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서 날리기

by 인복천재

출산과 육아로 첫 번째 직업을 내려놓고, 두 번째 직업에 새로 발을 들인 지 만 8년이 지났다. 이달 말이면 면직절차가 마무리되어 난 새로운 세계에 임용된다.

짜릿한 사직서 날리기

면직의사를 말하는데 홀가분한 마음에 좀처럼 표정관리가 안된다. 조금도 아쉬움이 없어 아쉽지가 않다.

이곳에서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시간이란 놈은 기억을 왜곡하고 미화한다. 힘든 시간들이 분명 더 많았던 것 같은데 마무리를 하는 지금은 고마웠던 주변 동료들만 남았다. 그 더디고 지난했던 시간은 끝자락에서 나에게 사람을 선물했다.

마치 시커먼 흙덩이를 채반에 담아 강물에 쉼 없이 흔들어 댈 때에도, 그 자리에 조용히 남아있는 금싸라기들처럼 말이다.


그러다 날 힘들게 했던 사람들마저 곱게 포장하고 이해하려는 내 모습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언젠가 직장에서 인생 선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 좋으세요?
음.. 저는 저에게 잘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못해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에요.


응?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예의 바른 사람, 친절한 사람 같이 뭔가 정의가 내려질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사기꾼도 알고 보면 다 속사정이 있다'라고 했다. 범죄자 주변을 인터뷰하는 영상에서 나에게 선하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옹호하는 모습들을 보면, 너무나도 단순하게 그저 나에게 피해를 주면 나쁜 사람인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 이 분의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들은 나에게 피해를 주며 못해주던 사람들이었나 보다.

지지고 볶아댔던 기억은 차치하고,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나의 사직서는 습자지가 된 듯 그토록 가벼울 수가 없다. 갈 자리를 정해놓은 자의 여유로움까지 더해져 날개를 달았나 보다.

좋았던 사람들은 그대로 인연을 이어가니 잃은 것도 없다.


새롭게 가는 곳도 사람 사는 곳인지라 또다시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언제나 새로운 출발은 설렌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듯 또 최선을 다하겠지.


8년의 시간은 그렇게 거름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햇빛 같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