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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고양이 May 29. 2021

돌봄일기#2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하지만 난 잡식이지.

돌봄일지 2주차.

우발적인 상처 외에 직접적인 상해 입히지 않음. 식사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김. 약간의 수면부족.






집중력이 낮아진다. 자제력도 덩달아 낮아진다. 


     

올해 들어 부쩍 집중력이 낮아졌다. 하루 이틀 아무것도 못하다가 채찍질하면 열심히 달렸는데. 작년에도 힘들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다.      


미디어의 영향도 없잖아 있다. 유튜브에는 뭐 그리 재밌는 영상이 넘쳐나는지, sns로 합법적으로 남의 일상을 훔쳐보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웃긴 밈과 사건사고는 어찌나 많은지. 스크롤 몇 번 내리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 있다.    


 

작년과 올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는 글쓰는 시간이 많이 줄었다. 전공이 문예창작이라 늘 감상문, 비평문 매주 쓰고 희곡과 소설을 쓴 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했다. 하지만 올해, 그러니까 이번학기는 비평문만 썼다. 학교 연계형 인턴 준비 중이라 생판 다른 교과목을 들어야했고, 이 때문에 매주 몇 개씩 쌓이는 감상문과 마감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괴감은 더해간다.   


   

처음 보는 단어와 이론들, 설명을 들으면 알겠지만 시험문제 앞에서는 새하얗게 변하는 머리를 쥐고 책상에서 씨름했다. 늘 마감할 때 마다 ‘답이 정해진 시험문제를 푸는 게 쉽겠다’라고 지껄였던 과거의 나 자신을 두드려 팼다. 배에 부른 소리를 했었다.     


과제할 때 원래는 잔잔한 노래나 팝송을 틀어놓는다. 하지만 영드와 미드를 많이 보면서 가사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 집중이 되질 않는다.(영어가사가 들리는 만큼 토익점수도 올랐으면) 그래서 요즘은 가사가 없는 곡 클래식을 틀어놓았는데, 그와 어울리는 장면이나 대사, 스토리가 생각나는 바람에 이 역시 실패. 게다가 답도 없이 밴드와 첼리스트를 좋아하게 되어 뭐 들을 때 마다 연주하는 무대를 상상해버린다고 시간을 다 썼다.      

뭐만하면 상상해버리는 버릇은 습관이 되어 고쳐지지도 않는다. 이런 관계성은 어떨까. 이런 이야기는 어떨까. 이런 대사는? 이런 장면은? 이런 분위기는? 이런 문장은? 한 순간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질문들은 나를 행복에 취하기도, 절망감에 절여버리기도 한다.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에 답을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는 누구보다 즐겁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내 취업전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자각할 때면 자괴감에 빠진다.  



매일 엄마와 전화하면서 말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나봐

내가 좋아하는 '나'와 일자리에서 반길만한 '나'의 괴리는 어쩔 수 없다. 나는 평생 글이나 쓰고 살고 싶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글만 써제끼는건 이 사회에서 굶어죽는 길이다.

그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송충이가 아니라 잡식이니까. 이것도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 오늘 밤은 그렇게 자위하며 마무리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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