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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Jun 21. 2021

돌봄일기#4-2

내가 잘 살아도 되는 이유

돌봄일기 5주차

여름이 다가오고 몸에 대한 자신감 저하, 불만 증가. 호르몬의 여파로 식욕 상승, 냉동 블루베리로 식탐을 달램. 가슴통증 有. 본가 내려가기 전 상담으로 예방주사 맞음. 상담에 꽤 만족 중. 에이쁠 놓쳤지만 곧 친구들 본다는 사실에 매일을 일희일비하고 있음. 계절학기까지만 잘 버텨보기로 결심.




*자해 이야기 있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단 말이 아니다. 분명 나는 자의로 선택 한 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가 아닌 살기 위해서다.   


   

죽고 싶지 않다. 누구보다 잘 살고 싶다. 그런데 잘 살 자신이 없다. 능력도, 의지도 없으면서 사는 게 구차하게 느껴진다. 내 몸뚱이에 쏟아 붙는 모든 자원이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어차피 사회에 나가 1인분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바에야, 남들이 우러러보는 삶은 아니더라도 평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할 바에야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죽는다는 행위는 나에게 가능성을 남겨두는 행위다. 잘 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 거다. 내가 정말 못난 사람이라는 것이 절망스럽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려고 할수록 괴롭다. 남한테는 잘도 기운을 북돋는 말을 하면서 나에게는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완전무결한 인간은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기말 레포트에도 주구장창 써대면서도, 인정하지 못한다. 아니, 인정 안 한다.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 행복할 자격이, 편할 자격이 없다. 내가 이러지만 않았어도, 저러지 않았으면, 누구는 화내지도 않을 테고 마음 상하지도 않을 텐데. 비이성적인 상태에서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들수록 나의 자아는 작아졌다가 비대해지기를 반복한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두가 행복할 텐데. 아니지, 내가 뭐라고. 근데 내가 뭐라고 사회의 자원을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을까. 자아의 크기가 어쨌든 간에 결론은 ‘나는 태어났으면 안 된다’로 내려진다.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다. 편하고 싶고, 흔히들 말하는 머리‘꽃밭’인 상태로 힘 안 주고 살고 싶다. 절망을 느껴도 금세 털고 일어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건강한 일상을 한 조각이라도 가지고 싶다. 그러나 내 모든 소망은 나에게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기대하면 실망하고 그럼 나만 힘드니까, 나는 원래 이랬으니까 소망을 다 버려야지.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고 싶다. 본가에 내려가서 엄마가 만들어준 찜닭을 먹고 싶고, 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 야경을 보면서 맥주를 홀짝이고 싶고, 독일어를 배워서 유창하게 말하고 싶다. 중국어 배워서 상해 게 요리 먹으러 중국으로 여행하고 싶다.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살고 싶다. 기타를 배워서 나에게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싶다. 눈을 한 움큼 쥐었을 때 시원함, 차가움, 화끈거림을 느끼고 싶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옷이 젖을 걱정 않고 처음 눈을 본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싶다. 비가 내릴 때 손바닥을 따갑게 간질거리는 빗방울을 느끼고 싶다. 초여름이 시작되기 전 물기를 가득 머금은 바람을 맞고 싶다. 살아서, 살아서 이 모든 걸 하고 싶다.


내 소망이 현실이 되려면 부단히 노력해야한다. 내가 편해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한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왜 안 죽어도 되는지, 왜 안 아파도 되는지 나름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스스로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줘야 한다. 농담에 그치지 않고 내가 좋아죽겠다는 듯이 나를 말하고 나를 껴안아야 한다. 그래도 돼. 나는 그래도 돼.



어찌되었든 아픈 건 싫으니까. 

살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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