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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처럼 바람처럼 Sep 28. 2018

마흔의 임신_14

만감

날짜를 세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휴직한 지 6개월, 임신한 지 5개월, 출산까지 4개월....


임신은 참 오랫동안 바라고 기다려왔던 일이기도 하지만 매일매일이 새롭고 두려운 경험이다. 처음 해보는 일이 늘 그렇겠지만 임신으로 인한 변화는 온전히 내 몸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라 아무리 말을 해도 남들은 백 퍼센트 알 수 없는 (심지어 의사도 그런 것 같다) 일이다. 출산 백과를 들춰봤어도 이론이 실제에 적용되는 느낌은 다르다.


임신일까, 아닐까 의 기간을 거쳐 기쁨도 잠시 12주까지는 유산에 대한 두려움에 떨다가, 16주 까지는 기형아 검사 결과에 맘 졸이다가 잠깐 맘을 놓다 싶더니 자궁근종으로 진통제와 함께하는 시간... 아이의 태동에 조금이라도 태교를 위해 힘써야지 하다가도 나태해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태교 삼아 오픽 시험을 봐야지, 한자 능력 시험을 봐야지! 의지가 충만하다가도 하루 이틀 만에 손을 놓고야 만다.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문다.


회사에 안 가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을 지내다 보면 머리가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뒤쳐지는 것만 같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 잉여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임신을 위한 불가피한 휴직이었음에도 밥만 축내는 식충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우울해지기도 한다.

멀지 않은 미래를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또 1년, 나는 총 2년을 이렇게 지내게 될 텐데 과연 복직을 하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막연히 두려워진다. 무엇인가 다른 것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며 조급해진다.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전에는 막연히 ‘언젠가는 하겠지!’라고 마음먹었었는데 요즘은 ‘아마 안 되겠지’ 하고 지레 마음을 접게 된다. 이게 여자들이 스스로 한계를 짓는 단계인가 싶어 스스로 깜짝 놀라는 순간들이 있다.


반성 끝에 또 계획을 세운다.  

내일은 티브이를 줄이고 책을 더 읽고 글을 더 쓰고 몸을 움직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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