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의 신혼일기 (8)
결혼 전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경기도의 어느 신도시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도로와 길쭉길쭉하게 서있는 신축아파트, 그 사이에 들어서있는 최신식 쇼핑몰과 상가건물들, 차로 조금만 벗어나면 산과 바다가 근접해 자연과도 가까운 삶.
남편은 결혼 때문에 서울을 떠나는 나를 위해 경기도가 이렇게 살기 좋다며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줬다. (웃픈 건 이때 방문한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 이 지역은 당연히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신혼집에 필요한 물품도 구경할 겸 어느 쇼핑몰에 방문하였다.
쇼핑몰에는 유명한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었다. 그중 한 생필품을 파는 매장을 방문했다. 평일이라 매장은 한산했다. 여유롭게 둘러보던 중 매장의 점장님으로 보이는 분께 필요한 걸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분은 생각대로 점장이셨고 매우 친절하게 대응해 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절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는데 알 수 없는 위화감의 원인은 계산을 할 때 알 수 있었다.
점장님은 계산대에서도 과하게 친절하셨다. 나는 기본적으로 외향적이고 리액션이 굉장히 좋은 사람으로 상대방이 친절하면 나 또한 더욱 친절해지는 경향이 있어 풍부한 리액션으로 맞대응했다.
그러다 점장님은 내 반응이 좋았는지 갑자기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하소연의 내용은 이렇다.
에피소드 1
온몸에 명품을 휘감고 온 한 고객이 일 년도 전에 구매한 (몇 번이고 입고 빨았던 흔적이 있는) 여성속옷을 가지고 와 온갖 트집을 잡으며 환불을 요청한 것이다. (나와 남편에게 환불해 준 여성속옷을 실제로 보여주었다.) 점장님은 처음엔 안된다며 거절했지만 본사에 클레임을 걸 거라며 계산대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환불해줬다고 한다. 그 후 그 지역 맘카페에 점장님에 대한 안 좋은 글을 올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했다.
에피소드 2
한 고객이 얼마 전 구매한 프라이팬을 가져와 하는 말이 '어제 이 프라이팬으로 남편에게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줬는데 계란노른자가 터져서 반숙 계란프라이를 만들어줄 수 없었어요! 이 프라이팬이 이상하니까 계속 노른자가 터지는 거예요!!'라며 환불을 요청했고 이번에도 어쩔 수 없이 환불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소연을 한참 듣고 있는데 주변에 다른 고객들이 계산을 하기 위해 줄 서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점장님의 열변을 끊기 위해 리액션을 멈추고 계산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했다. 점장님은 그제야 죄송하다며 자기도 모르게 이 지역에 새로 오신 분에게 하소연을 하게 됐다며 오늘 주차 풀로 등록해 드렸으니 여유 있게 놀다 가시라며 문 앞까지 나와 인사를 해주셨다.
말로만 듣던 신도시 썰을 직접 듣다니! 생각보다 충격적이라 쓴웃음이 나왔다.
물론 점장님의 행동이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다. 얼마나 힘들면 자신의 영업장에서 신규고객에게 이런 하소연을 할까 싶다가도 영업 중인 곳에서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 다른 고객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칠 텐데 라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점장님이 겪은 일은 실체가 있었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점장님의 표정은 나까지 다 억울해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그 동네 사는 지인에게 듣기로 실제 점장님은 별난 사람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자영업자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영업이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이고 까다로운 건 역시 손님 대응과 가게의 평판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제 막 생겨난 신생도시의 경우 베드타운인 특성상 손님이 한정되어 있어 한번 가게의 이미지가 추락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주변에 새로 생겨난 도시의 상가에 가끔 가보면 매장이 바뀌어 있거나 사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부디 소수의 손님 대접을 받고 싶어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자영업자가 피해를 받는 일은 생기지 않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