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꿈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제 보니 벌써 네 달이나 지난 이야기다
이 꿈은 단언컨대 한 살부터 지금까지의 꿈 중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꿈이었다
그때 난 바쁘게 살면서도 이따금씩 쑥-하고 고개를 내미는 그의 추억에 젖어들곤 했었다.
그날도 그랬다.
언제나처럼 버스를 타고 퇴근하는 길,
창 밖으로 늘 지나다니던 야구 경기장이 보였다.
-나 야구장 한 번도 못 가봤는데
-다음에 같이 가자
흔하디 흔한 ‘다음에’란 그 말에 맘이 둥실 떠오른 순간이었다.
창 밖으로 경기장엔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우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다음에’란 덧없는 그 약속.
우린 더 이상 함께하지 않는다.
그렇게 갑작스런 추억과 씁쓸함을 되짚으며
잠자리에 든 밤..
우리는 꿈속에서 경기장이 보이는 잔디밭에 있었다
내가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던 것 같다
저 멀리서 야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고 설레는 마음처럼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그때, 미하엘 엔데의 환상 동화책 <모모>에 나오는 거꾸로 보이는 거인처럼
하늘을 가르며 비행기 한 대가 다가왔다
점점 거세지는 바람.
그 거대한 비행기는 불과 우리의 머리 몇 미터 위로 지나갔는데
실제로 낮게 나는 게 아니라 <모모>의 거인처럼 멀수록 거대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멀리 있단 걸 알면서도 머리 위로 부는 강풍과 함께 눈앞에서 거대한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은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
장면이 바뀌어 우린 한 남자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된다
엔틱한 느낌의 아늑한 실내.
그리고 왠지 익숙한 공기.
그의 집은 여러 나라에서 구한 듯한 여행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물건들로 장식 돼 있었고
이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설렘이 살며시 전해져 왔다.
집을 소개해주던 남자는 옥상이 있다며 집 밖으로 안내한다.
제일 늦게 나온 나는 마당을 구경하고 홀로 계단을 올라가며
문득 내가 예전에도 이곳에 와 봤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나는 혼자 여행하는 중이었다
이곳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마당에는 짙푸른 화분들이 나란이 있었고 옥상으로 가는 중간 계단에는 푸릇한 나무들이 있었다
평범하면서도 적당한 아름다움.
평범하면서도 적당히 아름다운 그 옥상에서 과거엔
쓸쓸함과 쌉싸름한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홀로 그때 기억에 둘러싸여
슬픔 속에서 아름다움을 지켜보던 난
한 발, 한 발
마침내 옥상에 다다른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게 된다.
저 멀리 주홍빛 물들이며 넘어가는 노을
작지만 아름답게 옥상을 수놓은 이름 모를 꽃들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
과거의 내가 슬픔 속에 바라봤던 같은 아름다움 속,
다른 단 한 사람.
그는 노을 속에서 채 올라오지 못하고 자신을 보는 날 뒤돌아 본다
특유의 궁금한 표정.
난 가슴이 벅차올라 그에게 달려가 안긴다
내 가슴이 벅차 오른 이유는 하나다
깨달았기 때문이다
같은 풍경 같은 아름다움 속에서
과거의 난, 마음 속 슬픔을 느꼈고
지금의 난, 가득 찬 기쁨을 느낀다
단 하나의 다름,
사랑하는 이가 그곳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나 가슴이 다르다.
그에게 안긴 순간 단 하나의 생각이 떠오른다
‘어쨌거나 사랑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