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를 좋아했던 이유는

by likeu

너무 어렸다.

연하라면 남자로 보지 않던 내게 무려 7살이나 어린

말 그대로 동생일 뿐인 사람이었다.


함께 스터디를 하며 자연스레 어울릴 시간이 늘었다.

다른 나라에서 온 그 아이는 눈에 띄게 매너가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가 깊었다.

처음엔 친절에 대한 문화 차이인 건지 헷갈렸지만 이내 그 아이와 같은 나라 사람들을 보며

그 애가 유난히 마음이 이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앤 언제나 환하게 웃었다.

반달처럼 구부러지는 눈을 보고 있자면 나까지 기분이 환해지는 그런 웃음을 지니고 있었고

항상 어떤 사람들에게든 친절하면서도 뚝심 있게 말할 줄 아는 아이였다.

착하기만 한 게 아니라 선하면서 자기중심도 확실한 아이.


사랑은 받아본 사람이 줄 줄도 안다.

그 아이의 구김살 없이 환한 미소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의 풍파라고는 조금도 겪지 않아

유복한 어린 시절까지는 잘 몰라도, 최소한 참 단란한 가족을 두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정말 좋은 아이. 건강한 가정 아래 잘 자라난 아이.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모님께 호되게 혼났던 기억을 이야기하던 중이었고

사람들의 경험 이야기를 말하는 걸 좋아하는 그 애는

그날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술을 매일 마셨었는데

하루는 새벽 3시에 7살이었던 자신을 옆마을에 있는 슈퍼로 담배 심부름을 시켰단다.

옆마을은 걸어가면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 앤 오후 6시 반에 혼자 걸어가겠다는 나를 위험하다고 데려다주려 했던 아이였다.

나는 조금도 위험하지 않으며 10분만 걸어가면 된다는 걸 설명해 준 뒤에야 조심하라는 말을 들으며 혼자 갈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 아이가 사는 나라는 여자들이 해가 지면 혼자 다니는 게 위험해지고

새벽에는 남녀불문하고 나가면 목숨을 장담하기 힘든 치안을 가진 나라였다.

그런 곳에서 새벽 3시에 어린아이가 혼자 나간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많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대화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애의 어린 시절을.

그런데 그런 얘기조차 어쩜 그리 미소로 이야기하는지.


난 마냥 행복하게만 자랐을 것 같은 이 아이가

사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렇게나 이쁜 마음을 가지고 성장했다는 것에 감동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과거 내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나의 가정사를 말하며 그런 집 아이는 안 봐도 안다는 식으로 매도했던,

나를 정말 화나게 했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내가 참 좋은데, 우리 가족이 자랑스러운데,

내 얼굴만이라도 보게 되면 그런 말 쉽게 못할 거라 자신도 있는데.

그저 들은 이야기로 쉽게 처리되어 버리는구나 하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을 기폭제로 난 소중한 걸 잃어야만 했다.

화가 났다. 보지도 않고 날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슬펐다. 나의 가족이야기가 날 보여줄 기회조차 없이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

날 좋아하는 만큼, 가족을 사랑하는 만큼 상처도 날카로웠다.


하지만 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아니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이 그를 좋아하게 된 그 순간

상처는 사라졌다.


난 그로 인해 그 아이가 싫어지지 않았으므로.

오히려 더 좋아졌으므로.


날 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는 날 더 사랑해 주겠구나.

내가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듯 그렇게,

누군가는 날 더 사랑해 주겠구나.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빛나는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따스한 가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와 잎 뿌리까지 모여서

살아 있는 ‘나무’라는 말이 생깁니다.

그대 뒤에 서 있는 우울한 그림자

쓸쓸한 고통까지 모두 보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전부로 와닿았습니다.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그대가 완벽하게 베풀기만 했다면

나는 그대를

좋은 친구로 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대가 나에게

즐겨 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 두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이 될 수 있겠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ㅡ그대를 사랑하는 건

서정윤

어둠은 빛을 극대화한다.



어둠은 분명히 나쁜 것이다.

ㅡ난 나의 사랑들에게 가능한 어둠이 닥치지 않길 기도한다

하지만 어둠이 가진 부인 할 수 없는 역할 중 하나는

깊이와 명암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벗, 사랑, 사랑.

내가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렇게나 좋은 사람이란 걸 느낄 때였다.

그럴 때, 난 그들에게 ‘무엇’이 되고 싶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건,

당신이 가진 빛나는 것들 뿐 아니라

그 옆의 진솔한 어둠까지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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