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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 Kim Apr 30. 2020

나에게 조언을 구하지 말아줘. 인생엔 정답이 없으니

더 알게 되니 더 모르겠다.

얼마 전 사촌동생이 고민거리들을 털어놓으며 인생 상담 같은걸 부탁했다. 내게 물어보는 이유인즉슨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을 닮고 싶어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고 싶기도 하고 이야기가 잘 통해서란다. 사실 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라 주변인들의 고민상담을 많이 하는 편이다.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중 한 명은 나보고 상담사를 해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사실 한때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주고 함께 해답을 찾아내려 내 나름대로의 조언을 해준 적도 있었다. 아마 그때와 같은 마음이었다면 사촌동생의 고민을 부담 없이 들어주고 내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조언 혹은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알면 더 알수록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오히려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 강해져서 조언을 구한다고 해도 정말 감히 해줄 조언이 없다. 다만 묵묵히 열심히 들어줄 순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고민과 아픔을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되어줄 수 있는 게 아마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위로라는 것에 대해서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무조건 다 잘될 거야 혹은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같은 위로는 사실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힘든 이야기를 나누다 본의 아니게 누가 더 힘든가 배틀에 빠져 버리기도 한다. 우리 나름대로의 위로를 한다는 것이 위로가 되지 못하는 어찌 보면 위로라는 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참 쉽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난 정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살짝 엉뚱한 이야기로 위로를 대신할 때도 있다. 얼마 전 친구 중 한 명이 회사 관계자와 대판 싸우고 회사를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서 영국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려고 어학연수를 계획 중이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게 무산되었다며 인생이 엉망징창이라고 한탄을 했다. 난 "너 올해 시집가려나 보다"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던졌다. "원래 큰 좋을 일이 오기 전에 액땜을 한번 거하게 하더라 곧 좋은 인연 만나 시집가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했더니 우울해했던 친구가 정말 전화기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엄청 웃었다. 그리고 훨씬 밝아진 목소리로 "정말 그럴까?" 하고 되물었다. 처음 통화를 시작했을 때 벼랑 끝에 있었던 친구의 목소리가 같이 고민도 나누고 한바탕 웃고 나서야 한결 밝은 목소리로 통화를 마쳤다. 게다가 며칠 후 그 이야기를 자기 엄마한테 했더니 엄마가 좋아하셨다는 문자까지 왔다. 가끔은 힘든 누군가가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방향을 살짝 다른 쪽으로 돌려주는 것도 작은 위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명확해진다. 우리가 선택하는 모든 것들엔 정답이 없다는 것.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게 시간이 지난 후 아닐 수도 있고 아니라고 믿었던 게 시간이 지난 후 맞는 것일 수도 있고.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는 모순의 회오리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같다. 태어나고 자랄 때 무(無)에서 점점 새로운 지식과 경험 등으로 유(有)가 되어가다 그것들이 점점 더 쌓여가서 인생을 마감할 때쯤엔 유(有)에서 무(無)로 다시 비워지듯 말이다.



인생이 수학 정석 책 마냥 공식과 정답이 척척 나와있다면 그래서 책의 마지막 장의 정답들을 미리 훔쳐볼 수도 있다면 편리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재미가 없었을 거다. 정답이 이미 있는 세상은 너무 뻔하니까. 그래서 인생은 한편으론 참 재미있다. 정답을 모를 것 같은 끝이 없는 수수께끼들과 함께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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