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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뚜 Apr 20. 2020

갑(甲)질하는 직장상사
정(丁)질하는 부하직원

에피소드 1. 직장 내 먹이사슬 주의보 (甲에서 癸까지)

  예전부터 지금까지 방송되는 장수 프로그램 중에 동물의 왕국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말 그대로 동물들의 생활, 습성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인데 밀림의 왕 사자부터 겁 없이 사자 주위를 무리지어 다니는 하이에나, 그리고 보기만 해도 징그러운 뱀까지 모든 동물이 등장하는 그야말로 동물의 왕국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인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간과 의사소통도 안 되는 동물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무슨 관심꺼리가 될 수 있을까 싶지만, 정작 그 프로그램을 보면 그러한 의문이 단숨에 풀리고 만다.     

 

태초부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사냥을 본업으로 했었다. 지금이야 신용카드 한 장으로 원하는 것들을 모두 살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문명이 없었던 원시시대에서는 서로 죽고 죽이는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하루하루를 영위해 나갔을 것이다. 당시는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동물들과 사람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생긴 모양으로 쟤는 난폭하고 싸움 잘하는 애(사자, 호랑이), 쟤는 나무를 잘 타고 싸움은 중간정도인 애(원숭이), 쟤는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싸움은 별로 못하는 애(사람) 등으로 힘의 논리에 의한 먹이사슬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구를 활용할 줄 알았던 사람은 단순한 육체적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뛰어난 생존전략을 만들었고 먹이사슬 최상위 포지션을 점령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negna.tistory.com)


생물학적으로 동물로 분류되는 사람은 여전히 본능적으로 먹이사슬 관계를 형성하려고 하는 습성이 남아있다. 특히 인위적으로 만든 직장이라는 조직에서는 먹이사슬 관계가 더 여실히 드러난다. 제일 최상위 계층에 있는 회장(or 사장), 그 다음 계층으로 전무, 상무, 이사 등과 같은 임원 계층, 부장, 차장, 과장 같은 중간 계층, 대리, 계장, 주임 같은 하위 계층, 사원과 인턴 같은 최하위 계층이 바로 그것이다.      


직장 내 이러한 계층 간의 관계는 실제 동물의 왕국에서 형성된 먹이사슬 관계보다 발전되어 있어 보이지만 실상 안을 들여다보면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실제 최상위 계층은 움직임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일단 움직이면 다른 계층들이 모두 긴장하게 되며 최상위 계층이 움직일 땐 꼭 그 다음 계층인 임원계층이 하이에나 마냥 뒤를 따라 붙는다. 동물의 왕국에서 하이에나는 사자가 먹이를 먹을 때 항상 떼를 지어 주위를 어슬렁거리면서 사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다가 나중에 사자가 먹다 남은 먹이를 먹으며 그 혜택을 누린다. 동물의 왕국에서 간혹 하이에나 무리가 홀로 떨어진 사자나 사자의 새끼 등을 공격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결국 이러한 해프닝은 사자가 하이에나 무리의 최고 수장을 물어 죽임으로써 일단락되고 만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상위 계층에 가기 위해 임원 계층에서 모략을 꾸미다가 결국 덜미가 잡혀 더 큰 피해를 당하고 물러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동물의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처럼 직장 내 최상위 계층은 사자, 임원 계층은 하이에나 무리에 비유할 수 있다.      


그 다음 중간 간부 계층은 동물의 왕국에서 치타나 표범 정도로 분류될 수 있다. 치타나 표범은 꽤 상위 먹이사슬에 포진되어 있지만 먹이 사냥을 하던 도중 사자나 하이에나를 만나면 위협을 느껴 줄행랑을 치고 만다. 그리고 힘들게 사냥해 놓은 먹이도 빼앗긴다. 직장 내에서도 이 같은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간계층은 주로 임원 계층의 지휘 아래 있으면서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실적을 빼앗기기도 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임원들이 짜놓은 계획대로 움직였다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덫에 휘말려 책임까지 떠안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더구나 조직 내에서 상위 포식자와 하위 계층 간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역할은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자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간계층에서 최후를 맞이하기도 한다. 필자도 이러한 중간계층에 있고 여전히 사자나 하이에나를 만나면 도망쳐야 하는 치타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하위 계층은 동물의 왕국으로 비유하면 미어캣으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상위 포식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그들 특유의 집단생활을 영위하게 되며 초병을 세워 외부 포식자들의 접근을 무리들에게 알리고 다함께 꽁꽁 숨어버리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거의 대부분 직장에서 가장 넓게 분포되어 있는 이 하위 계층은 사내 메신저 또는 단톡방을 이용하여 그들만의 그물망을 조성하고 사내 조그마한 사항들까지도 수시로 공유하여 항상 타 계층에 대한 준비태세를 유지한다. 이 계층은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세력을 확장하여 나가고 그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가치관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 내에서도 각자 성향의 차이로 간혹 내분이 일어나며 표면적으로는 공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자 성향에 맞는 사람들끼리 무리지어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막으로 최하위 계층은 동물의 왕국에서 개구리 또는 쥐로 비유할 수 있다. 옛말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던가? 아직 전체적인 개념은 부족하지만 나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와 아직 식지 않은 따끈한 열정이 최하위 계층의 최고 무기이다. 상위 계층의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잠재력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정은 점점 식어가고 외형도 변해가다가 하위 계층으로 편입하여 미어캣으로 변하고 만다.     


이렇듯 직장 내에서도 엄연히 먹이사슬 관계가 존재하는데 문명을 창조한 인간은 지능적으로 이러한 먹이사슬을 표현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갑을관계이다. 본래 갑을 관계라는 말은 계약관계에서 사용되어 오던 말인데 계약을 맺을 당시 상대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갑이라 표현하고 반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을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양측의 관계를 상하로 구분한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계약관계가 아니더라도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사람을 표현할 때 갑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부당 행위 하는 것을 빗대어 갑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2019년 정부에서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보면 직장 상사의 갑질이라는 문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모두 인간의 본성인 먹이사슬 관계를 형상화하여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동물의 왕국과 달리 인간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은 바로 돈과 직결된다. 돈이 많은 사람은 권력을 행사하는 최상위 계층이 되고 돈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위 계층에 머물게 된다. 세계에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찾아보라. 아랍 왕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이 기업인들이다. 그들이 속한 기업이라는 집단 속에서 그들은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최상위 계층에 있으며 그의 자식들 또한 거의 같은 대우를 받는다. 동물의 왕국의 사자나 호랑이처럼 말이다. 인간은 진화했고 사회는 발전되었지만 아직도 우리 인간은 이렇듯 보이지 않는 원시시대에 살고 있다.  

   

직장 내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최상위계층 뿐만 아니라 임원계층, 중간계층, 때론 하위계층 등 다양한 계층에 분포되어 있다. 이렇게 갑질을 하는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극히 인간의 본능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약육강식의 현상은 생존을 위한 동물들의 본능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은 동물에 비해 이러한 본능과 감정을 이성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동물인 인간의 유전자 속에는 아직도 약육강식의 본성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갑질하는 사람이란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반인륜적이고 동물적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며, 기본적으로 동물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러한 습성대로 살고 있는 사람’ 

즉, 아직도 동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쌍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갑질하는 사람 = 동물적인 인간의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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