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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신애 Aug 12. 2022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위한 아름다운 준비

-기아대책 필란트로피스트 기고문(2022 Vol.22, pp.16-17)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 

작년 초에 낸 책이름이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 적는 나만의 메시지가 있다. “언젠가 다가올 그날에 참 잘 살았고, 고마웠고, 행복했다고 말해주세요!” 이 말은 곱씹어보아야 그 맛이 살아난다.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사람이 그 마지막 날에 편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잘 살고자 애쓴 사람’만이 진심을 담아 할 수 있는 말이다. 


삶과 죽음은 참 묘하다. 삶을 예찬하고 소중히 가꾸는 이야기들은 넘치는 반면 죽음은 모든 것들을 끝장낸다. 우리들은 모두 죽음에 대해 함구하며,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을 멀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반드시 찾아온다. 언젠가 다가올 그 날,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리고 내 묘비에는 나에 대해 어떤 말이 남겨질까?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내 직업과 관련이 있다. 20여 년 동안 대학과 NGO에서 선한 일을 위해, 누군가의 삶을 살리고 돕기 위해 직업적으로 모금(fundraising)을 하면서 매우 많은 기부자들을 만났다. 나는 늘 그 분들이 왜 기부를 하는지 참 궁금했다. 기부자들과의 수많은 대화와 교제 속에서 나는 그 삶의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고, 그 이야기들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죽음들은 결코 허망하지도 헛되지도 않았다. 그 분들의 기부와 헌신 덕에 누군가의 변화된 삶이 그 다음 이야기들을 장식했다. 


모든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예외 없이 고난과 역경을 겪는데, 그 중 어떤 이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고 빛과 등불이 되어서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하나하나의 촛불과도 같이, 그 헌신들은 세상을 밝히고 온기를 발하는 이야기들이 되었고, 그것이 바로 기부자들의 삶이었다. 나아가 그분들의 죽음은 모두에게 잊혀지고마는 사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고 기려지는 귀한 유산이 되었다. 기부자들은 결코 자신의 돈을 헛되이 낭비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의 목적을 따라 어떻게 돈을 잘 쓰고 영원한 가치를 남겨야 할지를 아는 지혜의 사람들이었다. 


어쩌다보니 우리는 맹목적으로 돈을 추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이 많으면 잘 사는 것이고 돈이 적으면 못 산다고 여긴다. 돈은 모든 것의 목적이 되고, 돈을 위해 가족과 사랑과 친구도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돈은 그 자체로 아무 것도 아니다. 돈을 많이 가졌다고 행복하지도 않고, 돈이 많지 않다고 불행하지도 않다. 돈을 많이 남긴 부자들의 장례식장에서 그 자녀들이 부모의 삶을 기리고 화목한 모습을 보이는 대신 재산 때문에 서로 다투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에서, 나는 더 지혜로운 사람들의 모습의 보았다. 내가 살아있을 동안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돈을 잘 쓸 줄 알고, 언젠가 내게 마지막 날이 다가올 때를 대비해서 자녀들과 나의 소중한 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야 할지를 아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인생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자녀들에게 남길 진짜 유산은 단지 돈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멋지게 살다가 가신 부모님의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여야 하지 않을까. 


남은 삶이 얼마일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언젠가 다가올 그날을 아름답게 준비하는 지혜주시기를 간구한다. 누군가에게 힘과 위로와 희망이 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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