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산 후 첫 번째 생리는 소파수술 후 보통 30일 후면 시작된다고 했으나, 40일 정도 지나서 시작되었다. 5일이면 끝나던 것이 2주 동안 계속되었다. 밤에 잘 때는 그치고 낮에 활동할 때 흘렀다. 대개 회사 working time을 기가 막히게 맞추었다. 아프지는 않았기에 병원 가기는 다음으로 미루었다. 몸이 제자리를 찾느라 그런 것일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첫 번째 생리가 끝날 때쯤 회사를 휴직했다. 15년간 나의 밥벌이가 되어주었던 회사. 1월 중순, 날씨가 몹시도 춥던 날, 그날의 유산에 대해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고, 내가 택한 주범은 회사와 상사였다. 업무 스트레스 탓을 하며 휴직을 결심했다.
5일간의 유산 휴가가 끝나고 복귀하자마자 휴직하겠다고 했다. 부장은 예상했다는 듯 언제 들어갈 거냐, 얼마나 쉴 거냐는 인사상 필요한 질문들을 하고 순순히(?) 받아들였다. 얼마간의 인수인계 시간을 고려해 (나름대로의 배려라고 으스대며) 한 달 후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 버리고 싶었지만 한 달만 더 버티면 설 귀성여비, 연차비 등 이래저래 생기는 돈이 쏠쏠했던 게 컸다. 그 와중에도 돈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밀린 업무를 정리하고 인수인계 파일을 만들었다. 2주 정도 지나자 마음도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회사는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잘못이 없었다. 내 마음의 문제였다. 툴툴 털어버리지 못하고 혼자 짊어지고 스트레스를 만들어내는 성격이 내 몸을 망가뜨렸다. 감정에 매몰되서 남 탓하며 지내던 시기를 한참 지난 후에야 마음도 차츰 아물어 가고 있었다.
휴직한 지 3주 지난 시점에 두 번째 생리가 시작됐다. 28일이던 주기가 30일 넘도록 늦어졌는데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자궁이 제자리를 찾기 전인 듯싶었다. 병원 가기를 또 미루었다. 3개월은 지나야 자궁이 회복된다고 하더니 역시 그렇다.
4월 25일, 세 번째 생리가 시작됐다. 병원에 갔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던 듯 하다. 너무도 당연한 듯, 아침에 일어나 이를 닦듯이 어쩌면 기계적으로 예약을 하고 내원했다. 인공수정 2차 시도를 하기로 하고 페마라와 폴리트롭을 처방받았다. 드디어 다시 시작되는 거구나...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된 날은 아마도 ‘아... 이제 좀 괜찮아졌구나, 살 만 하구나’라는 마음이 들었던 날이었다. 내 마음을 헤집어 보고 글로 남기면, 괜찮아지고 치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란 그런 것이니까. 회복되고 있다고 괜찮다고 또 시작할 수 있다고 의욕이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가고 약을 먹고 자가 주사를 놓고 초음파를 보며 배란 타이밍을 맞추는 과정에서 약해진 마음을 또 발견한다. 집착과 걱정이 시작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불안과 초조, 포기와 체념 사이에서 수없이 왔다 갔다 한다. 시간이 어서 흘러가기만을 바란다. 오월이 지나갈 무렵이면 이런 전전긍긍에서는 일단 벗어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