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이 멈춘 것 같아요"
임신 시도 실패로 지쳐있던 마음을 추스르고 난 후 작년 11월 말에 다시 인공수정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 사이 우리는 공기 맑은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마음도 조금 편해졌다. 회사 근처로 이사를 했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니 몸이 편해졌고, 운동할 시간도 생겼다. 난임 병원까지 걸어 다닐 수 있는 아파트였기에 오고 가는 부담도 덜하지 싶었다. 나는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서서히 그 지난한 과정을 이겨낼 힘을 비축하기 시작했다.
운이 좋게도 첫 번째 인공수정에서 임신을 확인했다. 테스트기 결과가 한 줄인 지 두 줄인 지 믿기지가 않아, 남편까지 불러 확인을 하고 또 했다. 남편은 혹시나 내가 실망할 까 봐 걱정이 됐는지 흥분하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 하는 상황이 될까 봐 조심하는 그 마음을. 고마웠다.
아이를 가졌다는 기쁨도 잠시, 매일이 불안과 초조함의 연속이었다. 입덧이 언제 끝나나 싶다가도 속이 편해지면 아이가 잘 있는 건지 걱정을 하고 마는 임신 초기의 예민함이 계속되었다. 컨디션이 좋은지 먹고 싶은 것이 없는지 묻고, 좋은 생각만 하라는 구구절절 엄마의 카톡이 매일 날아왔다. 마흔의 딸이 아직도 걱정인 엄마. '남편의 어머니도 남편을 이렇게 애지중지 길러 세상에 내놓으셨겠구나' 하며 여성으로서의 동질감과 고마움을 되새길 수 있었다.
6주째에 '후-훅 후-훅' 하는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빠르고 힘찬 소리였다. 보통의 엄마들은 심장소리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고 하던데, 나는 '아, 이거였구나' 하는 기분만 들었다. 너무 좋아하고, 너무 감격하면 달아날 것만 같았나 보다.
8주째 정기검진 날, 아기부터 보자고 하더니 의사는 어떤 처치를 시행했다. 암 검사라고 했고 사전고지는 없었다. 출혈이 생겼다고, 거즈를 넣으며 의사가 '괜히 했나'라고 하는 바람에 조마조마했지만 그리 걱정하진 않았다. 거즈를 빼고도 출혈이 심하면 어떡하냐니까 일요일 오전 진료를 하니 오라 했다. 복부 초음파로 희미하게나마 심장 소리를 들었다. 토요일 밤 9시 반 경에 거즈를 빼냈다. 걱정하던 만큼 피가 많이 나진 않았다. 남편에게도 보여주니 괜찮을 거라 했다 입덧은 계속되어서 11시에 누룽지를 끓여먹었다.
1월 14일 일요일, 전 날 시행한 암 검사 후 재확인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출혈이 멈추었다고, 깨끗하다고 하는 의사를 붙잡았다.
"초음파 한번 보면 안 돼요?" 아이의 심장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싶었다.
"이상하다, 이쯤 되면 들려야 하는데... 심장소리가 안 들려요. 멈춘 것 같은데..."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어지는 장황한 설명이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말만 들렸다.
"2~3일 내에 수술로 빼내야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음이 터졌다. 아이의 심장소리가 멎었다는 말에도 덤덤했던 나는 남편을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 수술이 무서워서였는지, 진정한 분리를 체감했음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