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촌 누나가 전화를 걸어왔다.
"○○야! 바빠? 혹시 시간 되면 나 운전연수 좀 시켜주면 안될까?"
출판사와 소설을 계약한 후부터 원고를 마감하느라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던 나였지만 사촌누나가 간절히 부탁을 하는 바람에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그래. 언제가 좋아?"
전화를 받은지 며칠이 지나서 사촌 누나를 만나러 나갔고 면허를 딴 후 몇 차례밖에 운전 연수를 받지 않았다는 누나는 예전 내가 처음 운전을 시작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긴장하는 모습이 없었다. 그런 누나를 보니 왠지 운전을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안도가 되었다.
"원래 처음 운전할 땐 다들 많이 긴장하는데, 누나는 안 그러네?"
"긴장은 뭐하러 해? 그냥 편안하게 하면 되는 거지! 호호호."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좀 전까지 자신만만해 하던 누나는 차에 시동을 걸면서부터 마치 다른 사람이 누나의 몸에 들어와 빙의된 것처럼 긴장한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누나가 갑자기 왜 이러지?'
누나는 자칫 주행 중에 핸들이 뽑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될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 핸들을 잡았고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앞유리를 잡아 먹을 것처럼 쳐다보는 누나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구안와사가 올 것만 같았다.
"누나, 너무 긴장하지 마."
"으....... 응!"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마음이 꽤 안정된 상태였다. 그래서 누나가 지하 2층 주차장에서 굴속같은 통로를 거북이 걸음으로 빠져나올 때까지도 초보라서 그러려니 하는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어...... 어! 누나! 스톱! 스톱!"
도로 밖으로 나온 차는 마치 좀비가 운전을 하는 것처럼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나는 온 몸이 경직된 채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나는 애써 나에게 태연한 척을 하며 깔깔대고 웃었고 나는 그런 누나가 슬슬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누나, 운전은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거야. 긴장 좀 해."
사촌 누나는 결혼 후 주부로 지내다가 6개월 전부터 네일 아트샵을 운영 중인데 장사가 꽤나 잘 되는 지 운전을 하는 중간에도 수시로 고객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아휴! 그럼요! 오늘 2시로 다시 예약 잡아 드릴까요? 네, 네. 알겠습니다!"
가뜩이나 운전도 불안한데 전화까지 받으며 운전을 하는 누나를 보니 그야말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더군다나 누나가 운전 연수를 하던 곳이 강남 일대였는데, 그곳은 서울에서도 가장 차가 많고 복잡한 곳이었다. 아무리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여놓고 운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운전자들에게 욕먹기 딱 좋은 장소였던 것이다.
[빵빵! 빵빵! 빵~~~~!]
"누나. 앞차와의 간격이 너무 멀잖아. 좀 더 붙여."
"너무 가까이 붙였다가 사고나는 거 아니야?"
"지금 앞차와의 간격을 봐. 백미터도 넘게 떨어져 있잖아. 더 붙여."
"싫어! 무서워!"
"하아......."
귀가 따가울 정도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들. 하지만, 장군 기질이 있던 누나는 적반하장으로 그 차량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운전을 못할 수도 있지! 너희는 처음부터 잘했냐!"
나는 점점 더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다.
'아....... 나는 누구고, 도대체 여기는 어딜까.......'
완전히 멘붕 그 자체였다. 30분이면 갈 거리를 1시간이 넘게 걸려서 도착한 누나는 쉬지도 않고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갔다.
"누나. 아무래도 연수는 더 받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치? 아직 좀 불안하지? 근데, 너 언제 또 시간 돼?"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누나가 그렇게 부담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 난 이제 시간이 안되는데....... 원고도 빨리 마감해야 되고......."
내 말을 듣고 실망하는 누나의 표정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내 할 일까지 못해가며 누나의 운전연습을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이 참에 전문적으로 운전연수 해주는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나같이 일반인보다는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한테 연수를 받는 게 좋지."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운전 연수는 점심 때가 훌쩍 지나서야 끝이 났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치 몸살이 걸린 것처럼 온 몸이 쑤셔왔다. 사실 나는 연애시절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다가 헤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사람이 위험상황에 노출되어 바싹 긴장을 하면 이성을 잃을 때가 있지 않는가? 그때 내가 그랬다. 그런 경험을 한 이후로 다시는 누구에게도 운전을 가르쳐주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결국....... ㅜㅜ
흔히들 사람들은 부부지간에 절대 해서는 안되는 것 중에 하나로 '운전 가르치는 일'을 꼽는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운전 가르치는 일'은 부부지간에만 해서는 안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요즘도 난 사촌 누나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안절부절하며 전화를 받는다. 간혹 카톡으로 누나가 안부를 물어올 때도 나는 심장이 벌렁거려서 카톡 메세지를 잘 읽지 못한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알고 계셔야 할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 운전을 가르쳐 주는 행위는 자신에게 상당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동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과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자칫 끝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누나, 미안해. 하지만 사람 목숨은 소중한 거잖아? ㅋㅋㅋ'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는 절대 운전을 가르쳐 주지 마세요. 배우지도 마시고요!