 드러난 산책로 옆에 앉아
처음처럼 물과 바람을 느껴본다
마치 내 안의 시끄러운 것들을
찰랑찰랑 씻어내고
후— 불어내어
살아남은 단단한 알맹이만
조용히 손 위에 올려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