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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pr 24. 2018

마흔의 임신_6

아이가 남기고 간 선물

수술 당일. 

늘 다니던 병원이었는데, 그날따라 임신한 여자들이 많아 보였다. 초음파 사진을 들고 웃는 모습, 남편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원장실을 나서는 모습. 잦아들던 마음이 또 흔들렸다. 지난 주만 해도 내가 저기에 있었는데, 왜 하필 나인 거냐고. 그날따라 의사와 간호사가 나에게 유독 친절한 것 같았다. '동정심인가?'하고 마음이 삐뚤어졌다. 


자궁 경부를 확장해주는 조치 후 링거 주사를 맞으며 대기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으슬으슬 떨려서 경량 패딩을 입고 들어가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옆 침대에 있는 사람은 인공수정을 하는 건가, 시험관을 하는 건가, 나처럼 소파수술을 하는 건가? 하며 온갖 상념이 지나쳤다. 


잠시 후 수술실로 걸어 들어갔다. TV 보면 수술실은 침대에 누워있으면 밀고 들어가던데, 걸어 들어가다니 이런 걸 웃프다고 해야 하나. 그만큼 간단한 거겠구나 싶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인공수정을 했던 그 수술실에 이제는 소파수술을 하러 들어가다니, 참 얄궂다. 

걱정 말라고 하며 간호사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참 따뜻하구나'라고 생각하는 사이, 마취가 되었나 보다. 눈을 떴을 때는 엉덩이 주사를 놓았는지 뻐근함만 있을 뿐 아무 기억도, 통증도 없었다. 그렇게나 간단하게 아이와 내가 분리되어 버리다니. 새끼손가락 한 마디만 한 그 작은 것이 어디로 갔을지... 아무렇게나 쓰레기통에 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잠결에 말한 것 같다. 


회복실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더니, 기다리고 있던 남편은 좀 놀라는 기색이었다. 안심시켜 주어야 할 것 같아 나는 괜찮으니 점심 먹고 오라고 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모양이 안쓰러웠다. 전기장판이 틀어진 침대에 누워 TV를 틀고 아무렇지 않은 듯 '라디오 스타'를 보며 낄낄댔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라고 했더니, 김치찌개를 포장해 오겠다고 한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겠지.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이 가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임신부터 유산까지 낯설고 무서웠던 경험들 속에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맙다고 말한 것 같은데,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다. 어느새 부부애에서 동지애, 이제 전우애로 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가 남기고 간 선물은 이것인가 보다고 생각했다. 


더욱 강해진 엄마 아빠가 되라고, 돈독해지고, 아픈 경험 속에서 성숙해지고, 부모가 될  준비 제대로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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