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by likeu



다들 영화 속에 살고 있었다.

평일 오전에 이렇게나 한가하게 산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니.

그것도 이런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누군가는 친구라는 듯 반려견과 사이좋게 산책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다정하게 연인과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같은 공기가 흘렀던 건

다들 유유히 흐르는 저 강만큼이나 넉넉한 여유가 느껴졌다는 것이다.

걷는 걸음걸이에서도, 따뜻한 표정에서도 사람들은 투명한 날씨만큼 마음이 맑다는 듯 여유 있어 보였다.





저런 일이 나에게도 가능한 삶이던가?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 있다.

난 사실 게으른 사람이란 것이다.

깨달았다 말한 것은

이제껏 내가 한 성실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도, 직장도 딱히 지각한 적 없었고 결근도 5년에 한 번 정도였다

항상 맡은 일을 제때 해냈고 다들 날 착실한 사람으로 여겨주셨다.

그래서 나도 내가 착실한 사람인 줄 알았다.

집에서 게으른 건 그것과는 별개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격검사를 하고 나서 의문이 생겼다

뭐지?

왜 성실성 점수가 낮지?

난 성실한데..?

결과가 꽤 신뢰 갔던지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불성실한 사람인가?


생각해보니

난 책임감이 강했다.

그래서 언제나 숙제도 책임져야 할 일들도 정확히 끝내놓곤 했다.


몰아서.


지금도

’ 마감만 맞추면 되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한다.


어쨌든 돌이켜 볼수록 난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사람,

거꾸로 꼭 해야 하는 일만 하는 사람이었다.

아~… 나 게으른 사람이었구나


친구에게 전화해

ㅡ나 사실 불성실한 사람이었어!

하니

ㅡ응, 너 불성실해

란다.


ㅡ.. 너 알고 있었어?

ㅡ 응! 너 게으르잖아!


아 넌 그동안 날 그렇게 알고 있었니...?
아주 제대로 알고 있었구나, 역시 넌 내 친구다!

그렇게 깨달음과 함께 반성도 했다
좀 더 부지런해져 보자!

책 읽고, 방정리도 하고! 이것저것 열심히!

하지만 역시나 게으른 탓인지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여전히

방을 성실하게 어질렀고 할 일들은 한 칸씩 뒤로 미뤄져 갔다


’ 내 게으름은 참 강력하네 ‘
그런 줄만 알았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뒀다.
갑자기 몰아닥친 시간의 홍수 속에서 잠을 잤다.
직장을 그만두니 어쩜 그리 아침잠이 사라지는지, 8시에 일어났다가 억울해서 다시 잤다.
그렇게 며칠.



쾌활했다. 몸이 상쾌했다.
기분 좋은데 방청소나 해본다. 방도 쾌활해졌다.
심심한데 집 앞 도서관이나 오랜만에 가보았다.
마침 신간도 들어왔네.
들어오자마자 허리에 푹신한 베개를 받치고 읽어본다.
책이 술술 넘어간다.

그렇게 3일을 연속 도서실에 가니 사서 선생님께서 왜 이리 빨리 오냐며 놀라신다.
평소 같으면 2주가 돼야 한 권 겨우 읽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학창 시절엔 당연히 도서실에 드나들곤 했었는데 성인이 되며 너무 게을러졌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쉬어 보니 알겠다.
피곤하지 않으니 나도 책을 읽는구나.
한가함이 있으니 나도 청소를 하는구나.








여유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다.
여유가 있다는 건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에너지는 심심함을 느끼게 한다.
활동을 원하게 한다.

결국,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렇게 겨울잠처럼 자고픈 마음도

꽁꽁 얼어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마음도

햇살 같은 여유 앞에서 모두 사르르 녹아 버렸다.



너무 자신을 타박하지 말자. 그동안 힘들었던 거야.
그래 그래 괜찮아 쓰담쓰담.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보자.
일을 줄일순 없으니
조금 덜 놀고, 조금 덜 사람들을 위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자!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그 덕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끄적끄적 쓰며 이것저것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게으르다.
게으름에 대해서만큼은 성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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