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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Jun 29. 2021

돌봄일기 #5

빗속에서 춤을

돌봄일기 6주차

왼쪽 어금니 전체가 아파서 사랑니가 아닐까 짐작 중. 가슴통증이 지속되는 가운데 왼팔 전체를 관통하는 통증이 꾸준히 찾아옴. 가끔 현상유지에 한계치를 느끼지만 잘 넘기고 있음. 기타 다시 배우려고 본가에서 가져옴. 일 벌려놓고 나중에 후회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음.    









 

시뮬레이션. 

내 습관이자 주특기이다. 상황과 인물, 사건을 설정한 뒤 몇 백번이고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이렇게 행동하면 어떨까, 저렇게 행동하면 어떨까. 어떤 결과가 나올까. 어릴 때부터 해온 습관은 내가 소설과 희곡을 습작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신중하게 말해야하는 상황에서도 발휘된 이 습관은 내가 배려심 있고 차분하고, 믿음직스럽다는-놀랍게도!-주변의 평판을 이끌어내었다.   





제한은 상상을 만든다.     


얌전히, 가만히 ‘어른처럼’ 있어야 착한 아이지.

또래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것도 좋았고, 선천적으로 인내심(내지 지구력)이 많기도 했다. 가만히 어른들 곁에 앉아서 재미도 없는 <아침마당>을 보고 누구네가 과수원 밭을 얼마에 팔았네, 누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고 누가 결혼을 한다더라와 같은 지루한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쪼그만 애가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뭐라 한마디라도 얹으려하니 어른들 눈에는 웃기고 귀여워보였겠지. 나도 어렸을 때는 꽤 귀여웠다. 어른들은 내 엉덩이와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어른스럽네!     

그 말은 나에게 또래와 다르며, 어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특권을 선사했다. 동시에 제한을 강화했다. ‘어린이’처럼 울거나 떼쓰면 안 되고, 어른들을 힘들게 하면 안 된다. 애다운 맛이 있는 것처럼 귀엽고 재롱도 잘 부려야하지만 되도않은 고집을 부려서 어른들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 얌전히, 조용히, 가만히 있어야 한다. 신체적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았으나 늘 재잘거렸던 나는 좀이 쑤셨다.      




저 탁자 위에 꽃병을 만지고 싶다. 촉감은 어떨까. 우리 집 문고리처럼 매끈할까? 만지고 싶다. 근데 만지다가 떨어뜨리면 어쩌지? 조각이 와장창 깨질까, 아니면 퉁- 소리를 내며 반으로 쪼개질까? 그렇게 깨지면 표주박 모양 같겠다. 장갑을 끼고 만지면 어떨까. 그래도 떨어질까? 아빠가 옆에 있으면? 바닥에 내려놓고 만지면?     



몸은 가만히 있어야하니 눈으로 열심히 주위를 살피며 상상했다. 상상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사과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 부엌의 밀가루를 거실에 뿌리는 것, <아침마당>의 여자 MC가 입은 한복을 내가 입는 것, 시간을 멈춰놓고 나에게 세뱃돈을 주지 않으려 도망 다니는 삼촌의 바지주머니에서 만원을 꺼내는 것 등등. 제한은 상상을 만들고 키웠다.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도 상상은 계속 되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빨리,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지? 어떻게 행동해야 덜 혼날까. 잘못했다고 처음부터 인정할까? 아니면 최대한 잡아뗄까? 모든 가능성을 다 검토해보고 내가 내린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까, 현상유지나 잘하자 따위의 마음이었다. 무슨 일 하나라도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아주아주 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 소극적으로 몇번이고 곱씹어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상상은 현실을 작게 만들었다.     









 

빗속에서 춤을     


저번 주 비가 왔었다. 서울의 다른 지역에는 비 온다고 난리였는데, 내가 있는 곳은 비가 오지 않았다. 그냥 지나가려나싶어 기숙사에서 종강 후 여유를 만끽하던 그때, 적막 속 소음이 들려왔다. 무언가 세차게 때리는, 비내리는 소리. 창 밖의 풀잎이 위아래로 흔들리고 있었다. 구름으로 가득 차 번쩍이는 하늘, 그르렁대는 천둥소리, 퍼붓는 비. 순간 무언가에 홀린 듯 옥외정원으로 뛰어갔다.      


고개를 빠끔 내밀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멈춰있는 것도 확인하고, 안경을 벗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정원 한가운데로 뛰어갔다.      


비는 누구 하나 죽이려는 의도를 가진 것처럼 따갑게 내렸다. 아프다고 느낄 정도로 따가웠다. 안개 같은 보슬비가 아닌 장대비였다. 이따금 눈앞이 번쩍이고 5초 뒤 하늘에서는 굉음이 들렸다. 차갑고, 따갑고, 무서울 정도로 큰 소리가 들리고.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늘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 비를 맞는 장면은 엄청난 고통 혹은 속박된 무언가에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으로 대변되었다. 감옥에서 탈출하고 한밤중에 내리는 비를 맞거나, 밝은 필터를 입힌 화면에서 비를 맞으며 하하호호 뛰어 놀거나. 아니면 실연이나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빗속에서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거나. 장면들을 보며 상상했었다. 저렇게 비를 맞으면 눈물을 저렇게 흘릴 수 있을까. 빨래할 걱정 없이 재밌게 놀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래서 직접 해봤다.     




차가움 뒤에 몸 안에서 훈훈한 열기가 올라왔다. 

내 숨이 김이 되어 보이는 것 같았고, 따갑던 눈은 한번 쓸고 난 뒤로 멀쩡했다. 위에 옷은 다 젖었지만 아직 속옷은 젖지 않았고(품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의외로 상쾌했다. 비를 맞으면서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빙글 돌았다. 옆 단지 아파트 주민이 보면 종강을 앞두고 미친 대학생인가 싶겠지만, 안경을 벗은 내 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슬리퍼를 신고 빗속에서 뛰어다녔다. 빙글빙글 돌다가 미끄러질 뻔 했다. 차마 소리는 내지 못하고, 그저 비를 맞으며 걷고 뛰기를 반복했다. 춤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스텝을 밟으며 출처모를 노래를 흥얼거렸다. 정말 재밌었다. 내 생에 이런 해방감과 재미는 다시없을 정도로. 이 순간이 영원히 계속 되었으면 좋을 정도로.




빗물을 수습하고

한참을 뛰놀다 재채기가 노와 바로 들어갔다. 물기를 샤워실에서 짜내고,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게 노심초사하며 호실로 들어갔다. 꿀 한숟가락 탄 생강차를 홀짝이며 젖은 옷을 말렸다. 비는 그 뒤로도 몇 시간을 세차게 내렸다.



가끔은 고삐풀고 달리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풀고 달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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