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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4. 2018

마흔의 임신_4

마음의 크기

 "그럼 다음 임신은 언제 가능해요?"

한참을 울고 나서 내가 뱉은 첫마디다. 

심장이 뛰지 않아도 아직은 내 뱃속에 있는 아이인데, 다음 아이를 언제 가질 수 있는 거냐니. 정신이 나간 건지, 정신을 차린 건지 몰랐다. 소름 끼치게 내가 싫었다. 회사생활을 십 년 넘게 하다 보니 문제 해결에 치중한 탓이라고 해도, 마음이 조급해서라고 해도 스스로 용서할 수 없는 말이었다.


 습관적으로 수납을 하고, 주차권을 받아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자기 잘못 아니야." 남편이 나에게 한 첫마디였다. 다시 울음이 터졌다.


남편은 바닷가로 차를 돌렸다. 내가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배려한 것일 거다. 멍한 상태로 때로는 괜찮은 척을 하였다. 슬픔은 천천히 찾아왔다. 잠자리에 누워 새벽이 올 때까지 울었다. 아침이 되었지만, 출근을 할 수 없었다. 아픈 마음을 감추고, 웃고 인사하고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휴가를 냈다. 언제나처럼 좋은 생각 하라고 엄마에게서 카톡이 왔지만 답장을 할 수 없었다. 계속 울기만 했다. 


보통의 유산율이 30%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내가 70% 가 아니고, 30%에 들고야 만 걸까.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유산 원인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다. 원인 분석을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날이 너무 추워서였을까, 회사에서 짜증내고 스트레스 조절을 못해서였을까 아니면 그 암 검사 탓일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지난주 머리가 부서질 것처럼 아파서 타이레놀을 먹을까 말까 하다 안 먹은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였을까.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추운 날씨에 집들이 간다고 돌아다닌 그때부터였을까.


돌고 돌아 결론은 내 잘못이 없다는 근거를 찾고 싶은 이기심으로 나타났다. 약한 아이는 오래 못 버티고 그렇게 되는 수가 있다고, 그 말이 가장 위로가 됐던 것도 날 위안하고 싶어서였을 거다. 잘못 먹은 것도 없고, 영양제도 잘 먹었다고. 그래야만 내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가 약해서였다고, 태어나도 힘들었을 생명이라고 잔인하게 내가 버틸 이유를 찾아냈다. 


3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내 탓이다. 

마흔이라는 나이에 찾아온 아이였는데 더 몸을 사리고, 아끼고, 조심했어야 했다. 쿨한 척, 담담한 척하지 않고 최대한 나와 내 아이가 깃든 몸을 아껴주었어야 했다. 

"영혼이 아주 큰 아이는 엄마의 마음이 너무 좁으면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려."

어느 타로점 보시는 선생님의 이 한마디에 '아, 내 탓이었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마음을 넓게 가져야 했다. 작은 일에 부르르 떨며 짜증내고, 신경질 내기보다 무던하게 넘기고 태연히 넘겼어야 했다. 

"같은 아이가 다시 올 수도 있고, 다른 아이가 올 수도 있어. 마음을 넓게 써요."

손해 보는 듯한 생각이 들어도 그런 쪽으로 가는 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득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살아가라는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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