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의 신혼일기(7)
한여름, 우리는 어느 구축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어떤 옵션도 없었기 때문에 이사는 하루 만에 끝나지 않고 매일같이 크게는 가구와 가전 작게는 아주 소소한 생필품등 물건들이 들어왔다. 그렇게 매일 아침 현관문에 쌓여있는 택배를 가지러 나가는 것이 하루일과 중 하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마냥 현관문을 열었다.
( 아파트 구조는 한 층에 2세대만 있는 계단식 아파트로 우리 집 현관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위치해 있다. )
얼굴만 빼꼼 내밀고 문뒤를 확인하니 여러 개의 택배상자가 쌓여있었다. 현관을 나서자 보이지 않았던 작은 과자봉지가 보였다. 집 앞에 일부러 버린 건지 아니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휙 버리고 간 건지 알 수 없어 일단 그대로 놔두었다. (이유는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직접 가져다 버렸으면 해서였다.)
가장 먼저 의심의 대상에 오른 건 옆집이었다.
사실 이사 올 때 떡을 돌리거나 인사를 한 적이 없어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오며 가며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짐작만 할 뿐. 추측컨대 아빠, 엄마, 중학생과 초등학생 형제로 구성된 4인가족이 살고 있는 듯했다.
두 번째 의심대상은 택배기사님 또는 배달기사님이었다. 세 번째는 아파트를 드나드는 불특정다수.
하지만 처음 있는 일이었고 고의성이 있어보이진 않아 의심부터 하기엔 이르다 판단하여 괜한 의심은 접어두고 일단 쓰레기를 그대로 놔둬보기로 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과자봉지는 삼일 내내 같은자리에 방치돼 있었다. 결국 직접 버리기 위해 나가 보니 과자봉지가 사라져 있었다.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청소해 주시는 분이 버려주신 듯했다.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나 하던 와중 며칠뒤 또 과자봉지가 버려져있었다. 이번엔 과자 봉지의 위치가 좀 더 우리 집 현관과 가까웠다. 남편에게 바로 보고하니 이번에도 며칠 놔둬보자는 의견이었고 그렇게 며칠 간 현관 앞에 방치해 두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청소해 주시는 분이 버려주신 것 같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의심이 확신이 되는 일이 생겼다.
현관 앞에 택배상자가 꽤 많이 쌓여있었는데 택배상자와 벽 사이 작은 틈에 과자봉지가 놓여있었다. 이번엔 누가 봐도 일부러 그 위치에 버리고 간 것이다.
나는 바로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고했다. 남편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엘리베이터 CCTV 확인요청을 하겠다고 하였고 일단 과자봉지를 버리지 말고 보관해 달라고 했다.
남편이 귀가 후 관리사무소에서 쓰레기를 버린 사람이 CCTV에 찍혔다는 연락이 왔다. 개인정보라 직접 보여줄 수는 없고 어떤 상황인지만 알려줬다.
범인은 옆집 초등학생 꼬맹이.
옆집 꼬맹이가 1층에서 과자봉지를 들고 탔다가 우리 집 현관 앞 택배상자 사이에 버리는 모습이 찍혀있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일단 초등학생이 그랬다는 사실에 조금 안심했다. 아직 어린 친구니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아주면 될 문제다. 다만 옆집에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인사도 해본 적 없는 옆집 가족분들과 얼굴 붉히긴 싫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우리 집 현관에 벽보와 과자봉지를 붙여두기로 했다. 벽보의 내용은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과자봉지를 버린 분은 남편연락처로 연락 달라고만 썼다.
다음날 저녁쯤 누군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 남편이 나가보았다.
예상대로 옆집 꼬맹이와 꼬맹이의 어머니가 서있었다. 어머니는 남편을 보자마자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셨고 꼬맹이도 부모님에게 이미 많이 혼났는지 눈이 퉁퉁 부운채 죄송하다며 훌쩍거렸다. 남편은 꼬맹이에게 앞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괜찮다며 토닥이고는 어머니와 꼬맹이를 돌려보냈다.
사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연락이 오더라도 상식 밖의 사람들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정중하셨고 오히려 많이 혼났을 꼬맹이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요즘 이웃 간의 갈등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를 많이 접하다 보니 지레짐작하여 겁만 먹었던 것 같다. 이번일로 내가 먼저 인사하는 작은 실천으로 따뜻한 사회 만들기에 일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가끔 옆집 아주머니와 마주칠 때면 가벼운 인사정도는 하게 되었다. 아직 어색한 감은 있지만 '인사만 잘해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라는 말처럼 옆집 이외도 이웃주민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하려고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