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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4. 2018

마흔의 임신_5

아빠도 아프다

자궁이 커지는 시기라 밤에 한두 번은 깨어 화장실을 가곤 했었다. 어김없이 새벽 3시에 잠이 깼다. 

수술 전날의 긴장감 때문인지, 오랜만에 마신 커피 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았다. 

소파수술도 아이 낳은 거나 마찬가지라 산후조리 잘 해야 한다고 들었다. 싱크대 선반에서 미역을  꺼내 불리고, 고기를 볶고, 쌀뜨물을 받아 미역국을 끓여냈다. 


고기 누린 내에도 아무렇지 않아 문득 감쪽같이 사라진 입덧이 섭섭해졌다. 아이가 아직 뱃속에 있는데 입덧이 사라지니 밥맛이 돌고 배도 고프니, 스스로가 싫어졌다.  내 입에 넣자고 한 솥 끓여낸 미역국이 참 미워 보였다.


남편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는지, 주방으로 걸어 나왔다. 

"뭐하고 있어? 잠 안 자고.."

"내 미역국 내가 끓여야지, 자기가 안 끓여주니까."라고 괜히 날 선 말을 하고 말았다. 회사에서도 내 걱정하느라 수시로 전화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부랴부랴 왔을 사람인데... 나도 모르게 쏘아붙이고는 눈물이 고였다. 내 마음을 아는지 슬며시 다가와 안아주는 사람. 


아이를 좋아하는 남자. 길거리에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들만 보아도 '아하~ 아이고~' 하며 웃음 짓는 사람.

"이모가 좋아? 이모부가 좋아?" 

'이모'라는 대답을 듣고 싶어서 물었는데, '이모부!'라고 해서 서운한 적도 있다. 내가 저랑 산 세월이 몇 년인데, 몇 번 봤다고 이모부가 좋다고 하는지.. 눈치는 빨라서 얼른 '아니, 이모!'라고 말을 바꾸는데 그것도 참 귀여웠었지. 

남편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놀아 주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었다. 

그래, 당신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며 알콩달콩 살고 싶다고. 


수술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나는 출혈이 많아 그랬는지 어지러움이 심했다. 남편은 영양 보충하자며 나를 소고기집에 데려갔다. 소주를 한 병 반쯤 마신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떠난 아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와 병원을 가고, 수술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대기실에서 나를 챙겨주었던 나의 보호자. 씩씩했던 남편이 훌쩍이며 울었다. 그 일 있고 나서 처음 눈물을 보였다. 


왜 나만 힘들다고 생각했을까.

아이는 혼자 낳아 기르는 거냐고 늘 말해놓고, 아프고 슬픈 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아픈 만큼, 아빠도 아플 수 있단 걸 잊었다. 기대고 안기고만 싶었지, 등을 토닥여줄 여유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옆을 돌아볼 기운이 생겼고, 남편은 꾹 참았던 마음이 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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