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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Aug 16. 2018

마흔의 임신_11

유예기간

글을 쓰고 싶은 적이 많았다.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끄적이고 싶은 적이.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두려웠다. 설레발을 치는 것 같아서, 혹시 내 손에 쥐어진 것이 날아가 버릴까 봐서 겁이 났다. 

이제야 조심스레 말문을 튼다.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두었던 유예기간이 이제 막 지났기 때문일까. 


4월 말부터 병원엘 가고, 약을 먹고 남편의 손을 빌어 배 주사와 난포 주사를 맞고 5월 초 2차 인공수정을 했다. 

의사는 AMH 수치도 낮고, 나이도 많고, 유산 경험이 있는 내게 시험관 시술을 권했지만, 인공수정으로 한 번만 더 해보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를) 고집을 내가 부렸다. 


일주일 후부터 미열과 두통이 시작되었다. 임신이 된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동요하지 않으려고, 테스트기를 해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전에 사다 놓은 테스트기가 두 개 남아 있었다. 병원 가기 전날과 당일 아침 테스트기는 두 줄이었다. 

인공수정 시술 2주 후, 피검사 결과 수치가 751로 나왔다. 임신을 확정받는 순간이었다. 남편과 나는 안도와 기쁨을 느끼면서도 최대한 차분해지려고 했다. 평상심을 유지하고자 했다. 


유산과 임신이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지다 보니, 같은 하루가 무한 반복되는 영화의 장면처럼 모든 장면이 반복되는 기분이었다. 매 순간마다 예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소환되었다. 테스트기가 두줄 나왔을 때,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들었을 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순간조차 그랬다. 

그렇게 소환된 기억은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불안함을 만들었고,  지금 생긴 아이를 온전히 축복하고 기뻐할 수 없게 했다. 하늘로 보낸 첫째 아이가 자꾸 떠오르는 슬픔과 새 생명을 얻은 기쁨이 교차했다. 


5일 후 초음파 검사 결과, 쌍둥이였다. 임신 확정과는 또 다른 신선한 충격이라고 할까. 나이가 많은 탓에 둘째는  어렵겠고, 한방에 둘이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은 했었다. 

"인공수정으로 쌍둥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에 의사는 단호했다. "난소 나이가 많아서 어려워요."

포기하고 있었는데, 두 배의 축복이라니. 겁도 났지만, 그래 해보자 하며 불끈하기도 했다. 


조금씩 입덧이 심해지고 토한 적도 있지만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참을만했다. 임신 6주쯤에야 내 입덧 패턴을 알아가게 되었고, 2~3시간마다 소량의 음식을 먹으면 견딜만했다. 차츰  나아지고 있었다. 전보다는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피곤함이 느껴지면 충분히 쉬려고 노력했다. 속 쓰림과 소화불량, 메쓰꺼움, 피부 건조, 두통, 꼬리뼈 통증, 숨이 찬 증상이 번갈아가며 또 동시에 찾아왔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일주일 간격의 초음파 검사 때마다 아래쪽에 있는 아이와 위쪽에 있는 아이의 성장 속도 차이가 5일 정도 났다. 부모의 마음이란 이런 것인지, 자꾸 작은 아이에게 마음이 갔다. 좀 더 영양분 흡수하고 성장해 보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9주차 검사 때, 작은 아이의 심장이 멈춘 것을 확인했다. 결국 이 아이도 9주를 넘기지 못하고 하늘로 갔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무리하게 임신을 밀어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욕심과 이기심에 태어나지도 못할 생명을 자꾸만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안될 일을 억지로 되게 만들려는 건 아닐까. 억지로 수정을 시키고, 억지로 착상을 시켜서 계류유산이 반복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지난번 유산 때처럼 울음이 터져 나오지는 않았다. "엄마 나이도 많고, 키도 작아서 쌍둥이보다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어요." 의사의 말에 의지하고 싶었다. 떠난 아이에 대한 애도보다 남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내 몫의 과제라고 애써 생각하고 싶었다. 아직도 점점 커가는 아이 곁에 작게 남은 태반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또 간사하게도 두 번째 아이의 유산은 조금씩 잊히고, 남은 아이의 성장에 기뻐하고 있다.  


이 무더운 여름, 어느새 임신 16주를 지나고 있다. 어느 임산부나 그러하듯, 차곡차곡 진행되는 검사 결과에 마음 졸이고 안도하며 안정기를 맞이했다. 이번 주 기형아 검사 결과에 문제가 없다면 난임 병원을 '졸업'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불안, 초조해하며 임신 기간을 보낼 것이지만 혼자가 아니니까 태교를 벗 삼아 마음의 안정을 찾아보려 한다. 계속해서 기록하고 지금의 순간을 남겨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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